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에서 내려다 본 구례읍
#2005년 10월 뱀사골 대피소는 악몽이었다. 옷과 등산화는 비에 젖어 마르지 않았고 여벌의 옷을 가져가지 않은 나는 난방이 안되는 대피소에서 밤새 추위에 떨며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자 등반 내내 왜 왔나 하는 후회를 계속 했다. 세석대피소에서 또 하룻밤. 몸을 좀 추스르고 천왕봉 일출을 보고 백무동에 도착,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첫 종주의 기쁨을 나눴다.
#2007년 5월 백무동행 버스에 몸을 싣고 지리산행에 나섰다. 동행한 선배에게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긴급 간부회의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것이다. 선배는 함양에서 내려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취사도구가 선배배낭에 다 있는데… 나도 돌아갈까? 아니다 그냥 "고" 하자. 백무동에 내려 김밥 몇줄과 삶은 계란, 바나나 등을 사서 장터목 대피소에서 하룻밤. 천왕봉, 치밭목을 거쳐 유평마을에서 도토리묵을 안주삼아 혼자 온 아쉬움을 달랬다.
#2010년 8월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벽소령을 절반쯤 왔는데 갑자기 복통이 밀려왔다. 이 상태론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낭패다. 마침 문자가 왔다. 내일 회의가 있으니 참석하란다. 회군의 명분이 2개나 된다. 바쁘다며 마지못해 따라온 아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기서 가까운 곳은 음정마을뿐. 사람이 뜸한 곳이라 길은 더 거칠다. 7km를 패잔병처럼 내려왔다.
지리산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한국전쟁 때 빨치산까지 품어주던 곳이다. 산세는 험해도 길이 있고 물과 약초가 나고 겨울을 나게 해주던 동물도 있다. 지리산 자락에선 농사도 지을 수 있어 곳곳에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다. 지리산은 도사, 기인들도 품어준다. 동양철학자 조용헌에 의하면 지리산에 의지하며 살고 있는 도사, 기인이 2000명은 된다고 한다. 누구나 감싸주는 참 넉넉한 곳이다. 그러나 종주는 만만치 않다.
■ 설레임의 첫걸음, 성삼재~연하천(13㎞)
노고단대피소에 다다르니 노고단에 오르고 싶다. 왕복 1.4㎞의 거리로 천왕봉 가는 길에서 따로 걸어야해 올 때마다 촉박한 시간 탓에 그냥 지나쳤었다.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8월임에도 천상의 꽃밭을 만들고 있다. 비비추꽃 원추리꽃 잔대꽃 나리꽃 구절초…. 내가 화원속으로 들어선 듯하다. 노고단(老姑壇)의 지명은 통일신라 시대까지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져 유래했다고 한다.
돌을 쌓아 만든 단(壇)에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니 멀리 섬진강이 보인다. 지리산이 품은 강이다. 산 아래는 온통 푸른색 물결이다. 이 더위를 이기면 다시 황금색 옷을 입고 탐방객을 맞으리라.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임걸령을 향하자 조금씩 숨이 가빠온다. 임걸령은 옛날에 임걸(林傑)이라는 이름의 의적이 은거하던 곳이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종주길에 대피소가 아닌 곳에 샘물이 있는 2곳(벽소령과 세석 사이의 선비샘)중 하나다.
남원시 산내면(전북), 구례군 산동면(전남), 하동군 화개면(경남)에 걸쳐 있는 삼도봉(1550m)을 지나 화개재에서 토끼봉에 이르는 1.2㎞의 급경사는 난코스다. 토끼봉은 반야봉(1731m)을 기점으로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에 있어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명선봉에 다다르자 숨이 헉헉 막힌다. 명선봉에서 내려다보이는 빗점골이라는 골짜기는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울창한 수림 속에 역사는 쌓여 가는지 모른다.
물을 얼마나 마셔댔는지 바닥난 물병뿐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연하천이 있다는 것을….
다른 대피소의 물이 졸졸졸 나온다면 연하천의 물은 콸콸콸 나온다. 연하천은 응달지역에 있어 물도 차다. 이 여름에 이렇게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니, 꿀맛이다.
