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발전 퇴출 다음은? 원전 없는 탄소중립 가능할까
▶ 글 싣는 순서 ①수출 길마저 위태…코앞에 닥친 탄소국경세 장벽
②코로나19는 시작…빙하 속 전염병 눈뜨나
③땅속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동토연구자의 증언
④온실가스 '응답하라 2000'…밀린 숙제 몰려온다
⑤李 '탄소세' vs 尹 '원전'…향후 5년 기후정책 향방은?
⑥석탄발전 퇴출 다음은? 원전 없는 탄소중립 가능할까
⑦후쿠시마 아직 '진행형'인데…"원전은 녹색" EU의 진의는
(계속)
정부가 선언한 탄소중립 시한 2050년. 우리 사회는 28년 안에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0)를 만들기 위해 배출을 원천봉쇄하든, 배출량 만큼을 포집·저장해내든 에너지 체계를 갈아엎어야 한다. '온실가스의 원흉' 석탄 화력발전은 퇴출이 불가피하지만, 원자력발전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1호기 원자로가 최초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2019년 신고리4호기까지 26개 원자로를 운용했다. 지금은 설계수명을 넘긴 고리1호기 등 영구정지된 2기를 빼고 24기가 현역이다. 추가로 신한울1·2호기, 신고리5·6호기가 '건설예정' 상태다.
한국전력 통계에 따르면 국내 원전은 2020년 한해 1억 6018만 3721MWh의 전기를 생산했다. 전체 전력 생산량의 29.01% 비중이다. 2시간 드라마를 몰아보기 한 A씨의 TV는 35분간, 5시간 신장투석 치료를 받은 B씨의 투석기는 1시간 반 동안 각각 원전이 가동시킨 셈이 된다.
원전은 1993년 원전 운영·정비 서비스, 1997년 원전 증기발생기 설비를 각각 중국에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 1조원대 UAE 바라카 한국형원전 수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성과도 냈다.
원전, 탄소중립의 조력자…발전비중 국내 29%, 세계 10%
이런 원전이 탄소중립의 필수적 조력자라는 주장이 나온다. 탄소중립 시대가 되면 화석연료가 퇴출되고 수력·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주력이 돼야 하나, 신재생만으로는 국내 전력수요를 감당 못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전세계에서 생산된 전기는 2만6936TWh(269억3600만MWh)이었는데, 신재생에너지에 의한 생산량은 26.5%에 그쳤다. 여전히 석탄(36.7%) 천연가스(23.6%) 석유(2.8%) 등의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컸고, 원자력이 10.4%였다.
세계 수준으로 따져도 20%대에 그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국내에서는 훨씬 미약하다. 한전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202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6.6%에 그친다. 이같은 실정은 원전의 가치를 제고시킨다.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등 관련 학계·업계 인사 200명은 최근 여야 대선후보에 건의서를 보내 '원전 옹호론'을 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탄소 에너지원은 재생과 원자력 에너지가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력 이용을 축소하는 것을 전제로 탄소중립 계획을 세우는 것은 탄소중립을 위해 미래세대가 짊어질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건의서다.
비용 저렴, 탄소배출 적어…EU택소노미에도 포함
원전의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통계도 옹호론을 뒷받침한다. 한전에 따르면 한전이 발전자회사 등으로부터의 사들인 전기 중 지난해 평균 단가가 가장 싼 것은 원전으로, kWh당 56.27원이었다. 신재생에너지(대체에너지)는 106.88원이나 됐다.
원전이 탄소배출량이 적은 친환경 발전소라는 주장도 널리 활용된다. IPCC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의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량은 kWh당 이산화탄소 환산으로 최소 3.7g에서 최대 110g(중위값 12g) 이다. 이는 태양광 18~180g(중위값 48g)보다 낮고, 지열(6.0~79g, 중위값 38g)이나 풍력(8.0~35g, 중위값 12g)과 비슷한 수준이다. '원흉' 석탄발전은 740~910g(중위값 820g)에 달한다.
