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영화톡]애니 덕후! '극장판 스파이 패밀리' 두근두근했어?
※ 스포일러 주의
"사람은 누구나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자신'을 갖고 있다. 친구에게도, 동료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잘 포장한 일반인 모드나 직장인 모드로 본심을 감추고, 본성을 감추고, 그렇게 해서 덕후의 세계는 위장된 머글의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덕후.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인 '더쿠와쿠'. 그의 덕질 레벨은 가히 만렙(10덕)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더쿠와쿠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머글인 척하려 하지만, 그와 몇 마디만 나눠보면 단어 하나에서도 '덕후'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굿즈를 위한 오픈런은 당연하고, 극장판 국내 개봉을 기다리지 못해 일본행도 주저하지 않는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물론 '극장판 스파이 패밀리 코드 : 화이트'도 일본에서 먼저 보고 당당하게 자랑하는 애니에 진심인 덕후, 그게 바로 더쿠와쿠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봤다. '귀칼' 덕후로 알았던 그가 어떻게 '스파이 패밀리'에 입덕했는지, 그리고 덕후의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든 '스파이 패밀리' 첫 극장판의 매력은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참고로 공공연한 비밀처럼 누가 봐도 덕후지만 자신의 덕질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는, 그의 '취재원 보호' 요청에 따라 본명이 아닌 본인이 지은 코드명 '더쿠와쿠'로 대체한다. [편집자 주]
애니 덕후의 간단 요약 : '스파이 패밀리' 매력 포인트
최영주 기자(이하 최)> 독자들을 위해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더쿠와쿠> (소년만화 재질로) 안녕. 취향존중주의 더쿠와쿠다.(후훗) 추리와 스포츠, 열혈물 등 장르를 크게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웰메이드 애니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스파이×패밀리'(이하 '스파패')와 '귀멸의 칼날'을 즐겨 봤다. 덕질은 굿즈로 시작해서 콜라보 제품을 찾아다닌다. 가지고 싶은 건 해외에서 직접 구해오기도 한다. 덕질에 국경은 없으니까.(웃음)
주로 애니는 특별한 스토리를 구성한 극장판이 존재하는데, 제작사와 배급사에 따라서 일본 개봉 후 한국에 개봉하기까지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1년이나 걸릴 때도 있다. 이럴 땐 가끔 궁금증을 참지 못해 일본에서 선(先) 관람을 할 때도 있다. 그만큼 진심이니까.(웃음)
최> 일본 애니 중에선 '귀멸의 칼날' 덕후로 알고 있었다. '스파패'는 어떻게 '입덕'하게 됐나?
더쿠와쿠> 우선, 흔한 이세계(異世界)물이 대세인 요즘 가뭄의 단비처럼 독창적인 스토리의 작품이 나왔다. '스파패'는 스토리의 구성 배경이 동독과 서독의 통일 전 갈등 상황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국가간 엄청난 첩보 활동이 일어나는 세계관으로 스토리가 어두워질 수 있어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매우 궁금했다.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 등 웰메이드 추리 애니가 될 줄 알고 봤는데, 엉뚱하지만 미션을 짜임새 있게 수행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보면서 관람에서 즐감(즐거운 감상)으로, 다시 입덕으로 넘어가게 됐다.
최> 정말 '저게 미션이라고?' '저게 국가간 전쟁을 막는다고?' 싶을 정도로 엉뚱하고 황당한 미션도 있지만, 극 중 인물들은 매우 진지하다. 또 정말 스파이 장르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비껴가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재밌는 지점인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더쿠와쿠> 다른 한 가지는 원작자 엔도 타츠야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다. 보통 데뷔 후에 작품에 집중해 히트작을 만들어 유명해지는 일반적인 성장 스토리와는 다르게 엔도 작가는 오랜 기간 어시스트로 활동했다. '청의 엑소시스트'와 '진격의 거인' 등 유명한 작품의 구석구석에 엔도의 손길이 들어갔다. '스파패'는 2019년 3월 연재를 시작했는데, 내가 이 작품을 접한 건 2020년이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건 '귀멸의 칼날'이었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바로 '재밌다!' 였으니까!
