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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숨막혔던 40분, 중국전의 재구성

    중국의 진격과 한국의 반격 그리고 완벽한 승리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 중국전에서 63-59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KBL 사진공동취재단)

     

    경기가 시작되자 관중석에서는 '짜요(중국어로 힘내라는 뜻)'를 외치는 응원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퍼졌다. 정규시간 40분이 흐르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마지막 버저 소리가 울리자 더 이상 중국 응원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난 1일 필리핀 마닐라의 몰오브아시아 아레나에서 개최된 2013 제27회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 대회 C조 조별예선 첫 날 중국전은 한국 남자농구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명승부였다.

    그동안 열렸던 남자농구 대표팀의 국가 대항전을 돌이켜봤을 때 어떤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역대급' 명장면에 손꼽힐만한 하일라이트가 이날 김선형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숨막혔던 명승부, 그 40분을 재구성했다.

    ▲그들은 떠올렸다. 진격의 중국을…

    예선 첫 경기다. 조 편성상 지더라도 8강 결선 토너먼트 진출에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유재학 대표팀 감독은 단호했다. "적당히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세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평소 연습한대로 할 것"이라며 정면승부를 예고했다.

    초반 풍경은 '평소' 한중전 같았다. 이젠롄의 공격리바운드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첫 득점은 이젠롄의 덩크였다. 왕저린도 연거푸 공격리바운드를 걷어냈다.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의 간판스타 이젠롄의 신장은 213cm이지만 몸놀림은 센터보다 포워드에 가깝다. 왕저린의 신장은 214cm. 골밑 장악력이 어마어마하다.

    한국은 경기 시작 4분만에 공격리바운드 4개를 빼앗겼다. '트윈타워'의 저돌적인 골밑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농구 팬들이 늘 봐왔던 한중전의 모습이었다.

    한국은 1쿼터 막판 9-9에서 연거푸 6점을 허용했다. 서서히 주도권이 넘어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6점차는 이날 경기에서 양팀이 기록한 최다 점수차였다.

    ▲'쇼타임(Showtime)' 한국, 분위기를 바꾸다

    2쿼터 초반 중국의 베테랑 센터 왕즈즈가 교체 투입됐다. 중국에서 농구 영웅으로 칭송받는 그의 등장에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가 득점을 올릴 때마다 함성 소리는 더 커졌다. 이곳이 필리핀인가 중국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은 팽팽한 양상을 유지했다. 그림같은 장면들이 잇따라 나왔다. 김태술이 환상적인 어시스트로 이승준의 덩크를 만들어냈다. 유망주 센터 이종현은 날카로운 하이&로우 플레이로 이승준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팀 분위기가 살아났다.

    중국은 강수를 뒀다. 가드 한명을 놓고 주팡유(205cm)와 쑨예(206cm)를 나란히 2-3번 포지션에 배치해 높이의 우위를 노렸다.

    이때 김선형의 발이 중국의 높이를 눌렀다. 수비 코트의 베이스라인에서 공을 가로챈 김선형은 마치 우사인 볼트를 연상케 하는 놀라운 속도로 전진해 그대로 덩크를 꽂았다. 이젠롄이 블록 위협을 가했지만 김선형이 더 빨랐고 심지어 더 높았다.

    약 1분 뒤 대표팀의 막내 포워드 최준용이 베이스라인을 파고들어 중국의 장신 숲을 뚫고 레이업을 성공시켰다. 관중석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료 34.9초 전에는 이승준이 주펑의 3점슛을 코트 밖으로 걷어내는 '파리채' 블록슛을 선보였다.

    한국이 만들어낸 2쿼터 장면들은 주눅들 때가 많았던 예전 중국전과는 다른 모습들이었다.

    ▲한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29-31로 3쿼터를 맞이한 한국은 조성민의 중거리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다시 1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이승준이 공을 가로채는 순간 앞으로 튀어나간 양동근이 속공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양동근의 손을 떠난 공은 쑨예의 무자비한 블록에 걸렸다.

