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크루엘라'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잠자는 숲속의 공주' 속 마녀 말레피센트에 이어 디즈니가 또 한 번 악의 상징이자 주연을 빛내는 수단으로만 존재해 온 빌런 재해석에 나섰다. 이번엔 '101 달마시안' 속 크루엘라가 그 주인공이다. 1960, 70년대 영국 런던이라는 현실 세계에 발 디딘 크루엘라는 펑키와 반항의 이미지를 온몸에 두른 채 사회 부조리에 저항한다. 어쩐지 디즈니스럽지 않은 디즈니 빌런 크루엘라의 저항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왜 지금 이 시대에 빌런의 재해석이 필요한지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스포일러 주의◇ 새로운 사회파 빌런 캐릭터의 탄생 런웨이 '크루엘라'최영주 기자(이하 최) :
'크루엘라'를 어떻게 봤는지 한 줄 평 해달라.
이진욱 기자(이하 이) : '조커'로 문을 연 할리우드 사회파 빌런극의 진화.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를 봤을 때 우리에게 익숙한 악역 캐릭터를 통해서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법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했다. '크루엘라'도 주인공이 우리에게 알려진 악역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그 자체로 독립된 서사를 지닌 캐릭터고, 다른 이름의 캐릭터를 넣어도 그 자체로 이야기가 완성되는 모습이다. 거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빌런을 넣음으로써 영화에 쉽게 다가가고, 이야기에 몰입하는 효과를 낸다. 할리우드에서 문을 연 '조커'나 '크루엘라'라는 영화가 지닌 장점인 것 같다. 캐릭터가 주는 재미나 향연도 있고, 서사가 주는 메시지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치로서 할리우드가 이러한 방법론에 눈을 뜬 게 아닌가 생각한다.
최 : 에스텔라에서 크루엘라까지의 런웨이. 에스텔라가 디즈니 빌런 크루엘라로 변화하는 과정은 물론 남작부인과의 대결 구도 소재를 '패션'으로 정한 게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보통 패션쇼의 화려하고 우아한 런웨이 뒤 백스테이지를 두고 '전쟁터'라고 표현하는데, 이 영화가 그러했다.
빌런과 빌런의 대결이지만 누군가를 죽이거나, 주변을 부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 즉 패션에 대한 재능 대결을 통해 나타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큰 줄기인 여러 가지 억압에서 벗어나, 사회적 규범 틀에 갇힌 에스텔라라는 인물에서 벗어나 크루엘라라는 진정한 자신으로 거듭나는 과정, 이번 영화가 크루엘라에 대한 소개라는 점에서 런웨이처럼 느껴졌다.
'조커'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조커'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렸다. 둘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듯한 작품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한 맛 '조커'라고 할까. 그리고 디즈니 영화지만 좋은 측면에서 디즈니 영화의 느낌을 벗어난 영화였다.
외화 '크루엘라'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구체제·구시대를 향한 저항의 움직임, 그 중심에 선 '크루엘라'이 : 시대에 주목하자면 1964년 에스텔라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 이야기가 진행된다. 1960, 70년대는 68혁명으로 대표되는 저항의 시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정권, 당시 드골 등으로 대변되던 권위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 저항이 컸다.
거기다 인종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은 물론 페미니즘, 히피 문화 등 기성 체제에 저항한다는 차원에서 시대적 배경과 크루엘라가 가진 전복의 가치가 잘 어우러졌다. 그 부분이 '조커'를 연상케 한다. '조커'도 지금 시대가 주는 모순을 짚으면서 그가 빌런으로 탄생하기까지 여정을 그린다. '조커'보다는 좀 더 유쾌하게, 크루엘라가 기성 체제에 저항하면서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을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보여줬다는 점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지 않나 생각한다.
최 : 이 영화는 디즈니가 그동안 구축해 온 IP 자체를 전복하는 것도 있지만, 영화 안팎으로 체제에 저항하고 이를 전복시키는 요소가 있다. 1970년대는 패션과 문화계에 자유와 사회 반항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극 중 에스텔라가 어린 시절부터 억압받는 상황에서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계속 저항하고, 그 끝에 크루엘라가 탄생한다. 또 크루엘라 대 남작부인의 대결 구도로 가는 상황에서 크루엘라는 얼굴에 '미래(The Future)'라고 그리고 나온다. 결국 캐릭터간 대결이 구시대·구체제와 새로운 체제 간의 대결로 이어진다고 보인다.
