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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등골 브레이커, 캐몽에 숨은 존재의 이유?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지난 겨울 등골 브레이커 점퍼가 사회적 이슈였다. 너무 비싸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고 붙인 이름이 등골브레이커였는데 올 겨울도 역시 열풍이 불고 있다. 올 겨울 고가의 프리미엄 패딩 유행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것이 특징이다.

    50만원에서 80만원까지 하는 어린이 패딩.점퍼, 200만원에 이른다는 성인 점퍼들이 그만한 가치를 발휘할까? 이른바 수입브랜드 프리미엄 제품 패딩점퍼의 국내 가격은 현지보다 30%~50% 까지 비싸다. 모양 색감이 비슷해 외양으로 구분하기 힘들만큼 만든 국산 제품은 훨씬 저렴하고 제품에 따라 수입 브랜드 가격의 1/20 수준으로 시중에서 팔리기도 한다.

    해외수입브랜드가 갖는 과시적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죄다 입는 바람에 벌써 하향세로 접어들었다는 시장분석이다. 몇 십만 원 주고 샀지만 1년 2년 쯤 우쭐대고 끝나버리는 셈이다.

    ◈ 내가 감히 저 옷을 vs 네가 감히 저 옷을

    아이들이 비싼 해외 브랜드를 입게 되는 사회구조적 현상을 생각해 보자.

    부모 입장에서 자기 아이를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받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란 게 결코 쉽지 않다. 부모가 기를 쓴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성적이나 재능이 쉽게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쉽고 확실한 효과를 거두는 방법의 하나가 돈으로 옷 사서 입히는 것이다. 부모는 심리적으로 아이의 옷을 통해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판타지를 확장하는 셈이다. 생각할 것은 옷으로 인한 우월감이 생겨난다면 옷으로 인한 따돌림도 반드시 생겨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옷에서 확인하고 또래 집단에 어울릴 수 있는 통로로 여기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명품 옷을 입어서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니고 이미 교육 현장과 아이들 세계에 계급의식 내지는 갈등이 존재하고 옷은 그 명분이나 핑계일 수 있다. 안 입었다고 따돌림 당할 수도 있고 못 입는 것이 마땅한데 자기네와 같은 걸 입었다고 따돌릴 수도 있는 것이다. 어른들과 사회제도가 차별과 갈등 구조를 해결 못한 채 해외 수입브랜드 탓만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 것.

    어떤 배경과 과정이든 아이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배우지 못하고 소비에 의해 평판과 소외가 결정되는 건 가벼이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 전문 패션은 일찍이 1960년대 후반부터 귀족들이 사는 나라 영국에서 시작돼 유렵과 미국에서 자리 잡았다. 루이비통, 디오르, 구찌를 시작으로 미소니, 알베르타 페레티, 클로에 등의 고급 브랜드가 시장에 덤벼들었다.

    의류와 악세서리에 이어 아동용 화장품과 향수도 등장했다. 베이비 터치 향수를 내세우며 겔랑, 지방시, 불가리 등에서 내놓고 있다는 소식이다. 유명 브랜드 유모차에서 시작해 의자, 식탁, 의류, 부츠, 모자... 더 부유한 어린이들은 어린이용 은수저, 은포크도 있다고 한다. 에르메스가 특히 유명하다고.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아이들 소비문화에 섹시 코드가 접목되는 것이다. 섹시코드와 패션은 어른들에게는 일반화된 합성이지만 이것이 아이들 패션과 브랜드로 내려가는 것에는 문제가 따른다. 아이들 옷에 섹스어필하는 야한 문구들이 새겨지는 걸 시작으로 옷들이 짧아지고 속이 비치며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변한다.

    소비와 섹시에 일찍 접한 아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건 자신들을 성의 대상과 상품으로 여기는 어른들이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신의 性을 수단으로 삼게 된다. 원조교제가 그런 사례에 속하고 연령대는 자꾸 내려간다.

    서구사회에서는 날씬한 몸매, 식스팩의 근육질 몸매를 아이들에게 강제로 소비시키며 생기는 부작용들이 보고되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 스테로이드 약물이 번지고 있는 것. 덩치와 근육을 키우는데 시간이 걸리니 약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여자 아이들은 약으로 살을 빼며 부작용에 빠진다. 우리나라 여자 아이들이 일찌감치 성형수술에 빠져드는 것도 그런 예이다.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과 함께 간 손상, 고혈압, 뇌줄증, 조울증, 콜레스테롤 증가 등을 겪으며 일찌감치 성인환자가 되어버린다.

    ◈ 소비교육은 어릴 때 필요하다

    아이들은 사고 싶은 충동도 강하고, 싫증도 빨라 쉽게 버려버린다. 쓸만하고 고장난 곳도 없는 물건들을 아이들은 왜 버리는 걸까? 싫증나서만이 아니다. 부모가 또 새로운 물건을 사줄 걸 알기 때문에 버린다.

    부모의 과다 소비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물건은 필요한 곳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 의식 속에서 물건은 사달라고 하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다. 둔감한 부모는 계속 유행을 사주고 기업은 속으로 비웃으며 계속 만들어 소비를 강요한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바뀌니 팔 수 있는 물건도 많다. 정보공개에 대한 경계심도 약해 자신의 정보와 가족의 정보를 마구 노출시킨다. 기업은 이 정보들을 활용해 평생 소비자를 일찍부터 확보하려 기를 쓰고 있다.

    과거 어린이들은 어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임시도구로 이용됐지만 이제는 보다 확실한 판촉사원이고 아이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광고모델이고 마케팅 도구이다. 또 신제품을 가족에게 소개하고 부모를 끌어들이는 새로운 역할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과거에는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게 보호할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상업주의의 주요 도구가 되어버린 셈이다.

    {RELNEWS:right}13살에서 15살을 넘기면 필요한 물건에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욕망할 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효과적인 소비교육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시작되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들을 운동장에 내보내고 좋은 책을 손에 잡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 방, 아이들 침대에 장난감과 동화책은 없고 텔레비전, 컴퓨터, 노트북, 모바일 폰이 있다면 소비광고는 아이들을 쉽게 점령한다. 기업은 어린 시절 브랜드가 청장년 노년의 친근한 브랜드로 이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필사적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주 찾아가는 웹사이트나 커뮤니티방은 이성친구 소개광고에서 시작해 도박 사이트, 성형수술 브로커로 아이들을 연결한다.

    과거의 소비자 문제는 과다한 가격과 수준 낮은 품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일생을 먹이로 삼고 덫을 놓는 것이 상업주의이다.

    소비는 생활필수이니 알뜰함이니 하는 문제를 벗어나고 있다. 소비는 이제 노회한 상업주의의 술수에 자신과 아이를 제물로 바치느냐 벗어나느냐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인간의 평판과 계급을 조종한다. 빠져나가려 해도 기술문명과 마케팅 전략으로 옭아맨다. 소비는 인간의 존엄과 직결되는 존재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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