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 일행의 방북 당시 북한 당국이 국무부 브리핑 내용을 문제 삼아 억류 중인 케네스 배(45·배준호)의 석방 협상을 거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리처드슨 일행은 당초 지난해 방북 계획을 세웠으나 '한국 대통령선거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국무부의 요청에 따라 한차례 미뤘다는 주장도 나왔다.
31일(현지시간)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최근 저서 '상어를 꼬드기는 법'(How to Sweet-Talk a Shark)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1월초 방북한 미국 측 인사들에게 체류 마지막 날 '협상 결렬'을 통보했다.
리용호 외무성 부상은 당시 방북단의 배 씨 석방 요청에 대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협조할 수 없다"면서 "미국 정부가 당신들이 여기 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 부상은 특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면담 요구에 대해서도 "나는 리처드슨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경애하는 지도자에게 소개하고 싶지만 당신네 나라는 우리에게 너무 적대적"이라고 거부했다.
당시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는 (리처드슨 일행의) 방북 시점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부적절한 방북이라고 평가절하한 것을 문제로 삼은 것이다.
실제로 북한 측은 당시 "지금 당신이 원하는 걸 준다면 당신이 이곳에 오는 걸 바라지 않는 국무부를 화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방북 기간에 김 제1위원장이 생일을 맞은데다 올초 신년사에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졌고,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동행했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배 씨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국무부가 일을 그르쳤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무부의 비난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은 어려워졌고 더이상 리용호 부상과 얘기할 수도 없었다"면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국무부의 존재감이 우리보다 더 커진 것이 짜증스러웠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더욱이 나는 국무부가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서 한차례 방북을 연기했었다"면서 국무부의 '훼방'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 정부가 리처드슨 일행에게 방북 연기를 요청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또 지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앙심을 품고 의도적으로 '방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적이라도 피하는 것보다는 대화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게 내 원칙"이라면서 당시 국무부의 대응은 이런 협상의 원칙에 반대되는 것이었다고 힐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