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부터 600㎞, 기온은 125도와 영하 100도를 오르내린다. 소리도 기압도 산소도 없다. 우주에서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는 우주의 환경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위 문구와 함께 장엄한 음악이 깔리며 시작된다. 이어지는 갑작스런 침묵. 돌연 극장 안이 적막으로 가득찬다.
이때 스크린에는 여느 SF 영화에서나 쉽게 볼 법한, 인공위성의 궤도에서 바라본 지구와 우주의 풍경이 펼쳐진다. 꽤나 오랜 침묵은 도시의 각종 소음에 익숙해진 관객들을 당황스럽고 불편하게 만들 터다.
그런데 이 낯선 침묵이 3D 안경을 끼고 아이맥스 스크린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지구와는 확연히 다른 우주의 환경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래비티의 90분짜리 우주표류 체험은 그렇게 시작된다.
의료 공학 박사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은 우주망원경 수리를 위해 베테랑 우주 비행사인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와 함께 우주 비행에 나선다. 그런데 임무를 수행하던 중 폭파된 인공위성 잔해 탓에 스톤과 코왈스키 일행이 탄 우주왕복선이 파괴되고, 살아남은 둘은 끈 하나로 이어진 채 우주 미아가 된다.
사실 영화 그래비티는 재난에 처한 주인공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악전고투한다는 재난 영화의 이야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둘이 전부라 해도 무방한 소수의 등장 인물에다, 우리에게는 물, 불 만큼 익숙하지 않은 우주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여타 재난 영화보다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그래비티는 기존 재난 영화에서 경험하기 힘들던 간접 체험을 선사한다.
우주라는 생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3D 아이맥스라는 시각 효과와 롱테이크(하나의 숏을 끊김없이 담아내는 촬영법)라는 영화 기법을 통해 관객들이 주인공의 여정에 함께 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단순명료한 이야기 구조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데 애쓰지 않고 우주 표류 체험을 감각적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다.
600㎞ 상공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시작된 이 영화의 시점은 절대자의 시선을 통해 마찰력 없이 극대화된 관성의 법칙에 따른 우주인의 유영, 폭발음 없이 고요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우주선들의 모습 등 독특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주인공의 불안한 눈을 오가며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를 배경으로 거대한 우주 안에 놓인 미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생사의 기로에서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흘리는 주인공의 눈물이 공중에 방울방울 떠다니는 장면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담은 듯 경이롭다.
이상은 영화 그래비티의 우주표류 체험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3D 아이맥스로 봐야 하는 이유들이다.{RELNEWS:right}
두 배우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표류하는 우주인의 불안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산드라 블록도 그렇지만, 죽음을 예감한 상황에서 "왜 여자 이름이 라이언이야?" "이제 곧 내가 우주 유영 기록을 깰 거야"라는 식의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컨트리 음악을 듣던 조지 클루니의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91분, 1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