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듄: 파트2'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방대한 세계관과 약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소설을 두 편의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생략과 압축이다. 서사와 서사,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 생략되고 압축된 것이 많음에도 영화는 원작을 본 관객과 보지 않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며 전 세계에 '듄친자'('듄'에 미친 사람)를 만들어냈다.
영화 '듄'을 만나 '듄친자'로 재각성한 원작 소설을 본 자와 '듄친자'에 입문한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자가 전편에 이어 다시 만나 '듄: 파트2'의 매력을 짚어보기로 했다. 참고로 '소설 본 자와 보지 않은 자' 콘셉트 유지를 위해 유원정 기자는 반강제로 원작 소설을 사놓기만 하고 읽지 못했다. [편집자 주]'듄: 파트2' 어떻게 봤어?
최영주 기자(이하 최)>
전편과 마찬가지로 생략과 압축의 미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리고 '영화적 체험'의 의미를 알려준 작품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난 '듄: 파트2'는 전편보다 더 진해진 모래 빛으로 돌아왔다. '듄'을 통해 세계관과 주요 캐릭터를 소개하며 전 세계적으로 '듄친자'를 양산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마치 스파이스처럼 '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서사적이었던 파트1에 비해 액션 시퀀스가 많아지며 보다 역동적인 영화로 완성됐다. 소설 2부 '듄의 메시아'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파트3에서 어떻게 대서사를 마무리할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유원정 기자(이하 유)> 원작을 보지 않았지만 이미 1편에서부터 어떻게 전개될 지는 예상이 가긴 했다. 핍박을 당한 히어로가 변방으로 쫓겨나 나름의 성장기를 거치고, 다시 힘을 되찾아 돌아온다. 이 서사를 충실히 따를 것 같았고, 예상대로였다. 그럼에도 166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파트1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역동적인 서사와 하코넨에 쫓기는 폴과 어머니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의 스릴 넘치는 도피를 담았다면 파트2에서는 '모래언덕'을 뜻하는 영화 제목답게 사막이 곧 생활인 프레멘들의 삶에 밀접하게 녹아 들어간다. 종교적 신앙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또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간의 신경전과 폴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도 흥미로웠다. 클라이맥스에서는 프레멘 전사로 거듭나는 폴과 프레멘 군대의 다채로운 액션신으로 볼거리를 훨씬 확장했다. 이제 파트3까지 또 책을 못 보게 된다면 너무 슬플 거 같다.
최> 그럼, 이제 2편 '듄의 메시아'는 조금만 더 아껴두고 1편 '듄'만 읽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에겐 '듄: 파트3'가 남았으니 말이다.
외화 '듄: 파트2'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한층 더 다이내믹하고 깊어진 아라키스의 세계
최> 드니 빌뇌브 감독이 개봉 전부터 강조했듯이 파트2는 액션 시퀀스가 많아졌다. 대표적인 장면이 폴이 온전한 프레멘으로 인정받기 위한 마지막 과업인 샤이 훌루드, 즉 모래 벌레를 타는 장면이다. 역시나 이 부분 역시 각색됐다.
폴이 처음으로 모래 벌레를 타는 장면이 소설에서는 (영화와 비교하자면) 그렇게 멋지게 그려지진 않는다. 영화는 이를 깔끔하게 각색과 압축을 거쳐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영화적인 체험성'을 한층 높인 다이내믹한 장면으로 완성했다. 해당 장면에서는 눈과 입속으로 모래가 들어올 것 같은 느낌마저 받을 정도로 영화라는 플랫폼이 가진 장점을 잘 활용했다. 모래 밑에서 튀어 오르는 프레멘식 전투 방식 역시 모래 빛 SF에 어울리는 액션 시퀀스였다.
