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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법 놓고 정치권 공방·게임업계 '부글부글'

IT/과학

    게임중독법 놓고 정치권 공방·게임업계 '부글부글'

    • 2013-11-11 17:09

    정치권에선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민주당 전병헌 의원 대립
    게임업계도 서명운동 진행하며 이례적 반발
    미국정신의학회는 "게임중독 아직은 가설" 입장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추진하는 이른바 '게임중독법'을 둘러싸고 정치권 공방이 가열되고 게임업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신 의원이 지난 4월 30일 대표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서 인터넷 게임을 알코올과 도박, 마약 등과 함께 4대 중독유발 물질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법안 발의 당시에는 큰 반향이 없었지만 지난달 7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게임을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면서 사회적인 논란이 됐다.

    이후 게임업계에서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정치권에서도 신 의원과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대립해오고 있다. 게임 관련 전문 매체들도 게임업계 쪽에 가세해 법안을 성토하고 있는 분위기다.

    ◈ 게임중독법 둘러싼 정치권 다툼

    신 의원은 자신의 법안이 '게임중독법'이 아니라 '4대 중독 관리법'으로 필요한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국무총리 소속의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신설해서 도박·게임·마약·알코올 등 4대 중독의 관리 체계를 일원화해 중독에 대한 예방과 관리를 강화하자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업계 등의 반발이 이어지자 신 의원은 11일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자료까지 내면서 업계의 주장에 반박했다.

    그는 "치료와 관리의 대상은 전문가의 의학적 진단을 받은 중독자"라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을 모두 중독자로 몰아가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명백하게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4대 중독물질에 게임을 포함시킨 것은 게임을 마약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게임은 (다른 중독유발 물질로 규정된)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지만 과용하면 중독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게임을 마약과 동급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신 의원은 넥슨,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NHN 등 게임업체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해 "영업활동으로 인한 이익과 주가 상승 등으로 인한 자본 수익의 열매를 거듭 가져가는 수혜자인 게임업체 대표들은 정말 중독에 이르러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아이가 없다고 믿느냐"고 되물었다.

    신 의원은 한국e스포츠협회장을 맡은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게임중독법'을 "꼰대적 발상"이라며 "게임문화를 과도하게 몰이해한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중독으로 고통받는 수백만의 가족들을 폄훼했다"고 재반박했다.

    ◈ 게임업계, 이례적으로 강한 반발

    게임업계는 이번 '게임중독법'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게임업계 모임인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 옛 게임산업협회)는 지난달 24일 "'중독법'을 제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게임산업에 대한 사망선고"라며 "게임산업 종사하는 10만 산업인은 마약 제조업자가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성명을 냈다.

    이어 이 협회는 홈페이지에서 해당 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의 온라인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11일 오후 4시 현재 온라인 서명 참여자는 25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게임업계가 이번 법안과 관련해 강한 반발을 하는 것은 과거 정부가 게임에 대해 규제를 강화할 때 다소 잠잠했던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게임업계는 2011년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들의 심야 시간(자정∼새벽6시) 게임 이용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제정할 때나, 교육부가 일정 시간동안 게임을 이용하면 한동안 게임 이용을 못하도록 제한하는 '쿨링오프제' 도입을 추진할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올해 초 '친박'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이 '강제적 셧다운제' 시행 시간을 확대하고, 여성가족부 장관이 게임업체로부터 연매출의 1% 이내의 게임중독 치유부담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손인춘법'이 화제가 될 때도 속으로만 앓았을 뿐 협회나 개별 기업 차원에서 별다른 조직적 대응은 없었다.

    그러나 규제와 비판이 점차 중복되면서 게임업계와 협회의 태도가 변화를 보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협회 대표를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이 맡고 있다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남 의원은 실제로 지난달 협회장으로서 간담회를 열어 "게임에 대해서는 자율적 셧다운제가 바람직하다"며 "대통령도 게임을 창조경제 핵심으로 보고 있는 만큼 게임은 '4대(중독)'에서 빠져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남 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장에서도 최문기 장관에게 '4대 중독'과 관련한 질문을 해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게임을 중독으로 다루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부처간 긴밀하게 논의하겠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 정신의학계에선 '아직은 가설' 입장

    정신의학계에서는 게임이 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블로거들이 주축이 돼 만든 매체 슬로우뉴스와 미국 정신의학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학회는 게임 중독을 중독 장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학회가 올해 펴낸 '정신장애의 진단·통계 편람' 최신판(5판)의 '진단 기준과 질병 코드' 항목에는 게임 중독이 등재돼 있지 않다.

    다만 인터넷 게임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임상 연구와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내용은 포함돼 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지난해 보도에 따르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뤼트 판 홀스트(Ruth van Holst) 박사 연구팀은 게임 과몰입 상태 게이머들의 신경정신 반응이 알코올이나 마약 등 일반적인 중독 환자와 정반대라는 사실을 밝혀 '청소년 건강 학술지(Journal of Adolescent Health)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술이나 약물 등에 중독된 환자는 실험 과정에서 반응 속도가 느려졌지만 게임 과몰입을 겪는 청소년들은 거꾸로 실험 과정에서 반응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판 홀스트 박사는 "게임 과몰입을 중독이라 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이들이 무엇인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은 맞지만 '중독'이라는 꼬리표를 달면 (그들이 진짜 받아야 할 처방을 받지 못하고) 무조건 특정한 처방만 내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게임 중독자나 과다 사용자에게 마약 중독자와 유사한 뇌신경학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을 밝힌 연구도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김상은 교수팀은 지난 2009년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기법을 이용해 인터넷 게임 정상 사용자 9명과 과다 사용자 11명의 대뇌 포도당 대사와 충동성을 비교한 결과 인터넷 게임 과다사용이 물질 남용, 행동중독, 충동조절장애 등과 흡사한 뇌신경학적 메커니즘을 보이는 것을 관측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지난해 중국 상하이정신건강센터가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의 뇌에서 코카인 등 약물중독과 비슷한 변화를 관측했다며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했다고 지난해 전했다.

    영국 BBC방송도 벨기에와 영국 과학자들이 장시간 컴퓨터 게임을 하는 10대의 뇌구조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관찰한 결과 뇌의 보상 영역이 일반인보다 큰 것을 밝혀냈다고 2011년 보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게임 중독'이 아직까지 정신의학계가 '입증해야 할 가설'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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