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주요 신흥국이 위기에 봉착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시리아 공격 움직임 등 외부 요인에다 각종 내부 요인 탓에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증시가 불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여느 위기 직전 때처럼 '위기는 아니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하면서 과거 위기에 따른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기민한 대처에 나섰으나 상황 악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 인도, "구제금융 신청 안한다"…'쌍둥이 적자' 해소 노력
인도는 2008년 리먼사태 여파를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으로 돌파했다. 그러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시리아 공습설에 또다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인도 정부는 펀더멘털이 견실하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리먼사태로 국내 은행권이 해외 금융기관에서 국내 은행으로 차입원을 바꾸면서 신용경색에 봉착하고 수출급감으로 성장률이 급락세로 돌아서자 경기부양책을 구사했다. 리먼사태를 맞은 2008∼09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 하반기 성장률은 5.8%로 직전 회계연도 동기의 9.0%에 크게 못미쳤다.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써 성장률을 2008∼09 회계연도에 6.7%로 반등시켰다. 이어 다음 회계연도에는 8.6%, 2010∼11 회계연도엔 9.3%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후 성장률은 경기부양책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재정 및 경상적자 누적 등으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급기야 2013∼14 회계연도 1분기(지난 4∼6월)에는 4년 만에 최저 수준인 4.4%로 둔화했다. 직전 분기보다 0.4%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 등으로 상황은 더욱 어렵게 됐다. 루피화 가치는 급락세를 지속, 올해 들어 20% 가까이 빠지고 증시불안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외부요인은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 등으로 환율방어에 나서고 있다. 또 국내총생산(GDP)의 4.8%에 달하는 경상적자 해소책을 마련하는 한편 GDP의 5.9%인 재정적자를 4.8%로 감축하려 애쓰고 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회복을 위해 경제개혁을 지속키로 했다.
정부는 올해 몬순(우기) 강우량이 적절해 농산물 생산량 증가에 따른 내수진작으로 성장률이 하반기부터는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도가 리먼사태를 맞아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V'자 회복을 했지만 이번에는 성장률이 'L'자 궤도를 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 브라질 "기초체력 튼튼"…전문가 "성장세 위축할 수도"
브라질 경제는 2008년 당시와 비교해 기초체력이 튼실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2천억 달러 수준이던 외화보유액은 지난달 말 현재 3천700억 달러를 훌쩍 넘었다.
GDP 대비 총외채 비율은 14.3%, 외화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8.7%로 나타났다. 2008년보다 위기대응 능력이 훨씬 더 커졌다는 의미다.
3년째 답보해온 성장 리듬이 살아날 조짐도 보인다. 브라질은 2008년 위기 여파로 2009년 마이너스 성장률(-0.3%)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7.5%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으나 2011년에 2.7%, 2012년엔 0.9%로 주저앉았다.
올해 들어 이전 분기 대비 성장률은 1분기 0.6%에 이어 2분기에는 1.5%를 기록했다. 2분기 성장률은 2010년 1분기 이래 분기별 최고치다.
정부는 경제위기가 정점을 지난 것으로 보인다며 회복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업 및 소비자의 신뢰지수 하락과 미국 달러화 강세 부담으로 3분기 성장률이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브라질 경제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금융시장 혼란을 겪고 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헤알화 가치는 올해 16%가량 하락했다. 한때 80,000포인트를 바라봤던 상파울루 증시의 보베스파(Bovespa) 지수는 현재 50,000∼51,000포인트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달러화 이탈이 계속돼 시장에 유동성이 떨어지면 달러화가 필요한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하면서 경제 전반에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이 헤알화 환율방어를 위해 올해 연말까지 545억 달러(약 60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당국은 꿈틀대는 인플레율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7월까지 12개월 인플레율은 6.27%로 집계돼 중앙은행의 억제 목표 상한인 6.5%를 위협했다. 헤알화 환율 방어와 인플레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9.0%까지 올렸으나 성장세 회복 노력에는 방해가 될 전망이다.
