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해안에 정박 중인 선박. 연합뉴스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맞서 이란이 세계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들자 에너지 가격 상승 우려가 커지는 등 한국 산업계에 불안 심리가 번지고 있다. 미국의 지상군 투입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만큼 사태가 장기화 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핵심 리스크로 부각되는 모양새다.
미국·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전격적인 공습을 통해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한 이후 중동 지역에서는 3일까지 나흘째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이란군이 거센 반격을 가하면서 미군 사상자도 다수 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등 인근 국가들에 있는 미군 주둔 기지가 이란군의 타깃이 되면서 전쟁의 먹구름이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란 최정예 부대인 혁명수비대(IRGC)는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에 대한 통제를 넘어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혁명수비대 사령관 보좌관인 에브라힘 자바리 소장은 이란 반관영 ISNA통신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은 폐쇄됐다. 통과를 시도한다면 그 어떤 선박이라도 혁명수비대와 정규 해군이 불태울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중동에서 지정학적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부각돼 왔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 된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20%가 거쳐가는 핵심 운송로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24년 기준 수입한 원유의 약 70%가 중동산이며,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왔다.
때문에 이곳 봉쇄가 길어지면 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며 에너지 전반을 비롯한 각종 비용 상승 부담이 확산해 산업계는 물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로 2일 유럽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6.68% 급등해 배럴당 77.74달러로 장을 마쳤다. 같은날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도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전장보다 6.28% 오른 배럴당 71.23달러로 마감했다.
호르무즈 해협 위치한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구의 항공 사진. 연합뉴스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유가 상승은 국내에 2~3주 정도면 반영이 된다"며 "글로벌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같이 오르는데, 이 효과까지 국내 가격에 반영된다. 유류 소비자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론, 기업의 생산 비용 증가도 현재로서는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보통 다양한 에너지 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 뿐 아니라 천연가스의 주요 수송로라는 점에서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업계에서는 에너지 원가 상승이 전기요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한 관계자는 "당장의 단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반도체 공장은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에너지 원가 상승에 따른 관련 비용이 늘어날 경우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전과 자동차 업계 등에서는 물류 비용 증가도 부담 요인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 대신 우회 항로를 택할 경우 기존 해상 운임 대비 50~80%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자동차 업계에 이란 사태가 당장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사태가 길어지면) 운반비, 운송시간이 천문학적으로 늘게 되는데, 그에 대한 추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위험 해상 경로를 피하는 우회 경로에 대해 파악 중인 상황"이라며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해 사업 영향을 분석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중동 사태의 장기화 여부에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연일 이어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 메시지는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백악관 행사에서 이란과의 전쟁에 대해 "4~5주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보다 더 오래 지속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는 "지상군 투입에 대한 울렁증은 없다"며 지상전까지 예고했다가 이후 다른 인터뷰에서 "(지상군 투입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