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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뉴스]칠레는 왜 바첼레트를 다시 선택했을까?

정치 일반

    [Why뉴스]칠레는 왜 바첼레트를 다시 선택했을까?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유세중인 바첼레트. 바첼레트 페이스북 캡쳐

     

    한반도의 정반대쪽 칠레 대선에서 바첼레트 전 대통령이 다시 선출됐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바첼레트 대통령이 4년이 지나 재집권에 성공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2006년 대통령 당선 당시에는 53%의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2010년 퇴임할 때는 지지율이 85%에 육박했을 정도로 칠레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임기 중 하루 2.5개꼴로 무려 3500개의 유아학교가 빈민가에 세워졌고, 소득 하위 40% 이하 가정의 0∼4세 아동은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을 받게 됐다. 아이들을 맡길 수 있게 된 여성들은 일자리를 갖기 시작해 실업률이 떨어졌고 출산율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연임불가 규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가 4년 만에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 "칠레는 왜 바첼레트를 다시 선택했을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칠레 대통령 당선자인 바첼레트가 어떤 사람이냐?

    = 바첼레트는 한마디로 소개하기가 참 어려울 만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도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엄마 리더십' 또는 '아줌마 리더십'으로 불리는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로 표현하면 될 것이다.

    2010년 3월 11일 퇴임식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칠레 국민들은 규모 8.8의 지진이 일어난 엄청난 국가적 재난의 와중임에도 “대통령 고마웠어요. 2014년 다시 만나요”를 외쳤는데 그 바람대로 대통령으로 다시 복귀하게 된 것이다.

    가톨릭이 국교로 21세기 들어서야 이혼이 합법화된 보수적인 나라에서 무신론자에다 이혼녀로 아버지가 다른 아이 셋을 키우는 싱글맘인 바첼레트는 정치인으로서는 약점이 많았지만 이를 바첼레트 특유의 ‘아줌마스러움’, ‘엄마스러움’으로 돌파해 나갔다.

    바첼레트는 대통령 취임 첫해에 칠레 교육체제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와 구리광산 노동자들의 파업, 교통문제로 인한 화염병 시위까지 벌어졌지만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갔던 것이다.

    남미 전문가인 경희대 국제대학원 곽재성 교수는 “바첼레트와 같이 일 해본 사람이나 아는 사람들은 모두 칭찬한다”면서 “바첼레트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소통의 달인이고 격의 없이 사람을 어루만져 줄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칠레 현지에서 근무하는 산티아고 코트라 무역관 유현주 과장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바첼레트가 당선된 것은 공약이나 논리보다는 포근한 이미지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바첼레트는 편안하고 아늑한 엄마 같은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의사출신이고 민주화운동을 한 투사출신 아니냐? 실제와는 정반대인가?

    투표하는 바첼레트. 바첼레트 페이스북 캡쳐

     

    = 그렇다고 한다.

    코트라 유현주 과장은 "칠레 국민들이 바첼레트 당선자를 어머니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첼레트가 걸어온 길을 보면 험난하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가 군인으로 아옌데 정부에서는 고위공직자로 근무했고 칠레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어려움 없는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생시절 아버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 정권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사망한다. 바첼레트는 대학 재학 중 피노체트 정권에 맞서 사회주의 청년단 활동을 하다 역시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고 그 뒤 국외로 추방되었다가 민주화 이후 에야 귀국하게 된다.

    바첼레트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피는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이런 이미지가 약자를 돌보는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했고 또 외모도 푸근하고 편안하다는 평을 듣는다.

    유현주 과장은 "바첼레트가 연설하는 걸 들어보면 똑똑하게 얘기하기보다는 일반 서민들처럼 얘기한다"며 "국가원수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아니라 이웃의 아주머니 같은 편안함을 준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유 과장은 특히 "결선투표에서 맞붙은 여당의 마테이 후보와는 성장과정도 다르고 이미지도 정반대라면서, 마테이 후보는 똑똑하고 엘리트 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에 바첼레트는 소탈하고 격의 없는 느낌을 준다"라고 전했다.

    칠레사람들은 바첼레트를 스페인어로 형용사인 'acogedor'(편안하고 우호적인)로 표현한다고 한다.