◇ 태국 "아직 위기는 아냐"…금융시장 주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시발지인 태국은 다른 신흥국가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해외단기성 투기자금의 유출입에 취약성을 보이지만 아직 심각한 위기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현실화하면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로 증시와 바트 가치가 타격을 받을 수 있어 당국과 전문가들은 금융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위기설이 나도는 이웃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금융시장 불안이 전이되지 않을까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다 태국은 최근 경제성장, 수출이 모두 둔화한 것으로 나타나 향후 성장전망을 어둡게 하면서 지난 8월 말 약 열흘동안 주가·환율·채권이 급격한 트리플 약세를 나타냈다.
태국증권거래소(SET) 지수는 지난달 15일부터 10영업일 연속 하락해 12.7% 떨어졌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1,275.76으로 추락, 작년 9월 수준으로 후퇴하기도 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양적완화 기간에는 외자가 꾸준히 유입돼 지난 5월에는 주가가 연말대비 18%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양적완화 축소전망이 제기되면서 외자가 다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올들어 지난달말까지 증시에서 유출된 외국인 자금은 약 36억4천만달러에 이르렀다.
특히 아시아 증시가 급격한 불안세를 보인 지난달 19일부터 28일까지는 외국인 순매도 자금이 9억5천만달러에 달했다.
바트화도 올해 4월에 달러당 28.61바트까지 가치가 올라갔으나, 지난달 28일에는 32.25바트로 가치가 떨어졌다.
당국은 최근의 금융시장 급변동과 경제지표 부진이 외부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하반기에는 경제안정과 함께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국중앙은행은 현재 외환보유액이 단기외채 653억달러의 2.6배가 넘는 1천720억달러에 이른다며 이는 외환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 인도네시아 "현 상황, 1990년대말 위기때보단 좋아"
동남아의 성장엔진 인도네시아도 흔들리고 있다. 1분기 58억달러(GDP 대비 2.6%)였던 경상적자는 2분기에 98억달러(GDP 4.4%)로 늘었다. 달러 대비 루피아화 환율은 연초보다 12%나 치솟았다.
주요 수출품인 원자재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무역적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가 16억3천만 달러였으나 올해에는 지난 7월에만 23억1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 부진은 GDP 성장률에 즉각 반영됐다. 1분기 6.02%였던 성장률은 2분기에 5.81%로 떨어졌다. 분기별 성장률이 6%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0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몰고온 세계 금융위기와 비교하며 인도네시아가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정부는 '위기가 아니다'고 단호하게 부인한다.
차팁 바스리 재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악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 위기는 아니다"라며 "2008년 리먼사태 당시는 현재보다 훨씬 상황이 나빴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 상황은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비교해도 훨씬 좋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기업의 막대한 달러 부채가 경상적자를 악화시켰으나 현재 기업의 재정상태는 훨씬 건전하고 아시아 금융위기 때 30%가 넘던 은행 부실채권 비율도 4%를 밑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는 2008년과는 또 다른 복잡한 요소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인도네시아가 리먼사태 직후 4.6%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제조업과 무역의 비중이 적어 금융위기 충격이 작았던 점을 꼽는다. 하지만 이후 세계경제 회복으로 막대한 외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 외부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터키, 20년만에 회복한 투자등급 '위태'
터키는 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로 휘청거릴 당시 강한 성장세로 대표적 신흥국으로 떠올랐으나 최근 미국의 출구전략 여파와 시리아 사태로 고전하고 있다.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 9.0%, 2011년 8.8% 등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지난해는 2.2%로 연착륙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선전했다. 올해도 유로지역은 마이너스 성장이 전망되지만 터키는 3%대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5월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국가신용등급을 'Baa3'로 올려 터키는 20년만에 투자등급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알리 바바잔 부총리는 지난 4일 언론 인터뷰에서 올해 성장률이 3%를 웃돌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연초 4%를 목표로 제시했으나 반정부 시위, 시리아 및 이집트 사태, 미국 출구전략 여파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달부터 미국의 출구전략이 신흥국을 강타하고 시리아 사태가 악화함에 따라 리라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고 주식시장도 3개월 만에 27% 급락했다.
연초 공격적인 금리인하에 나섰던 중앙은행은 7월부터 긴축통화정책 기조로 돌아서 2개월 연속 콜금리를 올리고 달러화를 대량 매각하는 등 환율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성적 재정적자에 따른 외환보유액 부족과 핫머니 유출 위험 등에 따라 당분간 리라화 가치 하락세는 이어지겠으나 인도 등 다른 신흥국보다 상대적으로 펀더멘털이 강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