이 : 패션이라는 설정을 잡았던 게 묘수인 거 같다. 1960~70년대 패션은 이브 생 로랑이라는 세기의 디자이너 등으로 대표된다고 알고 있다. 기존의 고전적이고 실용적이지 못한, 화려한 것에 매몰돼 있던 복장이 타파되는 시기였던 걸로 안다. 그 시절 패션이라는 소재가 기존 체제나 기존 문화를 전복시키는 데 있어서 선봉에 섰다는 점에서 패션을 전면에 내세워 대결 구도를 가져감으로써 전복시키고,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을 보여준 게 인상적이었다.
최 : 1970년대 영국이라고 하면 자유롭고 펑키하고 반항적인 패션으로도 상징적이었던 나라다. 그리고 실제로 크루엘라와 남작부인의 패션도 굉장히 대조적이다. 크루엘라가 펑크록 스타일이라면, 남작부인은 이른바 하이패션을 선보인다. 초반에 남작부인이 18세기 콘셉트로 파티를 여는 모습이 나오는데 여전히 계급화된, 귀족들만의 공고화된 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상징으로 보였다. 남작부인이라는 칭호 자체도 그렇고 말이다.
외화 '크루엘라'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패션과 음악으로 완성된 반항의 아이콘 '크루엘라'이 : 그게 인상적이었다. 화려하고 보기 좋게 꾸며진 패션쇼 장에 쓰레기차를 몰고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그 가운데 크루엘라가 일어서는데 쓰레기로 만든 옷을 입고 나가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최 : 정말 쓰레기일 수도 있고, 쓰레기 같은 옷일 수도 있다. 그 옷들은 아마 남작부인이 추구하는 스타일의 옷 혹은 남작부인이 디자인한 옷이지 않았을까 싶다. 남작부인으로 대표되는 패션, 즉 기존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걸러져야 한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
이 : 에스텔라가 취직한 백화점이 '리버티 백화점'이다. 그 공간의 이름이 '리버티(자유)'라는 걸 보면, 자유주의 수호라는 미명 아래 전쟁을 일삼으며 기득권을 공고히 해 온, 주류 권력자들에 저항하는 크루엘라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계속 억압받고, 기존 사회가 정해놓은 부조리한 틀을 거부해 가는 저항이 백화점 안에서도 이뤄진다.
흥미로운 건 남작부인이 그러한 에스텔라를 스카우트해 간다. 결과적으로는 남작부인이라는 기성 주류가 에스텔라의 혁신적인 결과물을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독차지하려 한다. 이 점에서 크루엘라가 자기 재능을 빼앗으려는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단계별 과정 안에서 정면 대결로 가는 구도도 눈에 띄었다.
외화 '크루엘라'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최 : 리버티 백화점 쇼윈도를 바꾸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다. 남작부인을 만나기 전에 에스텔라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면서 리버티 백화점이 해놓은 고루하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듯한 쇼윈도를 흐트러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나오는 노래가 낸시 시나트라의 '디즈 부츠 아 메이드 포 워킹(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g)'이다.
그 노래가 그 장면에서 쓰인 게 재밌다고 생각한 게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인 낸시 시나트라가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져 부담됐을 텐데, 그 노래를 통해 가수로서 자기를 입증한 걸로 안다. 이후 에스텔라가 알고 보니 자신의 어머니였던 남작부인을 패션으로 뛰어넘는 과정은 낸시 시나트라가 노래한 '편한 신발을 신고 당신을 밝고 간다'는 가사와 겹쳐지면서 굉장히 재밌는 장면이 되더라. 감독이 선곡에 고민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크루엘라' 전반에 걸쳐서 나오는 음악들이 하나의 캐릭터이자 영화의 배경과 스토리를 나타내는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나 시몬의 '필링 굿(Feeling Good)'이라는 노래도 그렇다. 니나 시몬은 싱어송라이터이자 공민권 운동가였다. 노래 가사도 새로운 시작, 자유를 알린다. 이 밖에도 기존 체제, 사회의 부당한 억압 등에 저항했던 크루엘라를 그려내는 데 있어서 음악이나 가수 역시 그러한 인물과 음악을 사용했다. 음악 역시 이 영화가 어떤 성격의 영화인지 끊임없이 강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편에서 계속>
외화 '크루엘라'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