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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맨' 정재영 "무계획 인간이 계획적으로 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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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랜맨' 정재영 "무계획 인간이 계획적으로 살려니…"

    [노컷인터뷰] 초단위 계획 짜는 결벽남 연기…"현대인 위로 힐링코미디"

    배우 정재영(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정재영(43)은 요즘처럼 바쁘게 산 기억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말 SF 스릴러 '열한시'에 이어 9일 신작 '플랜맨' 개봉을 앞둔 데다, 올 상반기 선보일 사극 '역린'의 촬영까지 병행하고 있는 까닭이다.
     
    "제 인생에서 촬영을 하면서 영화 두 편을 잇따라 개봉시킨 적은 처음이에요. 여기서 플랜맨 얘기를 하다가도 저기 가서는 역린을 생각해야 하니, 정신이 분산돼 두 작품 모두 소홀해질까 걱정입니다. 양다리 걸치면 이런 느낌일 거 같아요. 제가 한 번에 여러 일을 잘 못하거든요."
     
    이러한 이유로 본의 아니게 나름 계획적으로 살아야 하는 지금, 정재영은 몹시 힘들단다.
     
    "계획도 지켜야 세울 맛이 나죠. 게을러서 못 지키니 저 자신에게 화가 나고 자책만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아예 계획을 안 짰더니 지켜야 할 것도 없고 마음이 편해요. 그렇게 산지 10년은 된 듯해요. 영화 열한시는 제작년에 찍어둔 것이 작년에 개봉한 거니 제쳐두고, 지난해 '우리 선희'와 플랜맨 두 작품을 6개월가량 찍고 나머지 기간에는 거의 쉬었죠. 이런 직업이 어딨습니까. 학교 선생님들도 배우한테는 상대가 안 됩니다. (웃음) 저 같은 사람한테는 하늘이 내려 준 직업이죠."
     
    스스로를 "무계획적인 인간"이라고 말하는 그가 영화 플랜맨에서는 극심한 결벽증 탓에 살균제를 달고 사는 데다, 초 단위로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정석 역을 연기했으니 아이러니다.

    정재영도 "영화 속 정석과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하니 이 역할을 맡은 이유가 더욱 궁금했다.
     
    "극중 정석은 제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과장되고 희화화된 인물이죠. 기존에 해보지 않은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관건은 지나칠 만큼 강박에 시달리는 캐릭터에 얼마나 사실적으로 접근하느냐였죠.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장인들은 누구나 이러한 강박에 시달린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잭 니콜슨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3) 같은 강박증을 소재로 한 영화도 닥치는 대로 봤죠."
     
    정재영이 플랜맨의 장르를 '힐링 코미디'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코믹하고 희화화돼 있지만, 누구나 그렇듯 남에게 숨기고 싶은 상처를 지녔어요. 플랜맨은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또는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다가왔죠. '이런 세상이 됐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이 녹아 있는 시나리오가 참 따뜻했어요. 항상 시간에 쫓기고, 청결이 결벽이 될 만큼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 오랜만에 밝은 영화에 출연했다.

    "5년 전 '김씨표류기' 이후 말랑말랑한 작품은 플랜맨이 처음인 듯하다. 쾌활한 현장 분위기도 편했다. 새로 충전이 되는 작품이랄까. 일단 신선한 작품이란 점에서 좋다. 비슷한 캐릭터를 계속하면 관객들이 더 재미 없어 할 것이다. 비슷한 영화를 계속 보는 것이 고역일 수 있으니 말이다."

    배우 정재영(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 현장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고자 애쓴다고 들었는데.

    "상대 배우는 물론 자신을 위해서도 이왕이면 편하고 재밌게 작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 불편하면 연기도 잘 안 되고 재미 없지 않나. 평소 사람을 만날 때도 그러려고 애쓴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모자라 같은 직업을 갖고 함께 일한다는 것이 대단한 운명 아닌가. 나쁘게 대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본다."

    -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첫 출연을 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홍 감독님 영화는 촬영도, 작품 세계도 모두 독특하다. 이 점에서 '우리 선희'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신선한 작업이었다. 고정관념이나 욕심을 내려놓고 영화를 찍는 느낌이랄까. 배우로서 중간점검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 배우 생활을 하면서 크게 아팠던 경험이 있었다던데.

    "두 차례 원인불명의 고열에 시달렸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촬영을 끝내고 한 달하고도 열흘 정도 입원했었다. 별별 검사를 다 받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열이라는 게 바이러스 등에 감염됐을 때 몸이 병균과 싸우고 있다는 표시라더라. 당시 촬영이 무척 힘들었는데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을 바이러스에 몸이 무너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기전'(2008)을 찍고 고열이 한 번 더 왔었다. 당시 아플 때는 담배도 끊고 봉사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야지 했는데, 아픈 게 없어지니 그때 다짐도 사라지고 술, 담배가 먼저 생각나더라. 나라는 사람 참. (웃음)"

    - 좌우명이 궁금하다.

    "지키지도 못할 좌우명 같은 건 없다. (웃음) 굳이 꼽자면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에 충실하자는 것, 특히 인간으로서 솔직하게 살자는 것 정도다. 이러한 것은 계획과는 별개로 인격의 문제인 듯하다. 평소 가족, 친구들을 그렇게 대하려고 애쓰는데 잘 안 된다. 그래서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것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남 탓하지 말자는 것도. (웃음) 이렇듯 남들 다 하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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