    바첼레트는 대통령 퇴임 직전에 발생한 칠레 대지진 상황에서 지진발생 1시간 만에 TV에 출연해 지진 발생 사실과 정부의 대응을 설명한 뒤 곧바로 피해지역 6곳을 잇따라 방문해 피해자들을 ‘엄마처럼’ 다독였다. 외신들도 이를 칭찬했다. ‘여성적 리더십’도 빛을 발했다. 근엄하게 대통령 궁에서 대책발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부들이 즐겨보는 TV아침 프로그램에 나가 진행자들과 아침을 먹으면서 정부대책을 설명하기도 했다.

    영어와 독일어 등 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의사출신의 엘리트이지만 엘리트로서의 도도함이나 차가운 모습이 아닌 아줌마 같은 엄마 같은 모습을 보였다.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 칠레국민들은 왜 바첼레트를 선택했나?

    = 먼저 코트라에서 분석한 공식적인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칠레 국민들이 성장보다는 복지와 분배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바첼레트 대통령이 퇴임직전 지지율이 85%에 이를 정도였지만 칠레국민들은 중도좌파가 아닌 우파의 현 피녜라 정권을 선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을 희망한 것이다. 그래서 피녜라 정권에서는 재임기간 동안 평균 경제 성장률 5.8%, 세수가 170억 달러, 1인당 구매력 기준 GDP 1만8천 달러 달성, 일자리 80만개 창출 등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렇지만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교육의 질 저하 등의 문제로 지지율이 통상 30~35%수준으로 낮았다.

    두 번째는 집권 여당의 인물난이다.

    바첼레트에 맞설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여당의 후보가 세 차례나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테이 후보가 나서 결선투표까지 갔지만 큰 표 차이로 정권은 다시 중도좌파진영으로 넘어갔다.

    세 번째는 칠레 국민들의 피노체트 군부독재 정권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의 마테이 후보의 부친이 피노체트 정권에서 보건부장관을 지낸 침 피노체트 인사였다. 바첼레트의 부친이 피노체트 정권에 의해 수감되고 고문으로 사망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다.

    경희대 곽재성 교수는 "바첼레트가 갖고 있는 파괴력이 어마어마하다"며 "4년 전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착실하게 준비를 했고 지지세 결집에도 성공했기 때문에 당선됐다"고 평가했다. 곽 교수는 "반면 집권여당에서는 바첼레트에 맞설 카리스마 있는 후보를 내세우지 못했다."며 "모든 게 바첼레트를 위한 선거였다"라고 덧붙였다.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집권 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보다는 바첼레트의 사회양극화 해소 공약이 주효했던 것 같다'면서 '증세를 통해서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걸 칠레 국민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평가했다.

    ▶정책에서도 차별성이 있나?

    바첼레트 페이스북 캡처

     

    = 바첼레트의 1기 집권기에는 '무상보육' 정책이 핵심이었다면 2기 공약에는 '무상교육' 이 핵심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금을 늘려서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바첼레트는 2010년부터 칠레에 불거진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헌법 개정과 무상교육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바첼레트는 15일 당선 확정 후 첫 연설에서 "모두가 교육받을 권리를 동등하게 얻을 수 있도록 헌법을 개혁하겠다"며 공약 이행 의지를 다시 밝혔다.

    코트라는 지난 18일 보도자료에서 "미첼 바첼렛 후보의 공약프로그램은 '3대 개혁 : 조세, 교육, 정부'로 요약된다"며 "GDP의 1.5~2%를 투입하여 교육의 질을 관리할 감독기관을 신설하고 칠레 미개발 지역에 100여개 대학을 신설하는 한편, 하위 40% 계층에게 대학정원의 20%를 배당하고 대학등록금 인상폭을 고정하는 등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바첼레트의 공약 중 우리나라와 달리 법인세를 현행 20%에서 25%로 점진적으로 올려 교육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내세우면서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하는 박근혜 정부가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며, "복지공약은 지키지 않으면서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공약만 지키겠다고 버틸 것이 아니라 공약을 새롭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에서 바첼레트 대통령을 주목한 적이 있었는데 지난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인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라는 논란 때문이었다.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 찬반문제를 두고 시장직까지 걸며 주민투표를 밀어붙였다가 결국 중도 낙마했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대한민국에 고한다'는 책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아래인 칠레의 경우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는 2006년 집권 후 0~4 아동에게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 의료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임기 중 하루 2.5개씩 3500개의 국립 의료 시설을 만들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복지정책으로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고 소비가 진작되었을지 상상해 보라."고 밝혔다.

