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전경(자료사진)
국내 테너계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서울대 음악대학 성악과 박모(49) 교수의 학력이 허위인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 전망이다.
특히 박 교수는 현재 진행중인 성악과 교수 공채의 인사위원을 맡아, 지원 자격 조건에 미달하는 후보자 채용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전액 장학금까지 받았다" 홍보…교수 채용에 '결정적'박 교수가 서울대 성악과 교수가 된 건 강사로 출강하던 지난 2004년 1학기. 당시 교수 공채에 응시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공채 과정에서 그는 이력서에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탈리아 페스까라(Pescara) 고등음악원과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Créteil)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고 적었다.
실제로 서울대교수협의회에 따르면 격년으로 발행되는 교수 명부에도 박 교수의 최종 학력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으로 기재돼있다.
박 교수는 공채 직전인 2004년 2월 귀국독주회 안내 책자에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실기 1등으로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이탈리아로 유학해 페스까라 고등음악원 오페라과와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을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고 학력을 소개했다.
또 "이탈리아 토스카니니 재단의 전액장학금으로 베르디오페라아카데미아에서 카를로 베르곤지(Carlo Bergonzi)를 사사한 그는 '크리스탈과 같은 화려한 고음, 정확한 딕션 및 풍부한 표현력'이라고 호평을 받았으며 사보나 레나타 스코토(Savona Renata Scotto) 오페라아카데미와 파르마(Parma) 베르디오페라아카데미에서 전액장학금으로 레나타 스코토와 수업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국내뿐 아니라 국제 콩쿨에서도 수차례 입상한 사실과,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나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 등 다수의 유명 오페라에서 주역만 줄곧 맡아온 경력도 내세웠다.
이처럼 화려한 학력과 경력 소개는 이때부터 시작해 수년간 치른 오페라 공연에서는 물론 각종 인터뷰 기사, 지난해 말에 치른 독주회까지 이어졌다.
프랑스 국립음악원 졸업 학력이 교수 채용 당시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박 교수가 졸업했다는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Créteil) 국립음악원 전경(사진 = 학교 홈페이지 캡쳐)
◈해당 학교 "전혀 다닌 적 없어" 공식 확인…서울대는 "거짓 아니다"하지만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프랑스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에 박 교수의 이름과 생년월일로 학적 자료를 요청한 결과, 전액 장학금은커녕 이 학교를 다닌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음악원 디렉터인 올리비에 메호 씨는 CBS노컷뉴스의 질의에 대한 공식 답변서를 통해 "우리 학교에서 '미스터 박'이 전혀 교육받은 바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하단에 서명한다(Je soussigné, Olivier MEROT, Directeur du Conservatoire à Rayonnement départemental de Créteil, atteste que Monsieur Park, n'a jamais été élève au Conservatoire)"고 밝혔다.
국립음악원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도 "그는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다. 그가 우리 학교에 다녔다는 어떠한 기록도 찾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말했다.
크레테이 국립음악원 디렉터인 올리비에 메호 씨가 CBS노컷뉴스의 질의에 대해 보낸 공식 답변서. 메호 씨는 "우리 학교에서 '미스터 박'이 전혀 교육받은 바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하단에 서명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대 측은 박 교수의 학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은 우리 나라와 관리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
서울대 교무처 관계자는 "꼭 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훈련을 받거나 교육 프로그램 디렉터가 인정을 하면, (학위를) 발급해주는 시스템도 있다"며 "박 교수의 학위는 거짓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해당 학교에서 박 교수가 다닌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힌 만큼, 당시 박 교수가 제출한 학위의 원본과 해당 학교의 설명, 본인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며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국립음악원은 학위나 전액 장학금을 내주긴커녕 학교에 다닌 사실조차 없다고 못박았는데도, 서울대는 당사자가 학위 원본을 제출했으니 거짓이 아니라고 해명한 셈이다.
◈다니지 않고 학위 딴다? 전문가들 "출석률이 중요한 곳" 음악계에서는 박 교수의 채용 과정이나 서울대측의 해명 모두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 한 관계자는 "당시 교수 채용 조건에는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로 돼 있기는 했지만, 국내 대학원을 졸업한 지원자들은 수두룩했다"며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돼 교수로 채용되려면 해외 박사나 석사 이상의 학위가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음대 졸업생들도 "서울대 석사과정을 마쳤더라도 단순히 유럽의 아카데미를 수료한 지원자들은 그 이상의 학위를 가진 경쟁자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다른 관계자는 "학위 위조가 최종 확인될 경우 학교를 상대로 '공문서 위조'를 통해 부정 채용된 것이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음악계 관계자들은 또 '해당 음악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학위를 딸 수 있다'는 학교측 해명에 대해서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박 교수의 동기나 다른 졸업생들은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을 졸업하려면 실력보다도 출석률이 중요하다"며 "입학부터 졸업할 때까지 성실히 출석해 자기 시간을 오롯이 바쳐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교수의 학적을 되짚어보면 해당 학교를 다녔을 만한 시간은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 명부에 기재된 박 교수의 최종 학력이 2009년부터 달라진 것도 의문이다.
실제로 2005년과 2007년 명부엔 '프랑스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2009년부터는 그보다 낮은 수준인 '이탈리아 페스까라 고등음악원'으로 바뀌었다.
박 교수가 최종 학력으로 다시 내세운 '고등음악원'은 국립음악원과는 달리, 학위가 인정되지 않는 '사립 아카데미'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 교수의 학력이 거짓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프랑스 국립음악원' 학력이 명부에서 빠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다른 교수들은 모두 최종 학력기관과 함께 '석사' 또는 '박사'라고 써놓는데, 박 교수의 명부에는 '이탈리아 고등음악원'만 적혀있다"며 "좀 이상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CBS노컷뉴스는 당사자인 박 교수의 설명을 직접 듣기 위해 수십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