해외 식자층 중에도 원전 옹호론자가 많다. '6도의 멸종'을 쓴 환경과학 저널리스트 마크 라이너스는 독일의 원전 폐쇄를 비판하는 SNS 글을 수차례 적는 등 옹호 활동 중이다. '총, 균, 쇠'를 쓴 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도 원전에 긍정적이다.
유럽연합(EU)에서도 원전에 '녹색'이 칠해질 예정이다. EU 집행위 주도로 EU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돼, '조건에 따라' 원전에 대한 투자를 친환경 행위로 인정하는 정책적 합의가 추진 중이다.
사회적 비용 빼고 저렴? 운전 때만 따진 배출량?
하지만 반론도 팽팽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고처럼 인류에 파멸적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전제된다. 아울러 반론자들은 기후에너지의 정반대 관점을 꾸준히 제시하는 한편, 제3기관의 다른 수치를 들어 원전 옹호자들의 통계치를 지속 반박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원전의 발전 단가다. 국내외 환경·반핵 비정부단체가 자주 인용하는 데이터는 미국 투자은행 라자드(Lazard)의 보고서로, 현지 업계의 균등화발전비용(LCOE, Levelized Cost of Energy)을 분석한 통계다.
이에 따르면 원전의 지난해 MWh당 평균단가는 태양광의 4.6배, 풍력의 4.4배, 지열의 2.8배에 달한다. 또 2009년 이후 12년간 원전 단가가 36% 치솟았지만, 같은 기간 태양광은 90%, 풍력은 72% 격감했다는 현저한 차이가 확인된다.
"국토 면적이나 지형·기후적 특성이 유리한 미국과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라는 원전옹호론의 반박이 있다. 그러나 "미국뿐 아니라 영국·독일도 수십년 전부터 투자해 신재생에너지 단가를 낮췄다. 그동안 우린 뭐했나", "사고위험과 폐기물 등 사회적 비용을 전부 따지면 원전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재반박이 나온다.
탄소배출량에 대해서도 환경운동연합 등 66개 단체가 참여한 탈핵시민행동은 "제로배출 또는 제로배출에 가까운 핵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핵발전 배출량은 화석연료보다 낮지만, 라이프 사이클과 기회비용 배출량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높다. 핵 사슬의 거의 모든 단계에 비핵 에너지의 추가적 투입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된 데 대해서도 '조건부 포함'일 뿐, 녹색인증 '프리패스'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위한 부지·계획·자금의 준비 여부를 검증받아야 한다는 등 각종 단서가 택소노미에 담겨 있다.
원전 역할, 냉정한 사회적 합의 도출돼야
어떻든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속도 등 현실을 감안하면 원전의 필요성을 외면하기 어렵다. 탄소중립 과도기에서 원전 없이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다. 정부의 탄소중립2050 시나리오도 기존 원전의 생산비중을 2050년 6~7%대로 갖고 가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환경론자들은 정부 시나리오를 비판하고 있고, 원전 문제를 놓고 옹호론과 반대파의 이견은 여전히 팽팽하다. 원전 정책 관련 감사·수사를 벌인 감사원장·검찰총장이 중도사퇴 뒤 제1야당에 들어가 대선판에 뛰어든 현재, 원전 문제는 첨예한 정쟁거리이기도 하다.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지속가능'을 담보할 전제조건이 갖춰졌는지는 따져야 한다. 어느 지자체도 선뜻 폐기장 건설에 나서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원전 가동의 필연적 산물인 고준위 핵폐기물을 안전히 처리할 방법은 전무하다.
신중하고 냉정한 논의가 요구되는 이유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원전 더 짓겠다는 프랑스와 모든 원전을 철폐하겠다는 독일 등 각국 이해를 따져 중간지점을 찾은 게 EU 택소노미 아니겠느냐"며 "우리도 일정부분 공개적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아니면 어떤 결정이 나도 한쪽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22.02.2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