    칠레는 바첼레트가 집권(2006년 ~2010년)시기 출산율이 급증했는데 2005년에 24만500명으로 줄었던 신생아 수가 2007년 25만 1800여명으로 늘었고, 2008년 25만 7천명으로
    증가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취임한 지 6개월 뒤인 지난 2006년 10월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도입을 선언했는데 "0세부터 4세까지 모든 어린이를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이제부터 칠레의 모든 부모와 칠레 정부는 함께 갑니다."라고 했다.

    ▶오늘 주제를 칠레의 바첼레트 대통령으로 정한 이유는?

    청와대, 바첼레트 페이스북 캡처

     

    = 칠레와 우리나라는 지구의 정반대에 위치한 너무나 먼 나라이다. 칠레하면 떠오르는 게 와인, FTA, 지구 정반대의 나라 등일 것이다. 그렇지만 칠레와 우리나라는 유사한 점이 많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FTA를 맺은 나라가 칠레인데 2004년 양국 간 FTA 발효를 계기로 양국교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자동차, 전자 등 여러 상품시장에서 한국산의 점유율이 대폭 증가했다. 칠레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 브라질, 멕시코에 이어 제3위의 교역대상국이다. 칠레는 2012년 기준 33위 수출 대상국이자 27위 수입대상국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오늘 주제를 칠레의 바첼레트 대통령 당선자로 정한 이유는 바첼레트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닮은 점이 많으면서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1951년생인 바첼레트는 박근혜 대통령과(1952년생) 나이가 비슷하고 칠레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었다는 점 아버지가 군인출신이었다는 점 20대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점 등이 닮은꼴이다. 부친 사망 이후 은둔의 생활을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렇지만 성장 과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아옌데 정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바첼레트의 아버지는 17년 간 칠레를 철권통치한 '피노체트' 군사쿠데타 세력한테 ‘국가반역죄’로 체포되었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바첼레트는 대학 재학 중 피노체트 정권에 맞서 사회주의 청년단 활동을 하다 역시 붙들려 고초를 겪었고 그 뒤 국외로 추방되었다가 민주화 이후 귀국해 정치 이력을 쌓았다. 바첼레트는 군부독재의 피해자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의 딸이었다.

    곽재성 교수는 "두 사람은 너무 다르다"라고 평가했다.

    상징적으로 바첼레트 당선자와 박근혜 대통령의 다른 점인데 바첼레트는 국방장관 시절 사열을 하면서 거수경례를 하는 군인에게 볼 키스를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국군의 날 거수경례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2년 바첼레트가 아버지가 군사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지 19년 만에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자 칠레군부는 복수를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바첼레트는 '군심'을 얻기 위해 부드럽고 인간적인 지도력을 발휘했고 결국은 칠레 군부가 '다시는 민주주의를 뒤엎는 일은 결코 다시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도록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나라 첫 여성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어머니 리더십'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취임이후 보인 모습은 어머니 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운 '강력한 지도자상'을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첼레트는 대통령 재직 때인 지난 2009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그 때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여성적 리더십에 대한 의미와 장단점'에 대해 질문을 하니까 "남성과 여성을 일반적으로 어떻다고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남성 리더십은 결과에 포커스를 맞추고 여성은 과정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어느 것이 월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혼자서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바첼레트의 성공은 무엇보다 수평적 민주적인 관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한 덕분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첼레트가 대통령 시절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직언할 참모를 곁에 둬야 한다. 현장을 다 가볼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둬야 한다. 요구되는 것은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로열티(충성심)다. 어떤 경우든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이건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한다"

    한편, 칠레는 소득불균형이 심각한데 엘리트 계층이나 고소득층에서는 우파인 집권여당을 지지한 반면 저소득층 저학력층일수록 바첼레트를 지지했다고 한다.

    칠레 Diego Portales 대학에 따르면, "바첼렛 지지자의 68.2%가 좌파 성향의 유권자이고, 57.4% 가 46세 이상의 유권자이며, 56.4%가 사회경제적 하류 계층이고, 75.8%가 61세 이상의 사회하류계층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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