최> 골격은 '스파이물'인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가족'이 있고, 이걸 '코믹'하게 풀어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대세인 요즘, '스파패'만의 힐링과 코미디 역시 입덕 요소다. 그렇다면 덕후로서 '스파패'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더쿠와쿠> 스토리의 중심에 서 있는 가짜 가족의 가장 로이드 포저, 청부 살인업자이지만 초보엄마로 위장하고 있는 요르 포저,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에스퍼(초능력자)지만 이를 속으로만 알고 행복한 가족을 꿈꾸는 아냐 포저, 미래를 예견하는 가짜 가족의 반려견인 본드 포저. 스파이와 암살자, 초능력자가 섞여 작중 분위기를 코믹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가장인 로이드가 가짜 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스파이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고, 그 활동이 의붓딸인 아냐에게 달려있다는 스토리는 작품의 스타일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로이드의 첩보 활동, 요르의 반전 액션, 아냐의 학교생활이 어우러져 여러 가지 취향을 가진 독자와 관객의 니즈를 확보했다. 하나의 장르로만 진행되는 작품은 다소 지루할 수 있는데, '스파패'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스파이 패밀리' 첫 극장판, 어떻게 봤어?
최> 비는 순간 없이 알차게 기승전결을 갖고 진행되면서도, 다양한 장르가 잘 어우러졌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다. 또 아냐의 초능력 덕분에 겉(위장)은 의사 속(진짜 모습)은 스파이인 로이드, 겉은 시청 직원 속은 암살자인 요르의 내면이 독자·시청자에게 보인다는 점, 즉 상반되고 양면적인 모습에서 생겨나는 코믹과 감동이 '스파패'의 핵심 코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일본에서 먼저 보고 온 첫 극장판은 어땠나?
더쿠와쿠> 귀여운 억지가 섞여 있지만 볼 것이 많은 놀이동산 같았다. 아냐는 여전히 귀여웠고, 요르는 엉뚱했지만 '시리어스 모드'(진지 모드)가 켜졌을 땐 눈이 즐거운 액션을 보여줬다. 본드의 예지력은 방심하고 있을 때 '슉!' 튀어나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셜록 홈즈를 연상케 하는 로이드의 첩보 활동은 언제나 그랬듯이 빈틈없었다. 하지만 작중 구석구석 상황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물음표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최> 어떤 부분에서 물음표가 떠올랐나?
더쿠와쿠> 보통 관객들은 연관성이 부족한 부분 또는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곤 한다. 아무래도 극장판의 배경이 '포저 가족'이 활동하는 곳이 아니라 다른 지역이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에는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전개와 연출을 보여주더라. 참고로, 난 지난해 12월에 일본에서, 그리고 3월에 한국에서 두 번 관람했다. 일본에서 볼 때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확인하고 특정 신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재관람했다. 마침 무대인사 회차여서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웃음)
모두를 놀라게 한 '○○의 신', 일본 팬들도 충격이었을까?
최> 역시 덕후! 그런데 극장판에는 시리즈에서 볼 수 없는 작화의 변주가 나온다. 시사 후 가장 많이 이야기가 나온 장면 중 하나였는데, 바로 국내에서는 '응가의 신'으로 번역된 시퀀스다. '스파패'를 모르는 사람은 원래 '스파패'가 이런 분위기냐고 물었고, '스파패'를 잘 아는 사람도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스파패'의 나라이자 '스파패' 덕후들의 본거지인 일본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더쿠와쿠> 초…엉뚱 시퀀스였다. '스파패'의 여러 엉뚱한 상황을 경험했지만 어색했다. 일본에서도 주변에서 '저게 뭐야' '에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최> 역시나 우리만 당황스러웠던 건 아니었나 보다. 나는 자체 진동 모드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상영관을 나와서 보니 손에 볼펜 자국이 한가득…. 그래도 난 '응가'라는, 어린아이들의 웃음 버튼이자 B급 병맛 코드의 대표적인 아이템을, 이 아이템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수채화 톤의 작화로 그려내며 '아이러니'를 극대화했다고 본다. 예상치 못한 부조화에서 오는 병맛 개그 코드가 좋았다.
