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일터' 부산서 사망 사고 잇따르지만 중대재해법은 '0'
▶ 글 싣는 순서 ①'목숨 건 일터' 부산서 사망 사고 잇따르지만 중대재해법은 '0'
(계속)
떨어져 숨지고 넘어져 숨지고…사망 사고 이어졌지만 중대재해법은 '미적용'
지난 8월 부산 북구의 한 아파트 외벽. 13층 높이에서 로프에 의지해 도색 작업을 하던 노동자 A(40대·남)씨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A씨는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현장에서는 A씨의 몸을 지탱하던 밧줄이 끊어진 채 발견됐다.
불과 두 달 뒤인 지난달 27일 같은 아파트에서 또 다시 참변이 발생했다. 아파트 8층 높이에서 외벽을 칠하던 B(40대·남)씨가 바닥으로 추락해 숨졌다.
B씨와 A씨는 같은 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B씨가 숨진 날은 A씨 사고와 관련한 안전관리 책임자 2명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날이자, A씨의 죽음을 계기로 내려졌던 작업 중지 명령이 해제된 지 불과 2주째 되는 날이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노동자 두 명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지만, 해당 업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른 처벌을 피했다. 근무 인원이 4~5명인 소규모 업체여서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달 31일 기장군의 한 건물 신축 공사현장에서는 C(50대·남)씨가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쳐 크게 다쳤다. C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음 날 결국 숨졌다.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법은 적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해당 공사 현장의 공사 금액이 50억 원 미만으로 법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달 4일 부산항에서 화물차 타이어를 교체하던 작업자 D(60대·남)씨가 튕겨 나온 대형 타이어에 머리를 맞고 숨진 사고도 마찬가지다. D씨가 속한 업체는 5인 이하 사업장으로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우려 현실로…"절대 다수가 영세 사업장…안전조치 필요"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내리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는 등의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이 법안은 상시 근로자가 5인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 현장의 경우 법 적용이 3년 유예돼 2024년 1월까지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난해 법 제정 전부터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의 '사각지대'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 섞인 지적이 쏟아진 바 있다. 결국 최근 한 달 사이에 부산에서 중대재해법이 적용되지 않는 대형 산재사고가 잇따르며, 우려는 현실이 된 모습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산의 종사자 50인 미만인 사업장은 2020년 기준 39만 8천 개로, 40만 개인 전체 사업장수의 99%에 달해 중대재해법을 적용받지 않거나 유예된 상태다. 5인 미만 사업장도 전체의 87%인 35만여 개에 달해, 2024년 이후에도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들 대다수 업체는 중대 산업 재해에 해당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의 대표가 아닌 의무를 위반한 관계자에 대해서만 처벌하고,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가 많아 사고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강기영 민주노총 부산본부 조직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은 처벌이 약하고, 기업주에 대한 직접 처벌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인 예방 조치를 이끌어낼 만큼의 효과나 강제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지 오래됐지만 산재 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했다는 것은 법의 효력이 그만큼 낮고,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고용노동부에서 근로 감독을 철저하게 하면 기업주는 안전보건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며 "기존과 같이 사전 예고후 현장을 찾는 형식적인 단속이 아니라 불시에 방문해 안전조치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2.11.09 1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