왕이 중국 외교부장. 연합뉴스"중국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즉시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전쟁이 중동 지역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할 것을 촉구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인 지난 2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란의 주권과 안보 수호를 지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을 비판한 것이지만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고,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지원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중국이 이달 말 방중을 앞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깨지 않으려는 의도와 전략적 협력 파트너인 이란과의 끈도 놓지 않아야 하는 딜레마적 상황을 보여준다.
美, 베네수 이어 이란 공격…中, 원유수입 차질
미국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이란은 중국에게는 중요한 원유 수입국 중 하나다. 중국은 지난해 이란 원유의 80% 이상을 구매했다. 중국의 해상 수입 원유량의 13.4%에 해당하는 양이다.
미국이 앞서 올해 1월 마두로 니콜라스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석유 접근권을 장악한 베네수엘라도 수출의 절반 이상을 중국이 흡수했었다. 공교롭게 연거푸 미국의 공격 대상이 된 이 두 나라에서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량은 전체의 17%를 차지했다.
전쟁 여파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에 나선 것은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은 대부분이 이 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출을 하고 있다. 중국 역시 수입 원유의 절반가량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고 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호르무즈해협 및 그 인근 해역은 중요한 국제 화물 및 에너지 무역 통로이며, 이 지역의 안전과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국제 사회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짧은 시간내에 끝나지 않을 경우 중국의 시선은 러시아로 쏠릴 수밖에 없다. 에너지 관련 데이터업체 케플러의 안돈 파블로프 연구이사는 "갈등이 몇 주간 지속된다면 베이징의 가장 논리적인 선택은 러시아산 원유를 더 들여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중국은 올해들어 이란 석유 수입을 줄이고 러시아산 수입을 늘리고 있다.
'전략적 파트너'지만 거리두는 중국
중국은 지난 2021년 이란과 '포괄적 협력 협정'을 맺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중국이 이란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꺼린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 발생한 '12일 전쟁' 때도 중국은 미·이스라엘의 공습을 비판했지만 물질적 지원은 하지 않았다. 전략적 우방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기습적인 군사 개입에 대해서도 반발은 했지만 직접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이는 우선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하는 현실적 선택의 결과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말 방중을 앞두고 중국은 상황 관리에 방점을 찍고 있다. 중국 안에서도 정상회담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우려와 정상회담이 한층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전망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자체가 직접 차질을 빚을 것이란 관측은 나오지 않고 있다.
댜오다밍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두 강대국 간 긴밀한 소통은 양자 관계와 세계 질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라면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통해 글로벌 질서 수호와 국제 안보 수호 의지를 천명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란 문제에서 수위를 낮추는 대신 대만 문제에서 양보를 얻으려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지난 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통화에서 이란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정권 교체에는 강한 반발…중국의 계산은
연합뉴스중국은 이란 문제에서 미국의 개입을 묵인하더라도 정권교체 시도까지 눈감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에 대해 "주권 국가 지도자를 살해하고 정권 교체를 선동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면서 중국은 유독 강하게 반발했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중국과 이란 간의 '포괄적 협력 관계'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군사개입이 중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력이 약해진 이란이 미국이 아닌 중국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고립된 이란을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 등에 다자협력 기구에 가입시키며 출구를 마련해줬다.
아흐메드 아부두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원은 "이란 체제가 약화될수록 중국에 대한 외교·경제·기술적 의존은 커질 것"이라며 "이는 미국의 압박 전략이 의도치 않게 중국의 장기적 이익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