더쿠와쿠> 국내에서도 옆자리 관객은 '작붕(작화붕괴)인가?' '극장판인데 왜 저런 거지?' 등의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문제의 부분을 연출할 수 있는 느낌은 기존 캐릭터의 표정과 행동으로도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응가의 신'은 가끔 모든 문이 잠겨있는 화장실 앞에서 우리도 만날 수 있다. 그 상황에서 우리의 머릿속은 빛의 속도로 고민을 거듭한다.
기존 작화의 변주가 일어난 것은 평소 캐릭터의 사고가 '장트러블'로 인해 급속도로 빠르게 전개된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애니메이터의 '갑툭튀' 불친절한 표현은 관람하면서 '왜? 굳이 그렇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데서 조금 아쉬웠다.
이 덕후, 어디서 '두근두근' 했을까
최> 난 극장판이라서 할 수 있는 변주라는 점에서 최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라고 외쳐보겠다. '응가의 신' 시퀀스 외에도 요르의 진면목이 보이는 친절하면서도 다이내믹한 함선 내 액션 신을 들고 싶다. 정말이지 '최종병기 요르'였다. 더쿠와쿠는 어떤 신에서 두근두근했나?
더쿠와쿠>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준 요르의 액션 신은 이 작품의 로열젤리임이 틀림없다.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빌런도, 반전 상황도 재미있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요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든 액션 신이었다.
최> 역시 그걸 뽑을 줄 알았다. 두 장면 정도 더 이야기해 달라.
더쿠와쿠> 로이드와 빌런의 시식회 신도 이야기하고 싶다. 원작에서 로이드가 경쟁하는 상황은 많이 벌어지지만 시식하는 승부는 글쎄, 기억나는 게 잘 없다. 그만큼 흔하지 않은 상황이고 재미있는 소재다. 또한 빌런의 통수는 시식회를 즐겁게 해주는 또 다른 요소였다. '웰메이드 설경'을 빼놓을 수 없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의 모습을 바라보면 힐링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기존 무대와는 다른 색다름도 좋았다.
최> 그렇다면 이번 극장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캐릭터는 누구였나? 난 '응가의 신'을 만나 현란한 퍼포먼스와 표정 연기를 펼친 데 이어 '엑소시스트'의 리건 못지않은 최고의 침대 액션 연기를 펼친 아냐 포저!
더쿠와쿠> '스파패'는 한 캐릭터가 끌어가는 작품이 아니다.(진지) 모두가 개성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스파패'에는 스토리의 구성상 구심점과 꼭짓점을 담당하는 두 캐릭터가 있다. 구심점은 로이드고, 꼭짓점은 아냐다. 하지만 이번 극장판에서는 두 가지 포인트가 아냐에게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품의 무대가 옮겨지는 이유도, 극장판 스토리의 필수 아이템을 가진 것도, 작품에서 가장 힘을 주고 표현한 캐릭터 또한 아냐였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스파패' 원작 스토리에서 자주 보였던 아냐의 '다크페이스'(욕심에 가득 찬 얼굴)가 잘 안 보였다. 귀엽고 울먹거리는 모습도 사랑스럽지만, 욕심이 차오른 모습이 일품인 캐릭터였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모두 담고 있는 아냐의 대활약은 '두근두근!'했다.
최> 아냐 만만세! 자, 이제 마지막 시간이다. '극장판 스파이 패밀리' 한 줄 평을 해보자.
더쿠와쿠> "초콜릿은 신중히 맛보자!"
2024.03.26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