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장터에서 3·1 만세시위를 주도한 유관순 열사의 지문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14일 백석대 유관순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유 열사 지문에 대한 연구가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향토사학가 임명순씨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유 열사의 수형자기록표에 기재된 지문번호를 통해 그의 지문 모양을 유추해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형무소 수감자들은 사진 촬영과 함께 지문을 찍었는데 당시 수형자기록표에는 지문 대신, 모양 분류에 따른 번호가 기재된 것이다.
이 지문번호는 이른바 독일 함부르크식 '10지지문(十指指紋)분류법'에 의한 것으로 0∼9까지 10가지 숫자로 기록됐다.
왼손 지문번호를 위에, 오른손 지문번호를 아래에 적혀졌는데 지문 번호는 둘째(검지), 셋째(중지), 넷째(약지), 다섯째(소지), 첫째(엄지) 손가락 순이다.
지문은 융선(隆線) 배열로 분류하는데 활모양의 궁상문은 1번 한 가지, 말발굽 모양 제상문은 2~6번 다섯 종류, 소용돌이 물결 와상문은 7~9번 세 종류로 세분한다. 지문이 손상된 경우는 0번으로 분류한다.
이 분류법은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경찰청에서 사용하고 있다.
수형기록표에 적힌 유 열사의 지문 번호는 왼손이 8, 7, 7, 6, 7 이고, 오른손이 7, 8, 7, 6, 8 이다. 넷째 손가락만 제상문이고 모두가 와상문임을 알 수 있다.
임씨는 이 같은 지문번호에 따른 유 열사의 성향을 지문에 의한 인성·적성평가기관에 의뢰한 결과 자기주장이 강한 지도자형으로 감정 표현을 자제하며 명확한 규칙에 따라 책임감 있고 끈기 있게 노력하는 형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성향을 결정짓는 뇌 전두엽과 연결된 엄지가 오른손·왼손 모두 소용돌이 모양의 와상문인데다 검지(둘째 손가락)까지 모두 와상문인 경우 매우 드문 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광복 이후 재소자들 지문은 경찰 피의자 지문과 함께 미군정청을 거쳐 넘겨졌으나 유 열사의 지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