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을 진행하다 비자금 조성과 입찰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거나 기소된 대형 건설사, 엔지니어링 설계감리업체들이 정부의 훈포장을 받은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10일 CBS노컷뉴스가 4대강 조사위원회와 4대강 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로부터 단독 입수한 '4대강 사업 1~3차 산업계 훈포장 명단'에 따르면 입찰비리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 훈포장 명단에 포함됐다.
해당 훈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말인 지난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이뤄졌다.
지난해 관보에 게재된 3차 명단 일부는 최근 공개됐지만 1, 2차 훈포장 대상자들의 소속 기관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4대강 사업 1~3차 산업계 훈포장 명단'은 593명에 달한다.
4대강 반대 시민사회단체들은 입찰비리와 비자금 조성 관련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건설사들의 서훈 취소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당장 오는 14일로 예정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안전행정부 국정감사장에서 적잖은 논란이 일 전망이다.
◈ 입찰비리 혐의로 기소된 11개 건설사 대부분 훈포장
정부부처 공무원을 포함해 전체 1,100여명이 3차에 걸쳐 훈포장과 표창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실제 공사에 참여했던 산업계 임직원이 절반에 달한다.
먼저 비자금 조성과 입찰비리, 낙동강 칠곡보 부실공사 논란 등에 휩싸였던 대우건설은 임직원 10명이 금탑산업훈장과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 등을 받았다.
산업훈장은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되며 금탑, 은탑, 동탑, 철탑, 석탑 등 5등급으로 나뉜다.
대우건설은 올해초 수십억원의 법인자금을 횡령해 국책사업 수주 로비를 벌인 혐의로 토목사업본부장 옥 모 씨가 구속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또 옥 씨에게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을 과다지급한 뒤 되돌려받도록 공모한 서종욱 전 대우건설 대표도 추가 입찰담합 혐의가 인정돼 지난달 24일 기소됐다.
이와 별도로 대구지검 특수부도 지난해 10월 대우건설을 압수수색하고 전·현직 임원 4명을 구속기소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담합 혐의가 인정돼 지난해 공정위로부터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받았던 GS건설도 이명박 정부로부터 12명이나 훈장이나 표창을 받았다.
김영선 GS건설 상무는 하천수변공간 조성 공로가 인정돼 동탑산업훈장을, 길용훈 GS건설 상무 역시 하천이용 활성화 기반구축 유공으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검찰 수사에서 역시 입찰담합 혐의가 인정돼 김중겸 전 대표가 불구속기소된 현대건설도 10명의 임직원이 동탑산업훈장과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했다.
김정위, 김진원 상무가 동탑산업훈장을 받았고 나머지 8명 임직원들도 대통령표창이나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 특혜 의혹에 휘말렸던 포스코건설 역시 5명의 임직원이 훈장과 표창을 수상했다.
낙동강 30공구 컨소시엄 공사를 진행했던 포스코건설은 정동화 대표이사 겸 부회장이 지난해 3차 훈포상 과정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댐건설 타당성과 환경파괴 논란에 휩싸였던 영주댐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 역시 5명의 임직원들이 동탑산업훈장, 산업포장,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지난달 입찰 담합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삼성중공업(3명), 금호산업(3명), 대림산업(10명) 임직원들도 정부 훈포장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여환섭 부장검사)는 지난달 24일 이들 건설사 전·현직 임직원 22명을 4대강 공사 과정에서 경쟁입찰인 척 하면서 투찰가를 담합한 혐의(입찰방해 및 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기소했다.
4대강 공사에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임직원들이 훈장과 표창을 받았지만 비자금 조성과 입찰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황인철 4대강범대위 팀장은 "4대강사업은 국가권력과 건설자본이 합작해 만든 운하사기극"이라며 "전국토 환경을 파괴한 당사자들이 담합비리와 비자금을 통해 국민 세금을 낭비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말했다 .
황 팀장은 또 "법적 책임을 져야 할 마당에 훈포상 잔치를 벌인 것은 오히려 범죄를 칭찬하고 장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지금이라도 비리 기업의 서훈을 취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부실한 기초설계와 환경영향평가 맡았던 업체들도 훈포장
대형 건설사들뿐만 아니라 부실한 4대강 공사 기초설계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맡았던 대형 엔지니어링 설계감리업체들도 훈포장 대상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동부엔지니어링과 도화엔지니어링, 유신코퍼레이션 등이다. 한때 ‘4대강 전도 으뜸 업체’로 평가받았던 동부엔지니어링은 무려 24명이 산업훈장과 산업포장, 대통령표창 등을 받았다.
현 이문규 대표이사가 은탑산업훈장을, 채선엽 전무와 정순찬 상무가 산업포장을 받는 등 설계감리 업체 중 가장 많은 수상자를 냈다.
동부엔지니어링은 지난 2008년 4대강 비밀 추진팀인 ‘국가하천종합정비TF’에도 참여했다.
이후 2009년 턴키공사 1차 설계용역 발주에서 낙동강 15개 공구 중 가장 규모 큰 22공구와 한강 3공구 설계 용역을 따내 정치권으로부터 ‘정부TF 참여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동부엔지니어링이 4대강 TF에 참여하게 된 경위와 특혜 여부 등 의혹 전반을 들여다보기 위해 계좌 추적 동의서를 받아 전방위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자회사 입찰담합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도화엔지니어링 임직원 8명도 산업포장과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도화엔지니어링은 지난 2009년 4대강 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토목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1위 업체로 떠오르는 등 4대강 최대 수혜 업체로 꼽히기도 했다.
또다른 설계업체 유신 역시 지난해 3차 훈포장 대상에 포함돼 3명의 임직원이 철탑산업훈장과 산업포장, 국무총리표창 등을 받았다.
유신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장석효 도로공사 사장에게 6,000만원을 건넨 정황이 포착돼 장 사장은 구속기소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무조정실 4대강 사업 조사·평가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장승필 전 서울대 명예교수가 바로 유신 사외이사를 지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중립성 논란에 휩싸이며 전격 사퇴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