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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라 할 때는 언제고!" 사육곰 1천 마리 도축 논란

사건/사고

    "키우라 할 때는 언제고!" 사육곰 1천 마리 도축 논란

    국제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 1000여 마리 생사갈림길…정부는 뒷짐만

    사육장 안의 반달가슴곰. 사진 김원유 기자

     

    경기도 안성의 한 농가. 이 곳에는 가슴에 하얀 반달 무늬가 새겨진 곰 25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이 곰들은 열 살이 되면 뱃 속의 쓸개, 웅담을 빼낸 뒤 도살당할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이 곳에는 10살이 훌쩍 지나 자연사한 곰들이 더 많다.

    웅담 채취는 합법이지만 곰 보호 여론과 각종 규제들로 최근 10여 년간 판로가 막힌 것.

    "곰을 어떻게 먹냐, 미개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사실 농가도 할 말이 많다.

    농장주 윤영덕(53) 씨는 "반달가슴곰은 맞지만 천연기념물은 아니고 사육을 위해 인공적으로 증식된 교잡종"이라면서 "천연기념물을 먹느니, 좁은 우리에다 천연기념물을 사육하느니 비난이 거세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30년 넘게 곰을 키워왔다는 윤 씨에게 곰은 이제 애물단지다. 정부 규제로 10년 이상 된 곰만 웅담을 채취할 수 있다보니 10년 동안 든 사료값과 인건비 등으로 따지면 웅담 하나 가격이 2000만 원씩 한다는 것이다.

    "값이 비싸니 누가 사먹겠냐. 그렇다고 죽이지도 못하고 그저 키우고 있는 실정"이라며 윤 씨는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충남 당진에서 농가를 운영하는 김광수(61)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80년대 초 곰을 처음 사들일 때 새끼곰 한 마리 수입가격은 3000만 원. 김 씨에 따르면 당시 서울의 조그만 집 한 채 값과 맞먹었다.

    하지만 갈수록 웅담 판매는 줄고 사육 자체가 힘들어지면서 5년 전 농장주 2명과 농가를 합쳤다. 김 씨의 농가에는 현재 270여 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있다.

    한 마리당 사료값만 연간 200만원 상당. 김 씨가 사료 때문에 진 빚은 5억이 넘는다.

    이같은 사육곰은 현재 전국 60여개 농가에 1000여 마리에 달한다.

    ◈국제멸종위기종인데 '10년 시한부 삶'

    전세계에는 말레이곰, 아시아흑곰, 아메리카흑곰, 북극곰, 자이언트팬더, 안경곰, 느림보곰, 불곰 등 8종의 곰이 있다.

    이들은 모두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국제협약(CITES)'의 부속서 I, II에 포함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반달가슴곰 역시 국제적인 멸종 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귀한 곰' 이다.

    이런 곰이 10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같은 곰이라도 사육곰은 다르기 때문이다. 곰에도 '등급'이 있는 것이다.

    사육장 안의 반달가슴곰 사진 김원유 기자

     

    군사정권 시절이던 1981년, 정부는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곰을 수입해 사육하기 시작했다. 어린 곰을 들여와 제3국에 재수출할 목적이었다.

    당시 곰 사육을 관할했던 산림청에서 이를 권장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허가해 곰을 키우도록 했다는 것이 농가의 주장이다.

    윤 씨 역시 정부의 말을 믿고 곰 사육에 뛰어들었다.

    윤 씨는 "당시 웅담 값도 좋고 정부에서 웅담빼서 팔면 농가 소득도 올라가겠다면서 적극적으로 사육을 권장했었고, 정부 말대로 소득에도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 1985년 9월 6일자 대한뉴스에는 "특히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 관리에만 유의하면 병 없이 쉽게 키울 수가 있다",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 등은 국내 수요뿐 아니라 수입 대체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사육 가능한 야생동물이다"라고 적극 홍보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돼 정책은 완전히 바뀌었다. 해당 방송이 나간 해 곰 보호여론이 대두되면서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또 이로부터 8년 뒤인 1993년에는 CITES에 가입하면서 원래 계획이었던 수출길마저 막혀버렸다.

    농가들이 곰을 들여올 당시만 해도 사육곰은 사슴이나 오리 같은 '특수가축'으로 분류됐지만, CITES에 가입하면서 사육곰의 법적 신분이 '야생동물'로 바뀐 것이다.

    관할 책임도 산림청에서 환경부로 이관됐다.

    국어사전에 '야생동물'은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라는 동물'이라고 정의돼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안에서 자란 사육곰이 야생동물로 분류되면서, 도살도 안되고 농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사육 농가들의 거센 반발로 2005년이 돼서야 '약재인 웅담은 팔 수 있다'는 절충안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10년 이상 키워야만 도살이 가능하다'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결국 농가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사실상 소득이 없어진 사육곰 농가들은 빚더미에 올랐다.

    "정부에 놀아났다"는 농장주 김 씨. "하라고 부추길 때는 언제고 OECD 국가에서 한국·중국만 곰 먹는다며 당장 접으라고 강요한다"면서 "답답할 노릇"이라고 가슴을 쳤다.



    ◈반토막난 예산, 특별법도 '불투명'

    지난해 국회는 사육곰 추가 증식을 막고 농가 손실을 보상하겠다며 40억 원의 예산을 제출했다.

    하지만 최종 통과한 예산은 절반 수준인 22억 3000만 원. 특히 환경부는 불임 시술과 도축 등을 골자로 한 '증식금지 조치'만으로 사육곰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이다.

    농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사육곰 관리 특별법이 상정만 된 채 1년 가까이 계류중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과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이 각각 3월, 6월에 대표발의한 사육곰 관련 두 개의 법안이 상정된 상태다. 이 두 법안은 CITES협약의 취지를 살리고, 궁극적으로 한국의 곰 사육을 종식시키는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환경부는 이 법안에 대해 회의적이다. 농가의 사유재산을 왜 국가가 매입해야 하느냐는 것.

    환경부 관계자는 "농장주들 스스로 수익을 기대하고 시작한 것인데 시대가 변하고 동물보호 여론이 높아지면서 수익이 안되자 국가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면서 "매수를 하면 죽을 때까지 30년은 관리를 해야 하는데 왜 그 시간과 비용을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사육곰들은 1000여 마리지만 소수 농장주들이 600여마리의 곰을 가지고 있다"면서 "일부 농장주를 위해 막대한 세금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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