유> 1편에서 프레멘 사회는 폴에게도 관객에게도 미지의 세계와도 같았다. 그런데 2편에서 폴의 시선을 따라 관객 역시 프레멘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고, 프레멘들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이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곳곳에 배치된 프레멘 전사들의 액션신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급' 모래 벌레를 타는 폴의 액션도 압권이었지만 하코넨의 스파이스 수확을 방해하거나 정복하러 온 하코넨에게 한 방 먹이는 폴과 프레멘 전사들의 액션신이 통쾌하면서도 치밀하게 구성됐다. 이를 통해 하코넨과 프레멘 두 세력 간 충돌 긴장도 점점 높아진다. 프레멘 거주지 시에치와 아라키스의 남부 디자인 역시 인상적이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살았던 터키 카파도키아나 왕의 무덤인 요르단 페트라를 떠오르게 했다. 예상대로 엔딩 크레디트에 요르단 팀이 나와서 반가웠다.
외화 '듄: 파트2'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최> 기독교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톨킨('반지의 제왕' 저자)이 '듄'을 몸서리치게 싫어했다는 말이 떠올랐다.(웃음) 말한 것처럼 이슬람과 기독교 등 굉장히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SF다. 특히 프레멘의 언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아랍 문화의 영향이 짙은 SF다. 또한 유럽 신화, 신비주의와 반식민지주의 등의 내용까지 담겼다. 특히 굉장히 생태학적인 SF기도 하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우주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전편에서 폴은 소년에 가까웠다. 칼라단에서 아라키스에 처음 발 디딘 폴이 무앗딥으로서의 거대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막 마주 선 이야기가 파트1에 해당했다. 파트2에서 폴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폴에서 무앗딥이라는 프레멘들의 메시아로 각성한다. 비로소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 즉 영웅 또는 영웅주의 그 자체가 가진 위험성에 대한 경고로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유> 맞다. 1편에서 폴은 아버지의 죽음과 '공작 후계자'라는 정체성이 갑자기 무너지고 불확실한 예언들에 엄청난 혼란을 겪는다. 2편에서 폴이 아버지의 반지를 빼는 순간, 폴의 '정체성' 이 프레멘 그 자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폴은 끊임없이 자신이 프레멘의 메시아가 아님을 증명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보다 더욱 강한 운명의 이끌림대로 무앗딥, 즉 프레멘의 메시아로 각성한다.
그 전에 다소 서툴지라도 사람에게 진실된 폴의 모습과 프레멘들이 집결한 곳에서 맹목적 신앙을 부추기는 폴의 연설이 극도로 대비가 된다. 이는 예언대로 '성전'의 시작이 된다. 1인 2역까진 아니지만 그 미묘하게 달라진 경계를 티모시 샬라메가 완숙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다만 전개를 압축해서인지 몰라도, 그렇게 메시아의 운명을 거부하던 폴이 단지 예언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다소 갑작스럽긴 했다.
외화 '듄: 파트2'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아라키스만큼 빛나는 캐릭터들
최> 파트2에서는 이룰란 공주(플로렌스 퓨)와 황제 샤담 4세(크리스토퍼 월켄), 레이디 마고트(레아 세이두) 등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가장 강렬한 등장을 보인 인물은 아무래도 오스틴 버틀러가 연기한 페이드 로타 하코넨인 것 같다. 펜링 백작이 나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지만, 그까지 등장했다면 이야기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기에 감독의 선택이 이해가 간다.
페이드 로타에 관한 소개만으로도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소비해야 했기에 감독은 이번에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그의 '싸이코닉'한 면을 부각하고자 시각적 강렬함의 방식을 취한다.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캐릭터의 분위기는 강렬함을 품은 흑백 시퀀스로 드러난다. '듄' 시리즈는 생략과 압축의 미가 있는 영화고, 이러한 감독의 각색 능력이 드러난 게 페이드 로타 등장 신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엘비스'를 통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오스틴 버틀러가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설득력을 부여했다.
