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승리 1주년을 맞이한 19일 현재, 그의 맞수였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차기 대선 재도전을 공공연하게 밝히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선에서 패했을 경우 상당 기간 몸을 낮추며 재기를 도모했던 선례와는 다른 모습이다.
문 의원의 재도전 의사는 지난달 29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확인됐다. ‘대선후보의 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집착하지 않겠지만 회피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문 의원은 이어 지난 9일 펴낸 자신의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지난 대선을 “관권 선거부정”으로 규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공안정치로 이끄는 무서운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등 각을 세웠다.
문 의원은 지난 14일에는 대선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북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16일에는 서울광장에 마련된 밀양 송전탑 주민 분향소 비공개 방문, 18일 서해 군부대 방문 등 차기주자로서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문재인 조기 대선행보에 엇갈리는 시각
문 의원의 이같은 모습에 대해서는 당 내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그가 대표하는 이른바 ‘친노’진영은 지난 대선에서 48%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문 의원이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고, 차기를 위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친노가 아닌 한 의원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위협적인 문 의원을 비롯해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의 시의적절한 발언은 당을 위해서 나쁘지 않다”고 봤다.
반면 김한길 대표는 “지금은 선당후사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고, 손학규계인 신학용 의원은 ”국민은 지금 떡 줄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지금은 차기대선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 지도부의 중심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조경태 의원은 ”민주당을 이 지경으로 몰고 온 장본인들이 아직 대선이 4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대선출마 운운하는 것이 당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문 의원과 친노를 싸잡아 비난했다.
사실 문 의원은 대선 뒤 1년 동안 항상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대한민국을 1년 동안 지루하면서도 뜨겁게 달구었던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의 수혜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역으로 피해자는 문 의원이 되기 때문이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이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국면에서도 새누리당이 참여정부에 책임을 물으면서 문 의원은 좋든 싫든 전면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지난 1년 동안에는 새누리당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차기 대선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문 의원 측 설명이다.
▲친노 프레임 벗어나지 못하면 부족한 2% 채우기 어려워
이런 가운데 문 의원이 대권 재수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문재인은 친노”라는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새누리당은 정국의 고비마다 문 의원과 친노를 한 묶음으로 걸고 넘어지며 민주당의 적전분열을 꾀했다. 새누리당 내 친박 친이보다 거리가 멀다는 친노 비노 구도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따라서 “문재인=친노“를 불식하지 않는 한 지난 대선에서 부족했던 2%는 채워지기 어렵다는 것이 민주당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앞서 문 의원은 지난 6월 NLL포기 논란 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주장하며 확전을 주도한 적이 있으나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확인했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전선을 대화록 불법유출에 맞추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문 의원의 주장을 따랐다가 결론적으로 낭패를 보고 말았다. 때문에 당 내에서는 “문 의원의 생각은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변호사에 가깝다”라는 말이 일찌감치 회자된 바 있다.
문 의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년 지방선거는 문 의원의 정치력을 시험해볼 또 하나의 관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한길 대표는 “우리 당의 영향력 있는 모든 분들을 포함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각자가 가진 것을 최대한 당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당 지도부의 책임을 잠룡들에게 미리 분산하면서 문 의원에게는 차기 대선에 도전하려면 그에 걸맞는 정치력과 당 기여도를 보여 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차기 야권주자 1위 안철수, 신당 창당 서두르며 독자세력화 모색
이처럼 문 의원이 일찌감치 차기 대선 도전에 나섰다면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신당 창당을 서두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해 11월 23일 대선후보 전격사퇴라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후보단일화를 마무리한 뒤 대선 당일인 12월 1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올해 3월 귀국한 안 의원은 4월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해 무난히 당선됐다.
이어 지난 5월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창립한 안 의원은 지난달 28일 창당준비기구인 ‘국민과 함께 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출범하며 신당 창당을 통한 독자세력화의 깃발을 올렸다.
안 의원의 가장 큰 자산은 대선 1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지지도이다. 안 의원은 야권의 차기주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민주당 외에 대안이 없었던 호남지역에서는 더욱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대안으로 안 의원을 생각하는 유권자가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안 의원의 파괴력은 여전하다고 본다. 진용을 잘 갖추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민주당의 또다른 의원은 “호남은 인물을 철저히 검증하고 ‘아니다’고 생각하면 냉정하게 내친다”며 “그런데 안 의원은 아직 검증된 것이 별로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안 의원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내용이 없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안 의원은 “새 정치”, “합리적 개혁” 등의 말을 자주 구사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이나 박근혜정부의 공약파기 논란 등 뜨거운 현안에 대해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뒷북을 친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결국 안 의원의 운명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안 의원은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책임감 있게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 측은 또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