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이네 세 가족이 좁은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가고 있다. (부산CBS/박중석 기자)
중증 장애가 있는 딸아이를 품고 현실의 찬바람에 맞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학생 부부가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하루 종일 유아 의자에 앉아 멍하니 앞만 바라보는 아람(3. 가명)이의 왼손은 언제나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또래 아이들처럼 걷지도, 말하지도, 의사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아람이는 오른쪽 뇌가 기능을 잃어버린 뇌병변 1급 장애아다.
그런 아람이의 곁에서 24시간 딸아이를 바라보는 초보엄마 최지영(22.가명)씨의 눈에는 항상 물기가 촉촉히 젖어 있다.
두려움 속에서도 하늘이 준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산부인과 한 번 가지 못한 것이 아람이를 아프게 한 건 아닌지 하는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지고 6개월 동안 임신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니 겁도나고,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아람이를 낳지 못할 것 같았어요. 아이가 아픈모습을 보면 죄인이 된 것 같아요"
대학교 신입생 시절 만난 동갑내기 남편 백태훈(22.가명)씨와의 사이에서 뜻하지 않게 가진 아람이.
주위의 축복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스무살 어린나이에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아이를 안고 일주일에 4~5번을 병원을 다니느라 허리가 눈에 띄게 굽어버렸지만, 자신의 휜 허리보다 딸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지영씨를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이를 안고 병원을 가다보면 아주머니들이 다가와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깜짝 놀라세요. '아이가 이렇게 큰데 왜 안고 다니냐'고, 대답도 못하고 눈물만 나요"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정부에서나오는 월 10만 원의 육아보조금과 태훈씨가 벌어오는 100만 원 남짓한 알바비로 버텨온 3년.
아람이를 위한 새옷이나, 장난감은 꿈꿀 수 조차 없었다.
"생활비에다가 분유값, 기저귀값 하면 다른걸 생각할 수 없어요. 이웃분들이 여기저기사 모아준 옷을 입히고 있어요. 아이한테 미안하죠"
그동안 쉬지 않고 일터를 쫓아 다닌 태훈씨는 요즘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에 몰두하고 있다.
올 연말 군대에 입대하고 나면 남을 가족들을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 다는 책임감에서다.
태훈씨는 "아내와 아이를 두고 군대를 가야하니, 요즘은 마음이 정말 절박해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내나 저나 힘들다는 말은 최대한 안하려고 해요. 우리가 선택한 것인데요"라고 말했다.
아람이가 엄마, 아빠를 알아볼 수 있을 때,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싶다는 이들 부부의 말에 후회는 담겨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