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그 일을 당한 걸 동생이 알고는 '나는 누나가 내 누나인 게 너무 부끄럽다'고 하더라고요. 유일하게 믿었던 동생이 그런 말을 하니까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자해를 참 많이 했는데 어느 날 목을 맸다가 줄이 풀려 살았어요. 나 같은 건 함부로 죽지도 못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친족 성폭력 피해아동의 울음 섞인 하소연에 은수연(가명) 작가는 이렇게 충고했다.
"그 사람(가해자인 아버지)이 미안해해야 할 일이지,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야. 힘들거든, 자해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 말하는 게 좋아. 그리고 그 시간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간 아버지에게 당한 성폭행을 온전히 이겨내고, 그 이야기를 국내에서 처음 책으로 펴 낸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은수연 작가.
아동학대예방 주간인 지난 주 22일 은 작가는 굿네이버스 전라북도아동보호전문기관 초청으로 친족의 성폭력 또는 폭행 피해를 입은 아동들과 전주시내 한 음식점에서 서로의 아픔을 털어놓고 보듬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웬만해서는 가슴 속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은 은 작가가 앞선 강연시간에 털어놓은 자신의 힘들었던 시간과 그 시간을 이겨낸 이야기에 동감했다. 식사를 하며 쭈뼛쭈뼛하면서도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냈다.
"잘 지내고 있다가도 내가 이렇게 잘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커서도 걱정인 게 아빠 (감옥에서) 나오면 그때는 난 어떡해야 하는지……."
가정폭력에 시달려 암울한 과거를 안고 사는 아동은 그 소름끼치는 기억이 미래까지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이는 "아빠 (감옥에) 들어가고 며칠 안돼서 할머니가 가자고 해서 면회를 갔어요. 너무 무섭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라고 공포의 시간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성폭력 가해자인 아버지를 신고해 징역 7년의 형사처벌을 받게 했던 은 작가는 경험담을 섞어 조언했다.
"감옥살이가 생각보다 쉽지 않데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다시 감옥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아버지)이 출소한 뒤 어떻게 제 연락처를 알고 집주소를 알아내려고 택배인 것처럼 속여서 전화가 왔었어요. 그 다음에 제가 전화했죠. 다시 또 전화하면 경찰에 알리겠다고 강하게 나가니까 그 다음부터는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한번은 일부러 면회를 갔어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너는 나를 망가뜨리지 못했고, 더럽히지도 못했어’라고 얘기해 줬어요."
피해아동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자책감에 시달렸고, 자존감은 크게 상처입고 있었다.
한 아이는 "저는 아직 (성폭력을 당하는)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피하지 못하고 밀어내지 못했던 것이 (제 잘못인 것 같다)"라며 말꼬리를 흐렸고, 다른 아이는 "아빠한테 그렇게 당했으니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든 뭘 하든 내 몸은 어차피 (망가졌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라고 울먹였다.
은 작가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상처 입은 어린 영혼들도 스스로 치유하고 이겨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조언했다.
"다른 사람들이 '네 잘못이 아냐"라고 조언하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나의 잘못이 아니야'고 말하는 게 중요해요. 저도 오랜 시간 자책했는데 자기가 그런 생각을 하면 남들도 나를 그렇게 봐요. 나부터 나에게 '폭력의 상처가 있었지. 하지만 그게 나의 가치를 깎는 건 아니야'라고 말해야 해요."
한 시간 20여분에 걸친 작지만 소중한 간담회가 마무리되면서 아이들은 말했고, 은 작가는 답했다.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돼서 좋았어요.", "제가 왜 (피해사실을 남들에게) 말했나 후회한 적이 많았는데, 지금은 이런 자리를 함께 해서 좋고 후회도 안 해요. 이런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 아빠가 (감옥에서) 나오더라도 나를 무서워하게 더 열심히 살게요."
"힘들면 울어도 돼요. 소리 내서 울면 얼마나 시원한데요. 그리고 용서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여러분의 삶에 대해 더 신경 쓸 나이에요.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견뎌낸 사람은 굉장히 큰 지혜를 얻는다고 해요. 그 지혜, 그 힘으로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요."{RELNEWS:right}
은 작가와 아이들 사이의 대화는 울음과 웃음이 섞여가며 진행됐다. 아픔이 있었던 아이들의 삶에 기쁨이 더 크게 섞여가기를 바래본다.
아동학대와 아동성폭력 피해자 또는 이를 아는 사람은 굿네이버스 전라북도아동보호전문기관(관장 김정석) 신고전화 1577-1391로 전화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