연하천(烟霞泉)은 이름이 말해주듯이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른다 하여 붙여졌다. 운무 속 들어앉은 대피소가 한폭의 동양화다.
■ 쉬운듯 어려운듯, 연하천~벽소령(3.6㎞)
둥근이질풀
지리산은 대표적인 육산(肉山)이지만 종주길은 대부분이 돌길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흙길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지려는 순간 다시 절벽이 가로 막는다. 형제봉(1453m)까지 오르는 굵고 강렬한 길이다. 서서히 정신력으로 걷고 있다. 홀로 산행 때 오르막길 2㎞를 40분 정도에 주파하는데 오늘은 일행 중에 발목부상자가 있어서 벽소령까지 2시간이상 걸릴 것 같다.
지금시각 오후 2시 40분. 이 속도면 세석에서 잠을 자기는 어렵다. 세석대피소 예약자는 5시까지 벽소령을 통과해야 하는데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6.3㎞를 3시간내에 주파할 수는 없다. 발목 부상을 당한 동행자는 하산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지리산이 어디 쉽게 올 수 있는 산인가. 2분 만에 끝나버리는 대피소 예약과 야간 열차나 새벽 KTX를 타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강행을 주장한다. 일단 벽소령까지 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5시 20분쯤 벽소령에 도착했다. 달빛이 아름답다는 벽소령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새석대피소 예약을 취소했더니 사용료(8000원)에서 20%만 입금시켜준단다. 벽소령대피소엔 대기자로 올려놓고 7시 이후에 자리가 나면 알려주겠단다. 벽소령은 식수대가 멀리 있어 밥짓기도 쉽지 않다. 저녁을 해먹고 쓰레기를 담고 있는데 30m쯤 전방에 반달곰이 어슬렁거린다. 등산객들이 버리는 잔밥 냄새를 맡고 허기를 채우려 한다고 안전요원들이 알려준다. 곰도 끼니 앞에서는 곰이 아니다.
별이 뜨기를 기다리자 상현달이 먼저 떠오른다. 뒤이어 북두칠성이 선명히 보이고 다른 별들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얼마만에 보는 북두칠성인가. 일행과 별헤는 밤을 보내다 취침실의 9시 소등시간에 맞춰 잠을 청한다. 아…그런데 잠을 잘 수가 없다. 침상의 불을 다 껐는데도 손전등을켠 등반객들이 배낭을 정리하랴 담요를 까느랴 계속 부시럭 거린다. 휴대폰 소리도 수면을 방해한다. 코고는 소리는 점입가경(?)이다.
자는둥 마는둥 아침 5시에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세석으로 향한다.
■ 보고싶고 걷고싶은, 벽소령~세석(6.3㎞)
동자꽃
세석평전 가는 길은 설레임의 구간이다. 비교적 긴 거리의 등반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져 도전욕이 커진다. 산 능선의 파노라마를 보노라면 내 몸이 출렁이는 것 같다.
세석행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관문인 영신봉으로 향하는 마의 계단. 예전에는 철 계단이었는데, 지금은 데크로 바뀌었다. 몇 개인지 셀 기력도 없지만 계단 중간에 마련된 조망대에서 바라본 북쪽엔 천왕봉이 희미하게 보이고 장터목 대피소도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영험하고 신비하다는 뜻의 영신봉에서 세석평전을 조망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으니 일단의 무리들이 뛰어 온다. 산악마라톤 회원들이다. 새벽 2시 30분에 구례의 화엄사를 출발해 산청의 대원사까지 주파하는 철인들이다.
천왕봉에 12시 30분까지 도착해야 대원사쪽 하산을 허락받기 때문에 잠깐 숨을 돌리고 다시 출발한다. 종주 마니아들은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만을 진정한 종주로 치고 다른 코스로 내려오면 다 짝퉁(?)으로 친다. "그래 짝퉁 종주라도 제대로 해보자. 더 느리게 더 찬찬히 보자."
세석대피소 음양수(두곳에서 물이 나와 붙여진 이름)를 받아 목을 축이고 있는데 헬리콥터가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앉는다. 그런데 10여 명의 어르신들이 내린다. 왜 오셨지? 산청에 사시는 분들인데 피서오셨단다. 그렇다, 이만한 피서가 또 있겠는가.
