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안들을 외면한 채 진학과 취업 등 개인적 관심사에 매몰됐던 청년들의 성찰과 각성을 담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뜨겁다. 16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정경대학 게시판과 담벼락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응답하는 대자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cbs.co.kr
철도노조의 파업을 계기로 학생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일명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각계각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27)씨가 지난 10일 교내에 게시한 것으로, 철도노조 파업·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밀양 송전탑 건설공사 등 각종 사회현안을 언급하며 대학생들에게 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 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역설적인 물음은 전국 대학가를 넘어 고등학생과 해외 유학생, 그리고 일반인들에게서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답을 이끌어내고 있다.
16일 현재 '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가 게시된 전국 대학은 고려대를 포함해 60여 곳을 넘어섰다. 대부분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각기 다른 논리와 단어로 구성됐지만 결국 세상의 불의에 침묵하지 말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북대에서는 익명의 대학생이 이를 반박하는 대자보를 내걸자 다시 이를 재반박하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이날 오전에는 전북 군산여고에 '고등학교 선배님들 학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내걸렸다. 이 학교 1학년 채모양은 자보에서 "저는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나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도 안녕했고, 그것이 직무 중 개인 일탈이며 그 수가 1000만건이라는 소식이 들릴 때도 전 안녕했습니다"라며 "바로 앞 군산 수송동 성당에서 시국 미사가 일어났을 때도 또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여 철도파업이 일어났어도 전 안녕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등학생이니까요"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채양은 "3·1운동도 광주학생운동도 모두 학생이 주체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일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채양은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이 행동이 훗날 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저는 참으로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칩니다. 꼭 바꿔야 한다고 민주주의를 지키자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래로 바꿔야 한다고 말입니다"라고 적었다.
광주 북구 일곡동의 한 버스 정류장에도 고등학생이 쓴 대자보가 붙었다. "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몰랐고 정치에 관심도 없었던 한 고등학생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글쓴이는 원격 의료·영리 병원 등을 허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글쓴이는 "의료민영화가 실시되면 병원은 더 이상 공기업이 아닌 민간 기업이 됩니다. 이 말은 즉 더 이상 병원은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 아닌 개인(민간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 돼버립니다"라며 "민영화가 시행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부자인 사람들은 더 부자로…이게 과연 옳은 정책 방향일까요? 저희가 앞으로 살아가야 될 우리나라를 지켜주세요"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대전과 경기·경북 지역의 고등학교에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게시됐다.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은 해외로도 확산됐다. 미국 UC버클리에 재학 중인 신은재씨와 박무영씨는 지난 13일 캠퍼스 내 'Free Speech Movement Cafe(자유언론운동 카페)'앞 게시판에 '저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의 자보를 붙였다.
이들은 자보에서 "고대의 학우님처럼 누군가 물어봐 주길 기다렸습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유학까지 와 있는 제가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하기엔 가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나,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들은 "파업을 이유로 고작 나흘 만에 무려 78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부당하게 해고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수십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서울 서초동 삼성본사 앞에선 배고픔을 호소하며 죽어간 노동자의 동료들이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유학까지 와서 공부한 나 또한 노동자가 될 것이기에, 그들의 지금이 나의 미래이기에, 나는 결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기성세대도 대자보 게시에 동참하고 있다. 충북 충주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벽면에 걸린 '다들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게시물에는 "지금의 우린 너무 나만의 '안녕'만을 생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 모두가 같이 '안녕'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이 세상이 더 살맛나는 그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밝혔다.
이번 대자보 열풍의 진원지인 고대에는 이날 오후 "너희들에게만은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는데 너를 키우면서 부끄럽게도 성적과 돈에 굴종하는 법을 가르쳤구나. 미안하다. 이제 너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낸다. 82학번 너희들의 엄마"라는 내용의 자보가 걸리기도 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은 온라인으로도 급속히 퍼지고 있다. 지난 12일 개설된 사회관계망서페이스북의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의 '좋아요'는 이날 오후 5시 현재 23만건을 넘어섰다. 또한 많은 누리꾼들이 카카오톡 등의 프로필 사진을 '안녕들 하십니까' 문구가 담긴 이미지로 교체하고 있다.
CBS노컷뉴스 조혜령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