    중국이 장점을 되찾은 순간이었다. 관중석에서 '짜요'가 울려퍼졌다.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조성민이 해냈다. 양동근의 깔끔한 어시스트를 받은 조성민이 또 한차례 중거리슛을 림에 꽂았다. 여기서 주춤했다면 경기 흐름이 완전히 중국 쪽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조성민의 한방이 내포한 의미는 묵직했다.

    한국은 3쿼터 막판 37-41로 뒤졌다. 반격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김선형이 나섰다. 김선형은 특유의 유로스텝으로 레이업을 성공시켰고 상대 반칙까지 얻었다. 3점 플레이. 이어 김주성, 양동근 그리고 다시 김주성의 득점이 터졌다.

    46-42로 3쿼터를 끝낸 한국은 4쿼터 초반 이승준의 득점으로 점수차를 벌렸다. 관중석에서 작은 술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간판스타 이젠롄 앞에서 중거리슛을 던지는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김주성 (사진/KBL 사진공동취재단)

     



    ▲이젠롄의 펀치, 김주성의 카운터

    중국 응원단의 침묵을 깬 것은 이젠롄이었다. 매서웠다. 4쿼터 6분여부터 약 4분동안 중국이 올린 11점 중 9점을 홀로 책임졌다. 그 중 덩크로 4점을 뽑았다. 저돌적인 돌파에 한국은 속수무책. 스코어도 52-55으로 뒤집혔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젠롄은 이란의 하메드 하다디와 더불어 이번 대회에 출전한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이다. 또 중국 농구의 간판이다. 이젠롄이 살아나자 경기장은 다시 중국의 홈 코트처럼 돌변했다.

    이번에도 한국은 주눅들지 않았다. 이젠롄이 승부를 뒤흔드는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면 대표팀의 맏형 김주성은 조용히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중국은 더 이상 달아나지 못했다.

    김주성은 3점차로 뒤진 종료 2분13초 전, 골밑 득점에 이은 추가 자유투까지 성공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15점을 올린 김주성의 이날 마지막 3득점은 한국을 기사회생시켰다.

    ▲"경험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

    57-57 동점이던 종료 31.2초 전, 조성민이 자유투 라인에 섰다. 프로농구 시즌 성공률이 90%가 넘는 리그 최고의 슈터. 하지만 긴장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윌리엄 존스컵 대회 이란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때는 못넣었다. 이번만큼은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그때 좋은 연습을 했던 것 같다", 경기 후 조성민의 말이다.

    조성민이 자유투 2개를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이어 주펑의 슛이 림을 외면했다. 중국은 조성민에게 반칙을 했다. 상대를 잘못 골랐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조성민은 여유있게 점수차를 4점으로 벌렸다. 남은 시간은 21.5초.

    ▲마지막 순간까지 비장했던 '유재학 호'

    불과 5초만에 다시 코트가 들썩거렸다. 중국은 3점슛을 노리는 대신 빠르게 2점을 노리는 작전을 선택했다. 류샤오위가 레이업을 던졌다. 이때 양동근이 반칙을 범했다.

    유재학 감독이 40분을 통틀어 가장 긴장한 순간이었다. "승부를 결정지었는데 다시 뒤집힐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류샤오위의 추가 자유투는 빗나갔고 양동근은 종료 13.8초 전 지난 실수를 만회하는 자유투 2득점으로 다시 점수차를 4점으로 만들었다.

    중국은 마지막 공격에서 완벽한 3점슛 기회를 잡았지만 왕쉬펑의 슛은 림을 외면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다. 63-59, 한국의 승리로.

    선수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일부는 웃지 않았다. 왜일까. 마지막 순간 중국에게 완벽한 3점슛 기회를 허용한 수비 실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료 버저가 울렸지만 조성민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봤다. 조성민은 "마지막에 슛을 주면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수비 실수가 나왔다. 그래서 화를 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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