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전태일동상 인근 건물에 노동절 축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
① "멈추면 잘린다"…작업중지권 확대에도 건설현장은 '막막' ② '찍힐까' 못 멈춘다…재해율 15% 낮춘 '스마트 멈춤'의 비결 ③ "산재 예방, 많게는 20억 편익…안전은 '비용' 아닌 '투자'" ④ 63년 만에 이름 되찾은 노동절…'멈출 권리'는 왜 멈춰 있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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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표를 단 지 63년 만에, 마침내 5월 1일이 '노동절'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고 국가가 인정하는 법정공휴일로 지정됐다. '일하는 사람'의 가치를 우리 사회가 공식적으로 예우하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현장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63년 만에 다시 노동절을 맞았지만, 노동자의 최후의 방패이자 생명줄인 작업중지권 요건을 확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작업중지권의 문제는 비단 건설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 급식실부터 각 가정을 방문하는 서비스 기사까지,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들이 위험 속에서 "멈추겠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채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공기 압박'이 원인…발주자 책임 강화해야
1일 CBS노컷뉴스가 건설노동자 3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작업중지를 행사하려 할 때 원청이나 팀장으로부터 공기(공사 기간) 단축을 이유로 압박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57.9%에 달했다. 블랙리스트 등재에 대한 불안감도 59.5%로 나타났으며, 법이 통과되더라도 현장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응답도 43.8%에 이르렀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 같은 통계에 대해 "현재 위험 상황에서 작업중지를 하더라도 공기 보전이 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 실장은 "작업을 중지해도 공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막판에 공기를 맞추기 위해 작업을 더 빠르게 몰아치게 된다"며 현장의 구조적 딜레마를 짚었다.
이어 "정부가 폭염이나 한파로 인한 공기 연장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구조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며 "공기 문제는 결국 발주자의 책임인 만큼,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통해 적정 공기 산정 의무를 발주자에게 명확히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급식실·방문기사…일터 곳곳이 '위험 지대'
2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계자들이 '폐암 산재 사망 학교급식노동자 추모 및 교육부 학교급식종합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생명의 위협은 옥외 건설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폭염 속 학교 급식실은 거대한 '찜통'으로 변하지만, 이곳의 노동자들에게 작업중지권은 여전히 먼 이야기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박화자 경기 부지부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폭염기 경기 화성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 상황을 전했다.
박 부지부장은 "솥에 불을 트는 순간 실내 온도가 40도 가까이 올라 노동자들이 연이어 쓰러졌지만 학교와 교육청은 묵묵부답이었다"며 "정치권의 개입으로 방학 직전 3~4일간 간신히 작업을 중지하고 외부 급식으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토로했다.
심지어 "동료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중상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밥은 제때 나가야 한다'고 해 작업을 계속했다"고 증언했다.
가정을 방문해 설치 및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도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고객의 폭언과 폭행, 성희롱에 수시로 노출된다.
가전통신노조 이현철 위원장은 "폭행이 발생해도 현행 매뉴얼은 '고객에게 1차 고지'를 하라는 등 비현실적인 절차만 요구한다"며 "생명의 위협을 느껴 장비가 든 가방까지 두고 도망쳐 나오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이는 작업중지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이들은 폭염 시 35도를 웃도는 차량 내부 온도나, 겨울철 폭설로 빗길·눈길 사고 위험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무리한 이동과 작업을 강요받고 있어, 환경에 맞는 현실적인 작업중지 기준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노동절의 의미…'제도와 노조'가 멈출 힘
이처럼 산업 전반에서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멈춤'의 책임을 개인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현행 구조에 있다.
노동계는 노동절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노동자 개인이 짊어진 해고와 불이익의 부담을 줄이고, 노동조합이나 노사 안전보건위원회의 노동자 대표 등 '집단적 권리'를 통해 작업중지권을 실질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작업 중지 시 임금 보전과 하청업체 손실 보전을 법제화해 경제적 보복을 차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나아가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등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법의 테두리 밖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까지 작업중지권을 전면 확대하는 것이 향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위기와 고객 폭력 역시 일터와 고용 형태를 가리지 않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치지 않고 일터에서 돌아올 수 있는 사회. 개인이 아닌 '제도와 노조'가 노동자의 멈출 용기를 뒷받침할 때, 비로소 63년 만에 되찾은 노동절은 그 이름값을 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