유> 캐릭터도 그렇지만 하코넨 모행성의 연출이 새로운 긴장감을 선사하는 영화의 환기점 같다. 그곳은 치열한 생존 가운데 전사로서 서로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가 정립되는 아라키스 프레멘 사회와는 180도 다른 세계다. 무기질적 야만이 난무한 곳이랄까. 하코넨의 후계자이자 소남작 페이드 로타는 결투를 통해 그런 비인간적 하코넨 문화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끝없이 치솟은 수직 구조의 경기장은 관객을 압도하고, 이에 열광하는 군중을 내내 흑백 처리하면서 광기의 파시즘을 보여주고 있다. 하코넨 모행성에서는 성대한 불꽃 놀이마저도 음울한 먹물처럼 퍼져 나간다. 실내에서는 다시 색을 되찾으면서 감독이 일부러 이런 대비를 준 게 느껴졌다.
'사막의 샘' 챠니 역의 젠데이아 콜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편에서는 등장하고 너무 금방 끝나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폴의 조력자이자 연인, 그리고 뛰어난 프레멘 전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폴의 각성 전까지는 함께 극을 이끈다. 귀로만 들은 원작 스포로는 원래 챠니가 폴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폴의 정략 결혼에 상처 받아 모래 벌레를 타고 떠나 버린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 만큼, 전우애처럼 끈끈한 폴과 챠니의 로맨스 향방 역시 3편에서 결정이 날 것 같다.
최> 폴과 챠니의 '사랑'이야말로 '듄' 시리즈의 주요 이야기 중 하나다. 영화화 과정에서 챠니 캐릭터도 확실히 눈에 띈다. 이미 소설과는 어느 정도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챠니가 과연 '듄의 메시아'를 영화화한 파트3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궁금하다.
외화 '듄: 파트2'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듄친자' 양산한 '듄' 시리즈만의 매력
최> 누군가는 완벽한 영화화가 불가능한 게 소설 '듄'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원작 소설은 방대하다. 철학, 종교, 인류학, 정치, 역사 등을 아우르는 정말 '대하 SF'다. 그렇기에 '듄'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손길 아래 근 40년 만에 영화로 나왔고, 그 영화가 소설의 묘미를 제대로 포착해 스크린에 펼쳐놨기에 전 세계에서 '듄친자'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략하고 압축해도 원작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영화적인 재미를 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줬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아라키스라는 행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 공상과학이라는 장르가 가진 근본적인 매력을 잘 담아냈다는 점에서 '듄'은 전설로 불린다. 또한 영웅이란 무엇이며 그동안 수많은 작품이 영웅을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 등 다방면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는 게 '듄'의 매력이다. 드니 빌뇌브의 장점이자 강점이 '듄'의 결과도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장엄하고 철학적인 SF가 캐릭터와 메시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작품 특유의 모래 빛으로 스크린에 구현됐다는 것만으로도 영화 '듄'은 빛나는 작품이다.
유> 확실히 원작 소설을 봤다면 나도 영화 '듄'이 구현해 낸 셰계관과 성공적 각색에 더욱 박수를 보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를 보지 못한 입장에서는 철저히 영화적으로만 평가하고 싶다. 볼거리에 치중한 SF 영화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 묵직하게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탄탄한 서사가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웅과 광신도, 헤게모니 등이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각 대가문이나 통치 세력인 황제, 또 베네 게세리트라는 '흑막' 세력, 녹지를 꿈꾸는 프레멘 전사들까지 매력과 개성이 강하지만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튼튼하게 쌓았다. 이들이 이끌어 나가는 서사 또한 무너짐 없이 고조되다가 결말 부분에 웅장한 전투로 맞부딪치며 폭발한다. 은원에 얽히고, 정치에 얽히고, 또 종교에 얽히고. 아라키스는 마치 인간 문명의 축소판 같다. 그렇기에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듄'의 업적은 분명하다. 너무나 초장편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던 원작 소설을 한 번 읽어 보고픈 마음을 유발하고, 심지어 영화에서 원작으로 역유입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을 다한 게 아닐까.
한 줄 평 (속마음 한 줄 평)
최> 스파이스처럼 중독성 강한 모래 빛 SF 대서사시. (그래서 워너, 3편은 언제 나오나요?)
유> SF계의 '반지의 제왕'이 되기까지 이제 한 걸음. (그래서 소설은 언제 완독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