지리산의 등골인 세석평전(1600m, 3만9000여㎡)은 고지대의 넉넉함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신라시대 화랑도의 수련장에서부터 구한말 동학 농민군의 전장, 일제 징용과 징병 거부자들의 피난처, 해방공간 빨치산의 근거지, 한국전쟁 전후 화전민들의 보금자리까지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왔다.
철따라 피는 야생화는 탐방객을 잠시나마 붙잡고 쉬어가라 한다.
■ 좁은 길이 매섭다, 세석~장터목(3.4㎞)
어수리
거리가 짧아 비교적 쉬운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얕보면 발병나기 딱 좋다.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 등이 가로막고 있고 촛대봉(1703m)까지 100m가 넘는 가파른 경사가 이어져 초반부터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촛대봉을 지나면 좁고 굴곡진 길의 연속이다. 잠시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타는 기분이다.
작은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언덕이 기다린다. 넘었던 언덕을 디딤돌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장터목이 나올 때가 됐는데…. 고대하던 장터목은 고사하고 작은 고개와 큰 봉우리가 또 가로막는다. 무작정 걷는다.
장터목 안내 글엔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 팔던 곳이라고 쓰여있다. 옛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 떠올려진다.
장터목 대피소는 이름대로 항상 붐빈다. 천왕봉 등정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람, 천왕봉 일출을 보고 내려와 늦은 밥을 먹는 사람, 함양 백무동과 산청 중산리 쪽에서 등정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여기에 모여 지리산을 말한다.
■ 하늘로 통하는 길, 장터목~천왕봉(1.7㎞)
원추리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때문인지 마음은 벌써 천왕봉에 온 듯하다. 급경사를 오르자 제석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제석봉의 뾰족한 끝이 하늘을 향해 선 모습이 처연해 보인다. 주변의 고사목 때문인가. 고사목은 채벌꾼의 탐욕이 빚은 슬픈 징표이다. 생선뼈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씁쓸히 생을 마감한 고사목 주위엔 구상나무가 말벗처럼 버티고 있다. 구상나무는 해발 500~2000m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만 자라는 지리산의 선물이다.
꾸역꾸역 오르자 통천문이 눈앞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생각에 잠긴다. 하늘로 통하는 문. 통천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한 등반객의 '인생을 너무 알면 재미없다'는 말이 머리에 박힌다. 다 알 수도 없는 지리산이지만 너무 알면 재미없지 않을까.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더 쏠쏠하지 않을까.
이제 저 바위 무더기만 넘으면 천왕봉이다. 가로막는 건 안개뿐이다. 언제 지쳤냐는 듯 미친듯이 오른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智異山 天王峰 1915m'
백두대간의 시작을 알리는 정상석 글이다.
정상석 주위엔 사진을 찍으려는 등반객이 줄서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통화하는 사람, 아래를 내려보는 사람, 기념사진 찍는 사람, 허기를 채우는 사람….
등반객들 사이로 잠자리가 무수히 날갯짓을 한다. 잠자리 천국이다. 통천문을 날아왔으니 천국의 잠자리인 셈이다. 저들은 과연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저들도 지상으로 내려갈까. 정상은 잠시…. 우리는 내려가야 한다. 운무에 잠긴 잠자리를 뒤로하고 중산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8월의 뜨거운 태양도 함께 저물고 있다.
사진=서영도 기자
▶ 지리산 대피소 예약 팁
지리산 탐방객들에게 대피소 예약은 간단치 않다. 사용일 14일전 오전 10시부터 예약을 받는데 성수기 때는 단 1분 만에 끝나버린다. 그러나 낙심은 말 것. 예약자들의 취소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수시로 지리산 국립공원(jiri.knps.or.kr) 사이트를 방문하면 원하는 대피소를 예약할 수 있다. 특히 12시간이내에 사용료를 입금하지 않으면 취소되기 때문에 14일 전 오후 10시 직후를 노리면 의외로 쉽게 할 수 있다. 사용날짜가 임박해서 취소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때를 노리는 것도 좋다. 지리산엔 노고단, 피아골,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치밭목, 로타리 등 8개의 대피소가 있는데 피아골은 전화예약으로, 치밭목은 현장도착 순으로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