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기업의 새로운 동력" 악재 딛고 베트남 진출 성공한 삼덕통상
▶ 글 싣는 순서 ① "철근, 세계 어디에도 필요한 것" 대한제강, 싱가포르에 안착한 이유
② "고난은 기업의 새로운 동력" 악재 딛고 베트남 진출 성공한 삼덕통상
(계속)
신발에 대한 열정 딛고 일어난 삼덕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정부가 업체 한 곳당 직원 1명이 차 한 대로 필요한 물건을 빼 오랬다. 주어진 시간은 단 사흘. 원부자재만 수십t씩 쌓여있다. 기계 장비는 옮길 엄두도 못 낸다. 무려 북측 근로자 3천여 명이 한해 신발 360만 켤레를 만들던 일터였다. 남북 평화의 상징이자 한반도 경제의 새 지평을 열었던 삼덕통상은 하루아침에 빈손으로 경의선을 넘었다.
사업은 신뢰와 속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어가 원하는 제품을 다시 만들려면 대체 부지 확보가 시급했다. 부산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높은 인건비 탓에 원가를 낮출 수 없었다. 그렇게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를 발로 뛰며 찾은 곳이 베트남 남쪽에 있는 롱안(隆安)성이다.
2016년 6월, 삼덕은 베트남의 경제도시 롱안에 또 다른 신발 여정을 시작했다. 이듬해 현지 인력 1500명을 고용해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개성공단의 10여 년간 공장 운영 노하우는 베트남에서 꽃을 피웠다. 기술력, 품질경영, 글로벌 생산기지, 신개념 생산시스템 연구개발(R&D) 센터 가동으로 빠르게 경쟁 우위를 잡았다.
그렇게 8년을 내달린 끝에 삼덕 베트남에서만 종업원 3800명이 연간 420만족을 생산한다. 바로 옆에 위치한 영인비나에서는 종업원 700명이 반제품 180만족을 만든다. 베트남 2공장도 짓고 있다. 내년에 바로 2천명을 고용해 본격 가동한다.
지난 8일 취재진이 찾은 삼덕통상 베트남 공장은 압도당할 만한 규모였다. 좌우로 길이 350m의 생산설비가 열을 맞춰 길게 늘어서 있다. 신발 한 켤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은 생각보다 세분됐고, 정교했다. 신발 밑창을 붙이고, 가죽에 박음질하고, 신발 끈을 끼는 작업 모두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손이 빠른 직원들은 로봇 수준의 속도와 완성도로 자신의 공정을 일사불란하게 해냈다.
삼덕은 자동차 제작 때 쓰는 컨베이어 흐름 원리를 신발에 적용했다. 한 라인에서 생산, 재봉질, 무두질(가죽을 피혁으로 가공하는 작업), 부착, 완성 뒤 품질관리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부문별 맡은 업무가 구체화 돼 있고, 작업 속도가 균일하다. 효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제정한 우수 제조 품질관리 기준인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s) 지수가 있다. 경영관리와 개선 노력, 위험관리, 품질 경영, 관리, 테스트, 직원 교육을 종합적으로 본다. 삼덕 베트남의 GMP는 98.2%, 삼덕통상 본사 88.46%보다 높다.
지적재산권도 소재부품 특허 10개, 완제 10(국제특허2)개, 공정·시스템 7개 등 총 27개 이른다. 정부가 글로벌 강소기업 300개를 키운다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월드 클래스 기업 300개를 선정했다. 삼덕은 2016년 여기에 선정됐다. 신발 분야로는 최초, 유일한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개성공단 폐쇄의 뼈아픈 기억, 공장을 본격적으로 돌리자마자 몇 해 뒤 시작된 코로나19,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위협은 불현듯,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버틸 수 있는 저력은 기술·개발이었다. 삼덕 R&D기술센터의 경우 부산 강서구 공장에만 150명, 베트남 현장에도 50명에 이른다. 본사 근무 인력이 250명이니 40%가량이 기술개발 인력인 셈이다.
삼덕이 생산하는 브랜드는 케이투(K2), 아이더, 노스페이스, 머렐, 디스커버리, 네파, 블랙야크 등 거의 아웃도어 브랜드 대부분이다. 고급 러닝화와 골프화 등 고부가가치 제품도 소량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문창섭 회장은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공장을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고, 다시 사업을 정상궤도로 빠르게 올리는 것에 집중하고 각오와 의지를 계속 다졌다. 임직원들의 절실함이 지금의 삼덕"이라며 "베트남 인건비도 상승하고 있다. 그만큼, 생산성을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부산상의-롱안성과 업무협약 체결, 부산기업 진출 지원키로
현재 베트남 롱안성에는 한국기업 200여 개가 진출해 있다. 부산지역 신발 관련 업체는 거의 롱안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부산기업의 진출이 많아지자 부산상공회의소가 발 벗고 나섰다.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사절단 33명은 8일 롱안성 현지를 방문했다. 후인 반 선 롱안성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등 경제 각료들이 대거 참석해 사절단을 환대했다. 부산상의와 롱안성 산업무역부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부산기업의 베트남 진출에 적극 협력, 지원키로 했다.
롱안성 관계자는 "전 세계 40개국의 외국인이 직접 투자에 나서 투자 프로젝트 1280개가 진행 중이다. 투자 규모가 111억 달러로 베트남 전체 1위를 차지했다"며 "한국기업이 롱안성에 진출한다면 다양한 투자 우대 정책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인들은 진출 가능한 분야와 부지, 세제 혜택, 정부 지원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현지에서 베트남-한국어 통역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기업인들은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한 참석자는 "친환경, 첨단산업, 앞으로 베트남 정부의 경제 정책 등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 게 많았지만 아쉬웠다"며 "하지만, 기업은 언어를 넘어서 숫자, 가능성에 더 의미를 둔다. 해외 진출이 절실하면 다른 방식으로 또 소통하면 된다"고 밝혔다.
양재생 부산상의 회장은 "롱안성의 풍부한 노동력과 부산기업의 기술이 만나면 큰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 부산기업이 롱안성에 진출해 진지를 구축하기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며 "부산기업이 해외에 활발히 진출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하고, 현지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2024.11.13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