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우리는 왜 '코리안 좀비' 정찬성에 열광하나

스포츠일반

    우리는 왜 '코리안 좀비' 정찬성에 열광하나

    "대한민국이 종합격투기 정상에 설 수 있다는 확신 생겼다"

    사진=수퍼액션 제공

     

    '코리안 좀비' 정찬성(26, 코리안좀비 MMA)은 지난 4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HSBC 아레나에서 열린 ‘UFC 163’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조제 알도(27, 브라질)에 4라운드 TKO패를 당했다. 그러나 팬들은 승패에 상관없이 정찬성에게 열광하고 있다. 격투기에 관심없던 여성조차 정찬성의 어깨탈구에 마음 아파하고, 많은 팬들이 '부상과 패배는 잊고 다음에 다시 도전하자'고 그를 위로한다.

    김대환 UFC 해설위원은 “파이터로서 진심은 잘 싸우는 거다. 정찬성은 기술과 정신력 모두 챔피언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정찬성의 진심이 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왜 정찬성에게 열광하는지’ 격투기 팬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무명의 토종 한국인 파이터, 처음 타이틀전 치르다

    한국의 격투기 아이콘이었던 최홍만(33), 윤동식(41), 추성훈(38, 일본)은 모두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다. 최홍만은 민속씨름에서 천하장사를 지낸 후 K-1에서 활약했고, 윤동식과 추성훈은 국가대표 유도선수로 활동하다가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자리 잡는데 ‘이름값’ 덕을 톡톡히 봤다.

    반면 정찬성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왔다. 10대 때 킥복싱과 합기도를 수련하다가 주짓수의 매력에 빠져 종합격투기 선수가 됐다. 이후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묵묵히 전적을 쌓았고 UFC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타이틀전까지 진출했다.

    한국계 파이터인 데니스 강(36, 캐나다)과 벤 헨더슨(30, 미국)은 정찬성 보다 먼저 메이저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타이틀전을 경험했다. 데니스 강은 2006년 일본 프라이드 웰터급 그랑프리에서 결승까지 올랐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흑인 혼혈 벤 헨더슨은 2012년 프랭키 에드가를 꺾고 UFC 라이트급 챔피언이 됐고, 오는 9월 1일(한국시간) 앤서니 페티스를 상대로 4차 방어전을 갖는다. 그러나 순수 한국인으로는 정찬성이 최초다.

    김대환 해설위원은 “기존 유명세에 의존하지 않은 토종 한국인 파이터가 세계 최고 격투기 기구인 UFC 타이틀전에 나간 건 정찬성이 처음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정찬성은 ‘한국인도 종합격투기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비록 패했지만 그는 체급 절대강자로 인정받는 알도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타격 공방전과 그라운드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시도조차 못했던 플라잉 니킥을 과감하게 날렸고, 밑에 깔린 상태에서 상대 압박을 무력화 시켰다. 알도의 발등에 금이 간 것도 정찬성이 킥을 효과적으로 방어한 덕분이다. 알도는 경기 후 “내가 이겼지만 쉽지 않은 승부였다”고 고백했다.

    20대 격투기 팬 김관민 씨는 “이날 이후 ‘한국인 선수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충분히 통하는 구나’라는 인식이 생겼을 것이다. 챔피언을 꿈꾸는 선수들에게도 값진 선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30대 격투기 팬 조현성 씨는 “챔피언 알도를 상대로 이만큼 선전한 선수는 없었다. 이번 경기를 보면서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종합격투기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김대환 위원은 “알도는 세계 최고 격투가가 모인 UFC에서 4차 방어까지 성공한 선수다. 프로복싱과 비교하자면 정찬성이 무하마드 알리, 슈거레이 레너드 같은 선수에게 도전해서 선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파이터로서의 투혼

    사진=수퍼액션 제공

     

    3라운드 중반 이후부터는 정찬성의 페이스였다. 알도는 그라운드 공방에서 체력 소모가 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정찬성은 서서히 ‘좀비 모드’를 발동시켰다. 4라운드 초반에는 역전도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4라운드에서 펀치를 주고받다가 정찬성의 오른쪽 어깨가 탈골됐다. 통증이 밀려왔지만 아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상대가 눈치챌까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끼워 맞추려 했다. 그런데 노련한 알도가 이를 간파했고, 정찬성은 4라운드 TKO패를 당했다.

