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일협정은 美작품…미군감축카드로 朴압박[한국 역사를 바꾼 오늘]
오늘(6월 22일)은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은 지 56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후유증을 낳고 있는 잘못된 한일협정. 그것을 뒤에서 기획하고 실행한 측은 일본도, 한국도 아닌 미국이었다. 한일 두 나라는 협정에 부담스러워했지만, 미국은 이를 집요하게 밀어붙였던 사실이 미국 정부의 비밀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미국 기밀문서 다운로드]
'美비밀문서로 본 65년 한일협정 체결비사' 글 싣는 순서
①한일협정은 美작품…미군감축카드로 朴압박
②美 한일협정 회유…韓여론용 차관 미끼 고안
③한일협정은 2:1싸움…日총리 "생큐 미국"
④美 뒷탈많은 한일협정 밀어붙인 이유
한일협정은 1964년 국내에서 뜨거웠던 반대시위(6.3항쟁)가 보여줬듯 대한민국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죄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우리 국민들의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나 영토 문제 등에 대한 언급도 없이 지원금을 받는 조건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일본도 당초에는 협정 체결에 나설 의지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패전국의 책임을 다한 만큼 한국에 따로 과거사를 논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한일협정은 당시로써는 두 나라 모두 피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1965년 6월 22일 두 나라는 합의문에 마침내 서명한다.
CBS노컷뉴스가 미국 뉴저지 버겐(Bergen) 커뮤니티 칼리지 이길주 교수를 통해 확보한 당시 백악관과 국무부의 기밀해제 문서들에는 협정 체결 전후 미국의 생생한 암약상이 수두룩하게 기록돼 있다.
美, 주한미군 감축 카드로 한국정부 압박
1964년 7월 29일.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한 장짜리 기밀보고가 올라왔다. 백악관 NSC(국가안보회의) 맥조지 번디 특보의 보고인 이 문서는 주한미국대사로 새로 임명한 윈스롭 브라운 대사를 면담하시라는 제안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해 한국에서 발생한 6.3항쟁 이후 주한미국대사를 교체했다.
보고서엔 존슨 대통령의 면담 말씀 내용이 숫자와 함께 두 가지가 열거됐다. (1)한일협상 조기 타결을 강력히 원한다. (2)주한미군 부분 철수를 희망한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일협정을 단호하게 밀고 나가라는 구두 메시지를 전하라는 내용은 별도로 적시됐다.
병렬적으로 나열된 내용이지만, 맥락상 한일협상을 조기 타결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뺄 터이니 국민저항에도 굴하지 말고 한일협정을 관철시키라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존슨 대통령은 번디 특보의 제안에 따라 이틀 후인 7월 31일 브라운 대사를 면담한다. 면담 직전 이번엔 NSC 참모인 로버트 코머가 존슨 대통령에게 더 긴 기밀보고를 올렸다. 브라운 대사에게 하달할 두 가지 지시사항의 배경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다.
보고서는 먼저 미국 정부가 한일협정 조기 체결을 '최우선(top priority)'으로 두고 있는 이유로 미국 정부의 한국 원조 정책 실패를 꼽았다. 광복 이후 한국에 66억 달러를 퍼부었지만, 성과는 좌절스러웠다, 원조를 이대로 지속할 수는 없다, 이제 일본이 원조의 부담을 나눠지도록 한일 간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한국을 미국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정한 미국의 의붓자식(stepchild)"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어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군의 축소 필요성을 언급했다. 주한미군은 줄여서 대신 동남아에 배치해야 한다, 가난한 한국이 대군을 유지하느라 경제발전에 힘을 못 쓰고 있으므로 군대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대 감축 문제는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결행 시점에 대해서는 여지를 두고 있다.
朴, 협정체결 약속하며 버리지 말라 간청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 이후 한일 정부는 이듬해 1965년 2월 22일 협상에 원칙적인 합의에 이른다. 이어 3월 17일 한국의 이동원 외무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해 그 경과를 존슨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이 장관의 사전 보고 내용은 전날인 3월 16일 체스터 쿠퍼(NSC)가 마빈 왓슨(NSC고문) 및 맥조지 번디(NSC특보)에게 올린 2페이지짜리 비밀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이 장관이 존슨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 3개 항과 반대로 존슨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전할 메시지 5개 항을 담고 있다.
먼저 이 장관이 전할 3개 메시지 가운데 핵심적인 것은 "일본과 합의에 이르겠다는 한국 정부의 결의를 밝히고, 일본과의 합의가 미국의 한국 지원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확약을 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존슨 대통령이 앞서 신임 브라운 주한미국 대사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한 미국의 원조 축소와 주한미군 감축 입장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한일협정을 체결할 테니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줄이지 말아 달라는 간청인 셈이다.
보고서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존슨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전할 메시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항목을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군사적, 경제적 원조 확대 정책은 한일협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 그해 5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해 존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두 정상은 2개월 전 이 장관을 통해 주고받은 상호 간의 약속을 재확인한다.
백악관이 정상 간의 대화를 정리한 3페이지짜리 기밀대화록에 따르면 존슨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에 대한 모든 가능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은 군대를 그곳에 계속 주둔시킬 계획이었고, 병력 감축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한일협상이 6월 초나 중순쯤 한 달 안에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1페이지)고 다짐해 보이면서 "1967년은 첫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이고 2차 계획도 수립 중이므로 이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 지원이 필요하다"(3페이지)고 호소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존슨 대통령 앞에서 확약한 대로 6월 중순에 해당하는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문에 서명한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2021.06.2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