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내 이름은'. 제주 시사회에 이어 개봉일 다시 마주한 작품은 여전히 아팠다. 몇 번이고 아프고 아팠다고 토해내면 무뎌지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더 아리다.
위로가 되는 건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스크린이 백지처럼 변할 때까지 누구 하나 자리를 떠나지 않고 1만 395명의 이름을 지켜봐줬다는 것이다.
염혜란 배우가 분한 주인공 정순의 삶은 그가 살아낸 시절만큼이나 녹록지 않았다.
봄, 바람이 불면 계절병마냥 이유모를 불안증을 앓고, 9살 이전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혼자 나이차가 꽤 나는 아이를 키우는데 알고보니 자식은 아니다. 세상과의 연결은 몇 사람으로 겨우 이어진다. 어쩌면 그래서 살아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렇게 제주 4·3은 그저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한 컷 또 한 컷 공들여 담았다.
'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정순이 잊었던, 아니 지웠던 기억은 제주 4·3이었다. 애써 입에 올리지 않고 묻은 것들에는 월남전 파병과 광주 5·18이 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큰 아들 영옥은 힘을 이용해 사실을 왜곡하고 이간질로 정의와 공동체를 흔드는 또다른 현재형 '4·3'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매번 기억해내라고 묻기만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 존재와 본의 아니게 책임과 희생을 떠안게 되는 안타까움이 엇갈린다.
제주4·3평화재단 공모에서 찾은 시나리오를 모티브로 제작한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은 물먹은 솜뭉치마냥 묵직함을 더한다.
'주인공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폭력의 흐름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정지영 감독의 말이 시시분분 실감났다. 상영시간에 맞추느라 덜어냈던 아픔도.
그 시절을 살아낸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 희생자이면서 생존자라는 사실이 이리 아플 일일까.
'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영화는 그 까닭을 빈 채로 둔다. 영화는 계속해서 평화 제주 풍광 이면에 묻혀 있던 과거를 드러낸다.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은 미치도록 하프고 상처가 된다. 정순의 상처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영옥의 상처는 자신의 방법으로 과거를 인정하는 과정까지다.
어디에도 아프냐고 묻거나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실에 다가가는 두 세대의 서사가 뭉클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카메라를 먼저 찾은 아름다운 경치는 없지만 어떻게든 '제주'를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한다. 희생자들의 흔적으로 온통 붉었던 섬 곳곳의 얼굴들이 슬쩍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 흐르는 조금 다른 시간.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름이 시작된다.
지워지거나 끝내 불리지 못하거나 평생 말하지 못했던 그 이름들을 잊지 않기 않겠다고 올린 이름들이다.
알아채는 순간 눈 앞에는 엔딩 크레딧이 아니라 이름을 대신 부르는 시간이 흐른다.
이런 설명을 일일이 하지 않았는데도 정식 개봉 전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돼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고미 칼럼니스트. 본인 제공
이제 우리의 차례다. 제작에 들인 노력과 정성은 아미 블록버스터급이지만 블록버스터의 대접을 받기에 현실은 냉혹하다. 제한 상영과 이벤트형 배급구조로 찾아 가 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입소문과 관객 확장 노력이 보태지지 않으면 관객 수 기반 재편성의 벽을 넘을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165명과 함께 감상하고,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4·3유족회를 초대해 마음을 나눴다.
여러 지역에서 함께 관람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개봉 첫 날 성적은 아직 좀 모자라다. 마침 영화 속 일렁이던 청보리밭이 지천인 계절이다. 이제 우리가 할 차례다. 영화를 보고 공감과 위로를 하는 '내 이름'을 남길. 그 모든 것들에서 작별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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