    비록 승부에서는 졌지만 이날 정찬성이 보여준 투혼은 팬들을 감동시켰다. 40대 격투기 팬 조상래 씨는 “갑작스럽게 어깨가 탈구되면서 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탈구된 어깨를 스스로 맞추려는 장면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넘을 수 없는 벽’이라던 알도에게 투혼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뜨거웠다”고 했다. 김관민 씨는 “정찬성 선수 경기는 전 복싱 세계챔피언 홍수환 씨가 4번 다운을 당하고도 역전 KO승을 일궈낸 경기를 떠올리게 했다. 한국인 특유의 악바리 근성을 UFC에서 보여준 것 같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고 했다.

    비단 팬뿐만 아니다. 같은 페더급 동료 파이터도 정찬성의 투혼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컵 스완슨은 “정찬성을 존경하게 됐다. 많은 팬들이 그를 사랑한다. 어깨부상으로 그의 파이터 인생이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더스틴 포이리에는 “흥미롭고,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경기였다. 정찬성의 쾌유를 빈다”고 했다.

    정찬성은 대회를 마치고 지난 6일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비행기 안에서 라면 먹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며 “어깨가 탈구됐을 때 밑으로 빠진 줄 알고 다시 맞추려 했는데, 뒤에서 앞으로 빠졌더라. 그걸 알았다면 제대로 끼웠을 것”이라고 했다. 정찬성의 악바리 근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자 앞에서 쫄지 않는 당당함과 꿈을 향한 열정

    정찬성은 알도와 대결하기 전까지 UFC에서 3연승을 내달렸다. 항상 ‘언더독’(이길 가능성이 적은 약자)이었지만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세 경기 다 종합격투기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그러나 모두 알도한테는 쉽지 않을 거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팬들은 “지더라도 후회 없는 경기를 보여 달라”며 패배를 기정사실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8년간 아무도 알도를 꺾지 못했다. 아니 이기기는커녕 처참하게 무너졌다.

    게다가 대회 개최지는 알도의 홈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정찬성과 동행한 에이전트 브라이언 리는 “알도는 브라질에서 ’싸움의 신‘으로 추앙받는 선수다. 이날 경기장(HSBC아레나)은 4만 관중으로 꽉 들어찼다. 야유소리가 묻힐 만큼 알도를 응원하는 환호성이 컸다”고 했다. 애초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조그만 선수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기 후 한국 팬들은 모두 “잘 싸웠다”며 정찬성을 뜨겁게 격려했다. 정찬성의 SNS에는 자신을 브라질인 이라고 밝힌 팬들의 응원 글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아마도 강자 앞에서 쫄지 않는 당당한 태도에 팬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까.

    정찬성은 타인의 평가에 아랑곳 하지 않고 늘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길 자신이 없다면 브라질에 오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주눅 들지 않았다. 오로지 그동안 자신이 흘려온 땀을 믿었다. 그는 알도 전을 앞두고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훈련을 견뎠다”고 했다.

    꿈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찬성은 2006년 격투기에 입문했을 때부터 알도와 대결할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평생의 꿈인 ‘챔피언’이 될 기회가 오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브라이언 리는 “내가 경기 중에 (정)찬성이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포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찬성이는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순간에도 자기 꿈만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칭찬했다. 이어 “다른 파이터들에게 ‘알도를 꺾을 수 있다’는 희망도 품게 했다”고 덧붙였다.

    ◈ 겸손하고 지혜로운 성품

     

    정찬성의 가장 큰 장점은 바른 성품이다. 우선 겸손하다. 지난 6일 입국한 정찬성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다. 어깨 탈골로 오른쪽 어깨는 깁스를 했고, 안와골절로 왼쪽 눈이 퉁퉁 부었다. 무엇보다 불의의 부상으로 패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을 터. 그러나 그는 자신을 마중 나온 팬들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일일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날 인천공항에서 2시간 동안 정찬성을 기다렸다는 팬 조현성 씨는 “정 선수에게 ‘알도보다 멋졌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아픈 모습임에도 ‘감사합니다’라고 답변해주셨다. 팬들의 응원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이 느껴서 좋았다”고 했다.

    겸손함에 더해 지혜롭다. 정찬성은 말할 때 꾸밈이 없다. 항상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언제 봐도 옆집 청년처럼 친근하다. ‘격투기 선수는 거칠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려준다. 김대환 위원은 “정찬성은 실력, 근성, 체격조건, 성품 등 모든 것을 갖췄다. 한국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