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환자에게 자신의 병 상태를 정확히 알려주는 게 좋을까 나쁠까?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암환자가 받을 충격을 걱정해 가족이 병세를 감추고 숨기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말기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게 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과 조화롭게 지내며, 자신의 뜻대로 의사결정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암 건강증진센터 안은미·신동욱 교수와 국립암센터 연구팀은 2009년 전국 34개 보건복지부 지정 완화의료기관 이용 말기 암환자 345명과 가족을 대상으로 환자가 자신의 말기상태를 아는 게 죽음의 질과 치료계획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했다.
조사대상 환자 중 68.4%(236명)는 입원 당시 자신의 병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나머지 31.6%(109명)는 잘 모르고 있었다.
연구팀은 구체적으로 말기 암환자가 숨지고 나서 18개의 항목(항목별 1~7점)으로 구성된 사망환자의 죽음의 질(Good Death Inventory)을 조사했다.
조사는 사별가족이 각 항목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자신의 병 상태를 정확히 아는 환자군의 죽음의 질 평균 점수는 5.04점으로 잘 모르는 환자군의 4.8점보다 높았다.
특히 '미래에 대한 통제' (control over the future) 항목과 '희망과 즐거움 유지' (maintaining hope and pleasure) 항목, '병과 죽음 의식하지 않고 지내기' (unawareness of death) 항목 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들 세 가지 항목에서 자신의 병 상태를 정확히 아는 환자군은 각각 5.18점, 4.55점, 4.41점 등 비교적 높은 점수를 보였지만, 잘 모르는 환자군의 점수는 각각 4.04점, 3.92점, 4.26점 등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말기치료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 간에 이견이 생기는 비율도 자신의 병 상태를 정확히 아는 환자군에서는 25.1%에 그쳤지만, 잘 모르는 환자군에서는 31.5%로 나타났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환자가 자신의 병 상태를 아는 것이 가족 간 의견 차이를 넓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나아가 가족과 환자 간 말기 치료계획에서 이견이 있을 때, 자신의 병 상태를 정확히 아는 환자군에서는 절반 가까운 48.9%가 환자의 뜻을 존중했지만, 잘 모르는 환자군에서는 겨우 24.1%만이 환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따랐을 뿐이었다.
신동욱 교수는 "말기 암환자가 인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에 환자의 상태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암정복추진기획단과 국립암센터의 지원을 받은 이 연구결과는 저명 국외학술지 '정신종양학(Psycho-Oncology)'최신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