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권의 핵심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유럽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유럽연합(EU)과 옛 소련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러시아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의 압력으로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협력협정 체결을 잠정 포기할 것을 선언하면서 양측의 비난전이 가열되고 있다.
EU 지도자들은 25일 러시아를 비난하는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관련 기사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압력으로 EU와 협력협정 체결 중단 의사를 밝혔으나 EU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으며 협정 체결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빈롬푀이 의장과 바호주 위원장은 "우크라이나가 외부의 압력을 받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협력 협정 체결에 따른 장기적인 이익이 단기적인 고려사항 때문에 소실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지도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압력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의 시위는 EU와 협력이 역사적인 소명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EU가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협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유럽 국가들이 대규모 시위를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발언을 듣고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압력이며 협박"이라고 지적했다.
EU는 옛 소련권 국가인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과 협력 강화를 위한 'EU-동부파트너십'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옛 소련권 국가들이 러시아 주도의 경제통합체에 가입하지 않고 EU 경제권으로 기우는데 불만을 표시하며 무역 규제 등의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는 표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할 경우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옛 소련의 핵심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되는 정치·외교적 손실을 더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권 국가의 EU 접근을 저지하려는 러시아는 이들 국가에 제재를 가하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여왔다.
이런 과정에서 EU와 러시아 간 충돌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EU는 러시아와의 자동차 관세분쟁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 제소하는 등 단호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WTO의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러시아 측과 '협의와 조정'을 벌였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지난달 정식 제소 절차에 돌입했다. EU 집행위는 지난 7월 러시아가 EU 산 자동차 수입에 부과하는 '재활용세'(recycling fee) 를 부당한 관세 장벽으로 간주하고 WTO의 분쟁해결 절차에 착수했다.
이후 EU와 러시아 측은 조정 절차를 진행했으나 아무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8월 WTO의 15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함에 따라 WTO의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야 한다.
러시아의 WTO 가입 이후 EU가 정식으로 러시아를 제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U 집행위는 지난 9월 발표한 무역장벽보고서에서도 러시아를 대표적인 고율의 관세장벽 국가로 꼽는 등 러시아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했다.
EU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의 반독점 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유럽 천연가스 공급을 거의 독점하면서 수반되는 폐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EU 경쟁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가스프롬'의 중동부 유럽 내 반독점 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최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에 외무장관과 회담한 후 발표한 성명에서 "러시아 정부가 동부 파트너 국가들에 취한 무역 및 관세 조치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조치는 개별 국가가 국제법에 의거해 다른 국가와 관계를 설정하는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