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존여비(男尊女卑)라 했던가.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여존남비' 사회다. 갈수록 남자들이 설 곳을 잃고 있어서다.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 중장년은 직장과 가정에서 치이고 밀리기 일쑤다. 하지만 본인도, 주변도 여전히 인식은 조선 시대에 멈춰있어 갈등도 만만찮다. CBS노컷뉴스는 '男子수난시대'의 세대별 실상을 5회에 걸쳐 집중 조망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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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20대 '답'이 없다
②30대 '집'이 없다③40대 '나'는 없다
④50대 '일'이 없다
⑤60대 '낙'이 없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서울에 있는 한 공기업에 다니는 이수현(32·가명) 씨. 남들은 '신의 직장'에 다닌다며 부러운 시선을 듬뿍 보내지만, 정작 이 씨는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야근에다 잦은 출장 탓에 가족과 함께 한 식사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3년차 사원이지만 후임이 없어 아직까지도 말단인 이 씨. 팀 내 굵직한 업무부터 복사 심부름, 민원 처리 등 잡다한 일까지 도맡아하기 일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현 씨에게 스트레스를 준 건 바로 '이별'이다. 힘든 직장 생활 속에서도 정신적 쉼터가 되어줬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게 최근이다.
일이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해 멀어진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결혼' 문제였다.
이 씨보다 연상이던 여자 친구는 결혼을 원했지만, 수현 씨는 그녀를 밀어냈다.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씨는 "공기업이지만 연차가 낮아 연봉도 적은 데다, 월급을 받아도 학자금 대출이나 각종 생활비로 지출하다보니 모아둔 돈도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문제는 '집'이었다. "결혼하려면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런 형편이 전혀 안 된다"며, 수현 씨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결혼을 포기하고 마는 30대 남성은 비단 수현 씨뿐이 아니다. 일자리도 불안한 데다 무엇보다 '내 집 마련'이 어렵다보니, 결혼하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는 것.
"아직 사회 곳곳에서 남녀차별이 심하다고 하지만, 결혼 준비에서만큼은 남성이 '절대 을'(乙)"이란 게 30대 남성들의 한목소리다.
사실 수현 씨의 여자친구가 집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인 이 씨는 늘 그런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자들의 관심은 재산이나 집에 있다"고 느끼는 수현 씨에겐 소개팅도 부담스럽다.
이 씨는 "요즘 여성들의 눈이 굉장히 높아졌기 때문에 단순히 직장만 있는 것으론 안 된다"며 "집은 있는지, 재산은 얼마나 있는지 등 여러 조건들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수현 씨가 생각하는 남성의 결혼 조건은 "방 두 개 딸린 아파트 전세쯤은 구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다.
이 씨는 "보통 여성들 대부분이 강남에 살고 싶어하지 않느냐"며 "강남이 아니라 서울 시내 전세라도 구하려면 최소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지금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사리 마련한 중형차도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해 되팔까 생각해본 수현 씨. 하지만 차도 없이 소개팅에 나갔다간 되려 위축될까봐, 비싼 기름에 보험비까지 꾸역꾸역 내가며 처분도 못하고 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만, 부모님 또한 여유가 있는 게 아니어서 일찌감치 생각을 접었다.
이 씨는 "부모님이 지원하지 않으면 결혼 자체가 힘든, 가정을 꾸리기 힘든 상황인 것 같다"며 "여자가 집 사고 남자가 혼수 마련하면 안 되느냐"고 진담 섞인 농담을 던졌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미혼 남성은 계속 늘고 있다. 서울시의 ‘통계로 본 서울 남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90년 11만 3499명이던 30~49세 미혼 남성은 20년이 지난 2010년 49만 6344명으로 4.4배나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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