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니까 북한에 남아계신 오마니와 형제들이 자주 꿈에 아른거립네다." "한밤중에 잠이 깨면 왠지 모를 그리움에 뜬눈으로 그냥 지새우곤 하디요. 달은 또 왜 그렇게 휘영청 밝은지…" "보고 싶디요.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디요."
고속버스와 열차 등으로 벌써 사람이 몰리는 등 본격적인 한가위 귀성행렬이 시작됐지만,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아픔을 쏟아내는 목소리에 진한 슬픔이 묻어 있다.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새터민(탈북자)들로 구성된 평양예술단. 현재 22명의 여자단원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어엿한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 2005년 8명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전국을 누비며 매년 150회 넘게 공연을 올리고 있다. 지난 13일 연습실이 있는 서울 신정동 새터교회에서 그녀들을 만났다.
■ 북한도 추석땐 하루 휴일…오순도순 송편 빚는 남한 모습 부러워
지난해 사선을 넘어 한국에 들어온 최신아(가명·43)씨는 올 한가위엔 동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최씨는 "북한도 추석때는 하루 휴일을 주지만 식량 사정이 워낙 안좋아 떡을 만들어 먹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오순도순 송편을 빚는 남한의 모습이 무척 부럽단다. 그는 "북에 가족을 남기고 넘어온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다니면서 고향 얘기를 나누다보면 공허한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고 말했다.
김성실(가명·42)씨는 지난 2009년 만리장성을 지나 베트남·캄보디아를 거쳐 한국으로 왔다. 탈북 당시 함께 온 다섯살 아이가 지금은 아홉살이 됐다. 김씨는 "북한에서는 부모 형제와 함께 음식을 차려놓고 차례도 지내며 단란한 명절을 보낼 수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는 더 외롭기만 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는 모두 2만5000여명. 목숨을 걸고 선택한 한국행이었지만 대부분 마음 편하게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놓고 살수 없다. '혹시 나 때문에 북쪽에 남아 있는 피붙이들이 피해를 보면 어쩌나' 항상 마음을 졸인다.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에 들뜬 남한의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휴전선 너머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오빠·동생의 얼굴이 눈에 밟혀 울컥 하곤 한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이리도 속상하지 않을텐데…'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예술단 무용수인 한성희(가명·39)씨. 북한 자유경제무역특구 지역인 함경북도 라진·선봉이 고향이다. 중국과 인접해 있는 지역 특성 때문에 북한에서도 꽤 여유있는 삶을 살았지만 그녀 역시 두고온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특히 지난해 추석땐 몸이 아픈데다가 객지에 혼자 나와 있어 고향 생각이 더 간절했다는 말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5개월 전 한국에 정착한 새내기 이현심(가명·20)씨는 평양예술단의 막내다. 아직 앳된 외모에 부끄럼 많아 보이는 소녀 같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강제 북송이라는 공포를 피해 하루하루 중국에서 숨어 살았단다. 다행이 지인의 도움을 얻어 지난 4월 어머니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이씨는 "추석 땐 그래도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에 들렀었는데, 지금은 가보지도 못하는데다가 홀로 계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010년 남편, 두 딸과 함께 한국으로 온 김송연(가명·37)씨도 벌써 마음이 무겁다. 한씨는 "오늘 아침 아이가 잠에서 일어나더니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언제 가냐고 물어봐 자식들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평양예술단을 이끌고 있는 김신옥(49) 단장은 "추석이나 설날엔 고향생각도 많이 나고 하지만 우리공연을 보면서 즐거워 할 실향민이나 일반관객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는다"며 "단원들마다 북한을 떠나온 사연은 다르지만 공연을 하면서 고향 얘기를 나누다보면 서로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 "한국남자와 결혼해 좋지만 은근히 명절 스트레스 생겼어요"
추석 명절때 북한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냐는 말에 서로 의견들이 분분하다. 사실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생일이 가장 큰 명절이라 우리나라처럼 추석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지방마다 살림 형편마다 추석 분위기가 차이가 있다.
한국신랑을 만나 이번 명절에 시댁에 가야한다는 한 단원은 벌써부터 은근히 명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추석때 특별히 음식을 해서 먹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지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절대적 빈곤을 벗어났지만 명절음식을 만들고 일가 친척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아직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란다.
또 한 단원은 명절때 빠지지 않고 만들어 먹었던게 순대라고 말한다. 넉넉하진 않지만 삼삼오오 이웃사촌끼리 모여 꼭 순대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올해는 탈북자 친구들과 함께 고향 음식으로 그리움을 달래볼 생각이란다.
평양예술단은 우리 귀에도 익숙한 '반갑습니다' '휘파람' 같은 노래에서부터 '물동이춤' '인형춤' '검무'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면 "평양에는 언제 다시 갑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을 정도로 북한에서 직접 내려온 공연단으로 착각할 정도로 수준이 높다. 초기에는 공연을 본 사람들이 "탈북자들이 만든 공연이구나"하고 그냥 지나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점점 북한에서 예술활동을 했던 재능있는 예술인들이 입소문을 듣고 입단하면서 공연의 질도 월등히 높아졌다. 북한 고전전통무용의 맥을 이어가면서 남북한의 문화적 이질감 해소와 북한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김 단장은 "한국에 들어와 살면서 60년의 분단이 만들어 낸 남북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는 것을 느꼈다"며 "분단으로 삶 자체가 달라진 남과 북이지만 춤으로 노래로 하나씩 하나씩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예술단을 꾸렸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을 마치면 관객들의 반응을 꼭 살핀다. 북한식 예술을 중심으로 하되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음악 그리고 젊은층들이 좋아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그룹 크레용팝의 '빠빠빠' 등 남한의 대중예술을 접목하는 것도 남북한의 교감을 위해서란다. 통일의 날이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쉼없이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평양예술단원들은 추석 당일날도 서울역사박물관 '한가위 한마당 대축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공연을 보면서 즐거워 할 관객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단다.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가족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목소리가 커지고 춤사위도 더 힘이 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