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전 세계 SF 팬들을 매료시킨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손을 빌려 스크린에 다시 한번 구현된다는 소식에 많은 원작 팬과 영화 팬이 설렘과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마주한 영화 '듄'은 오랜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음과 동시에 여정을 시작한 폴에 대한 새로운 기다림으로 바뀌었다. 과연 드니 빌뇌브 감독과 '듄'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줬는지, 원작 소설을 본 자와 보지 않은 자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눠봤다. [편집자 주]원작 소설 완독한 자 vs 원작 존재도 모른 자
최영주 기자(소설 본 자, 이하 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기다림을 만족으로 바꾼 영화였다. 원작 소설 팬 입장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한 컷, 한 신 공들여 만든 게 눈에 보이는 작품이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 특유의 묵직함과 비장함이 소설의 웅장한 분위기와 찰떡으로 맞아떨어졌다.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 이하 폴)가 공작가 후계자에서 아라키스의 구원자로 서는 것에 집중하면서 압축적으로 원작을 스크린에 잘 풀어냈다.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원정 기자(소설 안 본 자, 이하 유): 소설 원작을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난 처음에 이게 원작이 있는 영화인 줄도 몰랐다. SF 영화 중 이런 느낌과 스타일의 영화가 없다 보니 화려하고 웅장한 예고편을 보면서 기대를 했지만, 비주얼만 있고 서사가 부족하면 자칫 '노잼'(재미없는)이 될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고편을 봐도 오락성이 굉장히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반신반의하면서 봤다.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가 보통 오락성을 벗어나 시종일관 진지하게 가게 되면 우습거나 지루할 수 있는데 압도되는 게 있었다.
최: 장엄하고 우아하면서 어른들을 위한 SF 서사였다. 감독의 전작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등을 보면 감독이 진지하고 묵직하면서도 웃음기를 뺀 무게감 있는 영화를 잘 만든다. 정말이지 감독의 스타일이 원작 소설의 장중함, 우아함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유: 나도 이번에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를 다시 봤는데, '듄' 역시 감독답게 풀어냈다. 감독 본인이 자기 스타일에 최적화된 프랜차이즈를 만난 것 같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시켜서 잘 해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는 과하게, 넘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 작은 실마리를 통해 상상력을 서서히 증폭시키는 맛이 있다. '듄'도 고요한 가운데서 몰입감 있게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방식을 보여줬다. 감독의 대표적인 장기라고 본다. 여기에 더해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았는데, 웅장한 사운드와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상황이 잘 어우러졌다.
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듄' 세계관 진입 난이도는?
최: '듄'은 기본적으로 방대한 세계관과 거대한 서사를 갖고 있다. 소설은 이러한 걸 자세하게 설명해도 괜찮지만, 영화는 그렇게 하는 순간 다큐가 된다. 감독이 기본적으로 소설에 대한 이해가 깊은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 가져갈 것인지, 과감하게 어떤 부분은 버리고, 어떤 부분은 압축적으로 풀어낼 것인지 선택과 집중을 잘했다.
영화라는 건 원작을 본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관객이 즐겨야 하므로 세계관의 기본적인 구조와 줄기를 설명적으로 이해를 시키고, 그다음부터는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에 집중한 것 같다. 그렇게 '폴'이라는 메시아 성장기의 사실상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편을 스크린에 풀어냈다.
유: 물론 처음 교육 자료나 챠니(젠데이아)의 내레이션 등을 통해 세계관을 설명하는 방식이 좀 평이하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담을 게 많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관객들이 이야기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선행이 있었어야 했다. 레토 아트레이데스 공작(오스카 아이삭)의 후계자였던 폴은 아라키스에 온 후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벗어나 각성하기 시작한다. 폴에 집중해서 관객들이 그 서사에 빠질 수 있게 여러 요소를 영리하게 잘 배치했다.
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드니 빌뇌브와 SF 전설 '듄'이 만나면?
