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의 모습. 연합뉴스재판 결과를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다툴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 제도 시행 한 달 동안 사건 접수가 380건을 넘었지만, 아직 본안 심리에 들어간 사례는 없다. 당초 우려됐던 '사실상 4심제'나 '사건 폭증' 가능성은 일부 해소되는 모습이지만, 정작 어떤 사건이 심리 대상이 되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아직 판단 기준을 형성해가는 단계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판제도 시행 이후 전자헌법재판센터에 접수된 관련 사건은 전날 기준 380건을 넘어섰다. 겉으로 보면 적지 않은 수치지만, 실제 심리 단계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 헌재는 지난 7일까지 세 차례 사전 심사를 통해 총 194건을 각하했다.
사전 심사는 일종의 1차 필터다. 재판소원으로 다툴 수 있는 사건인지,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는지를 먼저 판단하는 절차다. 현재까지 접수된 사건 상당수가 이 단계에서 걸러지면서, 제도의 문턱이 예상보다 높게 설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각하 사유를 보면 '청구 사유 미비'가 가장 많는데,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는 재판소원을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사전 심사에서도 청구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례가 77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청구 기간을 넘긴 경우 30건, 기타 절차상 문제가 있는 경우 14건 등이 뒤를 이었다.
헌재가 제시한 기준도 엄격하다. 재판소원은 △헌재 결정에 반하는 재판 △재판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위반한 경우 △헌법이나 법률을 명백히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일반적인 법률 해석이나 증거 판단의 문제는 원칙적으로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재판소원이 '또 하나의 상고 절차'가 아니라, 예외적인 기본권 구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제도 도입 당시 제기됐던 우려를 일정 부분 낮추고 있다. 헌재는 당초 연간 1만 건 이상 사건이 몰릴 수 있다고 봤지만, 현재 흐름이라면 3천 건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상당수가 사전 심사에서 걸러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건 폭증'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임에도, 실제로 심리까지 이어지는 사건이 없는 상황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기준을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 심사 단계에서 대부분 걸러지면서 본격적인 심리 자체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지금 상황을 성급히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시각이 많다. 또 다른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재판소원은 이제 막 시행된 제도인 만큼, 지금은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건을 걸러낼지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향후 몇 건의 본안 사건이 나오느냐에 따라 제도의 성격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재판소원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도 주요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재판소원이 기존 헌법재판의 판단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게 운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실제로 인용되는 사건이 과거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과 유사한 유형에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정위헌은 헌재가 특정 법률에 대해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하면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음에도, 법원이 이를 따르지 않고 다른 해석으로 판결한 경우를 의미한다. 이처럼 헌재 판단과 충돌하는 재판을 바로잡는 데 재판소원의 기능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의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결국 재판소원이 실제로 인용되는 사례는 과거 한정위헌과 유사한 구조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며 "헌재 결정에 반하는 재판을 바로잡는 기능에 머문다면, 제도의 작동 방식은 기존 헌법재판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