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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공백기에 강행한 의료정책, '불통'부터 '파업'까지

보건/의료

    장관 공백기에 강행한 의료정책, '불통'부터 '파업'까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대한의사협회관에서 열린 '2014년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 총파업 출정식'에서 노환규 의사협회 회장이 모두발언을 마친 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의사협회는 내일 새벽 1시까지 비공개 회의를 거친 뒤 집단 휴진으로 의견이 모아지면 협회 소속 모든 회원의 찬반 투표를 거친 뒤 파업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대한의사협회가 12일 조건부로 총파업을 결의함에 따라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부 태도 변화에 따라 파업을 유보할 수 있다고 밝혀 협상의 여지가 생겼지만, 양측 입장차가 커 난항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가 의사 총파업 결의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진 데에는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기회에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를 올리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주장부터, 현 의사협회 집행부의 강경 모드가 한 몫 했다는 관측도 있다.

    그 중에서도 정부가 보건의료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문단체에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현장에서는 정부 정책의 추진 방식이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는 개탄이 나오고 있다.

    의사 파업의 발단이 된 정책은 크게 두 가지다.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과, 영리 자회사 허용을 골자로 한 4차 투자활성화대책이 그것이다.

    그런데 두 정책 모두 진영 장관이 사퇴한 이후 장관 공백기에 추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의 경우 이영찬 차관이 장관 대행 체제에 있던 지난해 10월 29일 도입됐다. 문형표 당시 KDI연구위원이 장관으로 내정된 지 딱 하루 뒤에 정책이 발표됐다.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대책은 문형표 장관이 청와대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불과 열흘 뒤인 12월 13일 발표됐다.

    사실상 장관이 공석일 때부터 실무자들이 경제부처와 조율해 정책을 빠르게 추진했다는 얘기이다.

    장관이 후보 시절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청문회 준비를 비롯해 정상적인 업무 개입은 불가능한 만큼 장관 공백기에 대부분 정책들이 추진된 것이다.

    수장이 없는 상태에서 주요 보건의료 정책이 성급하게 추진된데 대해 복지부 내부에서도 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복지부 관계자는 "핵심적인 정책들이 장관 공백기에 한꺼번에 몰아 발표된 것은 통상적인 방식은 아니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점도 문제이다. 원격의료의 경우 정부 측에서 의사협회 등에 아이디어를 얘기했지만 의사협회는 줄곧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진영 전 장관과 의사협회의 면담에서 원격의료 얘기가 나와서 분명히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며 "그 이후에는 추가로 협의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연말에 발표된 4차 투자활성화대책은 의료계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발표였다.

    의사협회는 정부 발표 하루 전에 언론을 통해서 내용을 접했으며, 영리 자회사 허용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것을 보고 내부적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원격의료는 대강의 분위기는 알고는 있었지만 투자활성화대책은 내용도 몰랐다는 것이 의사협회측의 설명이다.

    정부에서는 영리 자회사 허용 등 투자활성화대책의 경우에는 입법 사안이 아닌 시행령 개정 사안이기 때문에 공청회를 따로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또, 나머지 법안들도 추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식의 정부 접근방식이 의료계에 강경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여론을 살피지 않고 서둘러 정책을 발표하고 이제와서 진화에 급급한 모습이다"며 "규제를 풀라는 윗선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충분한 여론 수렴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의사협회 비공개 토의 과정에서 일부 의사들 사이에는 "수가를 동결해도 좋다. 돈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개탄이 흘러나왔다.

    이영찬 차관은 의료계와 충분한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 "비공개로 의료계 및 전문가 단체들과 협의를 했다"며 "국회에서 법률 제정 전까지 충분히 의견수렴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대된 이후 정부의 이중적 태도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면서도 원격의료를 홍보하는 신문광고를 대대적으로 게재하는 등 의료계를 자극했다. 파업 출정식 하루 전에는 투자활성화 추진을 위한 TF를 출범시켜 정책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보건의료단체는 곧바로 "두 얼굴"이라며 발끈했으며, 현재까지도 정부에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원격의료 등은 일부 수정하되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와 유보 또는 철회해야 한다는 의료계 사이에 입장차가 커 합의점을 찾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한편, 이영찬 복지부 차관이 원격의료를 옹호하면서 대면진료의 오진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구설수에 올랐다.

    이 차관은 12일 기자브리핑에서 원격의료로 오진 가능성이 커진다는 비판이 일자 "대면진료를 한다고 해서 처음에 딱 알아서, 그 중증질환을 알아맞힐 수가 있느냐"며 대면진료에도 오진 가능성이 많다고 전제했다.

    이 차관은 "감기환자의 경우 다른 중증질환으로 인해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수 있지만 대부분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고 감기약을 먹는다. 얼마 지나도 감기가 안 나으면 더 높은 단계의 병원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밟지 않느냐"며 경증 질환에 대한 원격의료 초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 차관의 발언에 대해 의사협회는 "생명이 달린 보건의료 정책을 확률로 접근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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