유 : 시리즈물의 연속성과 흥미를 이어가기 위해 안배한 연출이지 않았나 싶다. 특히 나처럼 원작 소설을 안 본 사람도 진입 장벽이 낮아지도록. 앞서 말한 감독의 연출적 장점을 잘 살리면서 훨씬 구조는 단순화시켰다. '컨택트'처럼 복잡한 철학적 사유보다는 선과 악의 구도, 피지배와 지배계층의 계급 구조를 명확하게 설정한 점이 알기 쉽게 다가왔다. 세계관 설명은 복잡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구도로 선명하게 표현했다. 상당히 전략적이었다.
최: 지루하다거나 재미없지는 않았다. 우주 위 방대한 세계관을 아이맥스로 구현해 그 매력을 최대치로 느낄 수 있었다. 연출적으로는 세계관이 갖는 광활함, 아라키스 신비함 등을 보여주기 위해 원거리 풀샷도 많이 보여주고 넓은 시야각의 화면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아이맥스에 걸맞게 미장센을 잘 살린 영화였다. 사운드 자체도 한스 짐머가 음악 감독을 맡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만나면서 최고의 몰입을 만들어냈다. 정말 온몸으로 아라키스와 폴의 장대한 여정의 시작을 체험할 수 있는 영화였다.
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유: 처음 시작은 갸웃햇으나 점점 가면 갈수록 납득 가능하게 빠져들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유치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폴의 시점에 이입해서 같이 가게 됐다. 프레멘들이 '창조자'라 부르는 모래벌레라는 크리처도 잘못하면 우스울 수 있는데 마치 사막과 한 몸이 돼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스타일로 잘 구현했다.
그리고 선택을 잘한 것 같다. 미장센을 너무 이질적인 SF 스타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느낌으로 만들었다. 아라키스는 중동이나 이집트, 사막에 있는 고대 문명이 떠오르고, 반대로 공작 가문 등은 중세 유럽 문화권 느낌이다. 관객이 상상 가능한 범위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사다우카가 있는 행성은 또 아포칼립스 분위기가 난다. 거기에 우주선이나 무기 등은 묵직하지만 딱 SF답게 미래지향적이다. 공간, 콘셉트 등을 친밀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도록 잘 접목해 다채롭게 다가왔다.
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메시아로 포장된 뻔한 영웅 서사?
최: 원작 소설 독자로서 아쉬운 점은 하코넨 남작가의 음모로 인해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가 진짜 배신자 유에 박사(장첸) 대신 레토 공작 측근들인 투피르 하와트(스티브 맥킨리 헨더슨)나 거니 할렉(조슈 브롤린) 등으로부터 의심을 받는다. 소설 속 레이디 제시카와 거니 할렉 등 사이 불신에서 오는 갈등과 심리묘사가 쫄깃한데 영화는 그 부분이 생략돼 아쉬웠다.
유: 사실 서사 자체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영웅 서사였다. 세상 곱게 자란 도련님이 배신과 침략 등 험난한 여러 과제를 마주하면서 각성,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비슷한 주제 의식이나 캐릭터, 소재라 해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소설로 봤으면 좀 더 독특한 매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영화는 이를 단순화시켜 어디서 본 것처럼 흔하고 조금 평면적인 느낌이 들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건 아쉬운 점이다.
앞으로 벌어질 메시아의 구원 서사가 쉽게 예측이 됐다. 물론 나도 다음 편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다. 폴이 보는 미래가 실제 일어나지는 않고 선택하는 갈래에 따라서 나뉘는 점들은 예측 불가능한 재미를 준다. 다만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폴이 영웅 내지 메시아로 나아가는 전개가 너무 당연히 예측 가능했다.
최: 이전 히어로 무비 속 히어로들이 초인적 힘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줬다면, '아이언맨' '스파이맨' 등에서는 주인공이 강력한 힘을 가진 초인적 존재임에도 힘의 무게에 대해 고뇌하고 두려워하면서 책임감을 느낀다.
폴도 미래를 보는 일종의 초인적인 힘을 가졌지만 지하드 같은 자신이 본 미래가 정말 일어날 것인지 고뇌하고 두려움에 떨고, 불안한 심리 속에서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은 이런 히어로물 주인공이 익숙해져서 식상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소설이 나온 당시에는 신선한 주인공의 속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보기에는 아쉬울 수 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