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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마신다'…커피로 떠나는 1980년 5월 광주로의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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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을 마신다'…커피로 떠나는 1980년 5월 광주로의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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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기념재단, 5월 광주 의미 담은 '블렌드 커피' 제작
    역사적 아픔 있는 르완다·동티모르·에티오피아 원두 섞어
    청년들, 맛과 향으로 5월 광주 기억하고 연대 실천 다짐

    16일 오전 광주 동구의 한 카페에서 '5·18 블렌드'를 제작한 김현오 대표가 제작 과정의 후일담을 참가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한아름 기자16일 오전 광주 동구의 한 카페에서 '5·18 블렌드'를 제작한 김현오 대표가 제작 과정의 후일담을 참가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한아름 기자
    1980년 5월의 광주 정신을 일상 속 '커피'를 통해 마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6일 오전 광주 동구의 한 카페에서는 5·18기념재단 주관으로 '5·18 블렌드 바리스타와의 대화'가 열렸다.
     
    '5·18 블렌드'란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 가치인 인권과 평화, 대동 세상을 향한 연대의 메시지를 미각과 후각으로 표현한 특별한 커피다.
     

    상처를 딛고 일어선 세계 시민의 이야기가 커피 한 잔에

    이번 '5·18 블렌드' 커피를 제작한 김현오 대표는 르완다, 동티모르, 에티오피아의 원두를 선택했다.
     
    김 대표는 "이 세 곳은 국가폭력과 내전 등 깊은 역사적 아픔을 경험한 곳"이라며 "이 지역 공정무역 원두를 통해 인권과 평화, 세계 시민 사이 연대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르완다는 지난 1994년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버텨내고 다시 삶을 일궈낸 곳이다. 과거의 적이었던 후투족과 투치족이 함께 모여 고품질 커피를 생산하면서 화합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이런 르완다 국민의 연대로 만들어진 단맛을 5·18 블렌드에 담았다.
     
    동티모르는 400년이 넘는 식민 지배와 점령의 시간을 견뎌낸 곳이다. 김 대표는 동티모르 고산지대에서 자란 공정무역 에르메라 메르투투 원두를 5·18 블렌드에 더해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에티오피아는 식민 지배의 압력에 맞섰던 독립의 상징적인 나라다. 김 대표는 에티오피아의 아바야 게이샤 원두 고유의 산미를 통해 억압 앞에서 꺾이지 않았던 5월 광주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5·18은 역사의식을 깨우는 각성제다"

    '5·18 블렌드'는 '커피가 일상의 각성제라면 5·18은 역사의 각성제다'라는 주제로 제작됐다. 사진 속 커피잔 안에는 옛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한아름 기자'5·18 블렌드'는 '커피가 일상의 각성제라면 5·18은 역사의 각성제다'라는 주제로 제작됐다. 사진 속 커피잔 안에는 옛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한아름 기자
    이어서 이번 5·18 블렌드 작업에 참여한 김인정 바리스타의 기억이 보태졌다. 김인정 바리스타는 30년간 방송작가로 일하며 5·18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던 '오월의 기록자'다.
     
    1980년 5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는 갑작스러운 휴교령, 학교 운동장에 모여있던 무장 계엄군을 목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그 시절을 관통한 이들에게 5·18은 공포와 슬픔, 부채의식이 뒤섞인 아픈 기억"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커피가 일상을 깨우는 각성제이듯 5·18은 우리의 무뎌진 역사의식을 깨우는 각성제라는 마음으로 이번 기획을 했다"고 덧붙였다.
     

    은은한 커피 향으로 이어지는 연대

    이날 행사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국내외 청년 10여 명이 마주 앉았다.
     
    참석자들은 5·18의 의미를 담아 제작된 블렌드 커피를 시음한 뒤 떠오른 감정과 일상의 기억을 '5·18 테이스티 페이퍼'에 자유롭게 적어 내려갔다.
     
    5·18 추모 주간에 맞춰 광주에 방문했다는 미국 시카고 대학의 음악학 전공자 니나 굿맨(Nina Goodman·26) 씨는 소리와 오감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이번 체험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이나 동서 간의 정치적 갈등 등을 잠재울 공감대 형성 방법을 연구하던 중이었다"면서 "이번 체험을 통해 소리뿐만 아니라 향이나 맛 등 친숙한 '오감(五感)'을 활용한다면,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도 진실과 평화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일깨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참석자들은 각자의 경험을 통해 5·18을 일상 속에서 해석하고 연대를 실천하는 방식을 공유했다.
     
    서울 출신의 참석자 A씨는 군 복무 시절에 겪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군대에서 보급받은 내의가 알고 보니 5·18 단체로부터 제공받은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과거 군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으면서도 청년 군인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풂을 실천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A씨는 "그 이후로 온라인에서 광주를 비난하고 왜곡하는 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반박 댓글을 단다"면서 "이것이 내가 일상에서 타인과 연대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 B씨는 "최근 광주의 한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목욕 도구를 챙겨가지 않아 난감했는데 처음 보는 주민이 선뜻 건네줬다"며 "이웃들이 일상에서 보여주는 스스럼없는 나눔이야말로 80년 오월의 '주먹밥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과거 삼엄한 감시를 뚫고 전국으로 전파되었던 '광주비디오'가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결정적 도구였듯, 이날 참가자들은 손에 쥔 '5·18 블렌드 커피 드립백'을 주고받으며 일상 속 광주 연대 정신의 전파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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