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TVN '응답하라 1994' 방송 화면 캡처)
11월 초에 방영된 TVN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 8회를 보면 쓰레기(정우 분)와 성나정(고아라 분)이 공중 전화박스 앞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쓰레기의 마음을 알고싶은 성나정에게 쓰레기가 진심과 장난을 섞어 애매하게 응답해 시청자들을 애타게 만든 장면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장면 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추억에 잠기게 하는 드라마답게 당시 성나정이 쓰고있던 모자가 농구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았다. 모자에는 '뉴올리언스 호네츠(New Orleans Hornets)'라는 미국프로농구(NBA) 구단 명칭이 새겨져있었다.
그런데 1994년에 뉴올리언스 호네츠라는 구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샬럿 호네츠라는 구단이 있었다. 농구 팬들은 '옥의 티'라고 지적하면서도 추억의 구단의 등장에 즐거워했다. '응답하라 1994'가 역사 고증 드라마도 아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팬은 아무도 없었다.
때마침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응답하라 1994'를 선언했다. 조던이 구단주로 있는 샬럿 밥캣츠는 다음 시즌부터 호네츠라는 팀 명칭을 쓴다. 샬럿 호네츠가 부활하는 것인데 조던은 이번 주 기자회견에서 "샬럿 호네츠의 유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차원에서 과거 호네츠가 사용했던 유니폼 색깔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청록색 줄무늬 유니폼을 앞세워 비록 짧았지만 굵었던 전성기를 보내며 NBA 팬들을 사로잡았던 1990년대의 샬럿 호네츠. '응답하라 1994'의 어시스트와 조던의 마무리에 힘입어 오래 전 존재했던 추억의 구단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1990년대 샬럿 호네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래리 존슨, 먹시 보그스, 알론조 모닝(사진 왼쪽부터) (사진 = 스포츠 액션 바스켓 표지)
▲신장 160cm의 '작은 거인' 먹시 보그스를 기억하는가1990년대 초,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의 라이벌 시대가 저물고 조던의 지배가 시작됐다. 찰스 바클리, 클라이드 드렉슬러,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등이 농구 황제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시대다.
슈퍼스타들보다 기량은 떨어져도 그들 못지않게 전세계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선수가 있었다. TV 화면 상에서는 신장 2미터가 넘는 거인 군단 틈에서 마치 콩알처럼 보이는 작은 선수였다. 그래서 더 눈길을 끌었다.
청록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요리조리 코트를 헤집고 다녔던 NBA 역대 최단신 선수, 신장 160cm의 포인트가드 타이론 '먹시' 보그스는 당시 호네츠를 상징하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
보그스는 1988년 창단된 샬럿 호네츠의 원년 멤버다. 그 어떤 리그에서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만 같은 160cm의 신장으로도 정상급 포인트가드로 군림했다. 전성기 시절 두 차례나 한 시즌 평균 1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했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득점력도 준수했다. 무엇보다 땅에 붙어있는듯한 보그스가 드리블을 할 때 견제하거나 공을 가로챈다는 것은 천하의 조던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NBA에는 39명의 '보그스 리스트'가 있다. 160cm짜리 선수에게 블록슛을 당한 불명예 집단이다. 가장 유명한 선수로 뉴욕 닉스의 213cm 장신 센터 패트릭 유잉이 있다.
당시 보그스의 전세계적 인기는 상당했다. 국내 모 자동차 제조 기업이 보그스를 모델로 한 광고를 방영하기도 했다.
☞160cm의 작은 거인 먹시 보그스의 하이라이트 영상 보러가기(유투브)또한 보그스가 과연 덩크를 할 수 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도 많았다. 당시 해외 언론 기사를 찾아보면 이렇게 묘사돼 있다. "보그스는 공식적으로 서전트 점프가 111cm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덩크를 하기에는 손이 너무 작아 공을 한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고.
마이클 조던이 구단주로 있는 샬럿 밥캣츠는 다음 시즌부터 호네츠로 팀 명칭을 바꾸고 더 나아가 1990년대 샬럿 호네츠의 유니폼 색깔을 다시 쓰기로 했다 (사진 = 샬럿 밥캣츠 홈페이지)
▲당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래리 존슨-알론조 모닝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가 허름한 실험실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인조인간 제조에 몰두하고 있다. 노력 끝에 두 전설적인 스타의 장점을 모두 반영한 농구 기계가 탄생했다.
이름을 뭘로 지어야 할까. 버드가 먼저 "나의 퍼스트 네임(래리)을 넣을거야"라고 말하자 존슨은 "그럼 나의 라스트 네임(존슨)도 넣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인조 인간이 벌떡 일어났다. 그의 이름은 래리 존슨이었다.
1991년 당시 유명했던 신발 제조 회사가 만든 광고다. 하지만 이 광고는 전파를 타지 못했다. 존슨이 HIV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코트를 떠나면서 이 광고는 묻혔고 그 내용이 이야기로만 전해졌다. 1990년대 초 미국 대학농구를 초토화시키고 샬럿 호네츠에 입단한 래리 존슨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설명해주는 일화다.
래리 존슨이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주립 대학(UNLV)를 떠난 1991년 이후 미국 대학농구에서는 '제2의 래리 존슨' 찾기가 끊임없이 이뤄졌지만 그 누구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201cm의 신장으로 파워포워드를 보면서 내외곽을 모두 초토화시킬 수 있는 득점력, 상상을 초월하는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갖춘 선수는 래리 존슨 이후에 없었다.
존슨은 1991년 호네츠 유니폼을 입었고 1년이 지나 '센터 사관학교' 조지타운 대학이 배출한 알론조 모닝이 샬럿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NBA 역사상 가장 젊고 재능이 넘쳤던 센터-파워포워드 콤비가 완성됐다.
그 당시 샬럿 호네츠의 인기는 대단했다. 홈 구장 샬럿 콜로지엄은 항상 만원관중을 모았다. 래리 존슨과 모닝, 보그스가 활약하던 시절에 관중동원 순위에서 2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구단 인기의 척도는 유니폼과 같은 라이센스 상품 판매 순위로 가늠할 수 있다. 샬럿 호네츠는 1993년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 이어 판매 순위 2위에 올랐다. 조던이 1차 은퇴를 하고 코트를 떠난 1994년에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시카고가 2위, 당대 최고 인기팀 중 하나였던, 샤킬 오닐과 앤퍼니 하더웨이의 콤비를 앞세운 올랜도 매직은 3위에 불과(?)했다.
▲마이클 조던의 '응답하라 1994'
샬럿 호네츠는 1994-1995시즌에 당시 팀 최고 기록인 50승32패를 기록하며 당당히 강호의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때마침 복귀한 조던의 시카고를 만나 1승3패로 탈락했다.
1995년 겨울, 모닝이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면서 샬럿 호네츠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지역언론은 '역사의 한 챕터(Chapter)가 끝났다'고 기사 제목을 뽑았다. 1년 뒤에는 래리 존슨이 뉴욕 닉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샬럿은 글렌 라이스라는 당대 최고의 슈터를 영입해 여전히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팬들을 열광에 빠뜨렸던 샬럿의 시대는 저물었다.
샬럿은 2002년을 끝으로 뉴올리언스로 연고지를 옮겼다. 관중이 급감하면서 프렌차이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뉴올리언스는 올 시즌부터 호네츠라는 팀 명칭을 버리고 펠리컨스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