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청 의혹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감시 대상으로 거론된 우방국들은 물론 미국 정계 내부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보수집 활동에 대한 재검토를 시사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독일과 스페인 등 도청 표적이 된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비난 여론으로 들끓고 있으며 미국 상원마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NSA의 정보수집이 국가 안보를 위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첩보활동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안보 활동은 미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나는 선의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며 수집된 모든 정보의 마지막 사용자는 바로 나"라며 "다만 그들(정보 당국)은 지나치게 광범위한 문제에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최근 수년간 정보당국의 역할이 확대하고 발전해온 것을 목격했다"며 "이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관련 활동의) 재검토에 착수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나 NSA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을 도청한 사실을 알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바마의 진화 시도에도 NSA의 감시 대상이 된 우방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독일은 NSA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도청 의혹과 관련해 내달 중 의회 임시회의를 소집하고 총리실 대표 등을 미국에 보내 해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당(CDU)과 연정 파트너인 기독교사회당(CSU)는 내달 18일 임시회의를 열고 메르켈 총리를 겨냥한 도청 등 미국의 스파이 행위를 다루겠다고 28일 밝혔다.
또한 슈테펜 자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이 심각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진행 중이며 양국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면서 조만간 정보 당국 수장과 총리실 대표가 미국을 방문, NSA 대표를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니고 멘데스 데 비고 스페인 유럽부 장관 겸 유럽의회 의원도 이날 제임스 코스토스 주 스페인 미국 대사와 40분간에 걸쳐 면담하고 해명을 요구했다고 dpa통신이 전했다.
주 스페인 미국 대사관은 면담 후 미국의 감시 프로그램이 양국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해명했지만, 멘데스 데 비고 장관은 우방국 사이의 스파이 행위에 대해 "부적절하고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워싱턴을 방문 중인 유럽연합(EU) 의회 대표단도 백악관 국가안보 담당과 정보당국자 등을 만나 NSA의 도청 등 최근 불거진 정보수집 행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독일 출신인 엘마르 브록 유럽의회 외교위원장은 AFP통신에 "메르켈 총리를 10년 넘게 도청하는 식의 스파이 활동은 용납할 수 없다"며 미국의 도청행위가 독일법 위반이라고 성토했다.
영국 출신의 클로드 모라에스 유럽의회 의원도 "양자간의 신뢰가 다시 쌓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미주기구(OAS) 산하 미주기구인권위원회(IACHR)의 펠리페 곤살레스 대표는 미국이 안보활동을 할 적법한 필요가 있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역풍'은 도청 대상이 된 나라들뿐만 아니라 미국 안에서도 일고 있다.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은 NSA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왔던 태도를 바꿔 우방에 대한 도청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고 NSA 활동을 의회 차원에서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파인스타인 위원장은 "프랑스와 스페인, 멕시코, 독일 등 우방국 정상을 겨냥한 정보수집에 대해서는 명백히 말하건데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