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외교부의 4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원칙있고 실효적인 투트랙 접근'으로 정책 방향을 개념화했다는 점이다. 북한이 지난 해부터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등 핵능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압박에 무게를 둔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유도하고 원칙있는 비핵화 대화를 추진해 북핵능력 고도화를 차단하고 핵 포기를 유도할 것"이라면서 북핵과 관련한 2014년 업무보고 내용을 소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상대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확보하고 안보리 제재와 양제 제재 네트워크를 통해 대북 압박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외교부 당국자는 밝혔다. 이는 한미 간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며 공고히 해온 강경한 입장을 올해에도 이어간다는 의미다.
앞서 한미는 지난 해 말부터 잇따른 고위 당국자 간 회담을 통해 북핵 해결을 위해 단지 대화만이 아니라 더 많은 제재와 북핵 6자회담 관련국들 사이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확인해왔다. 6자회담에 앞서 영변 원자로 재가동 중지 등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는 올해 하반기에 외교, 국방장관(2+2) 회담을 계획하는 등 모든 채널에서 대북 전략공조체제를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새해가 되자마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북한 정세에 대해 긴밀히 논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다만 이산가족상봉이나 유소아 계층에 대한 지원 등 인도적 사안에 대해서는 교류를 이어간다면서, 대북정책은 지난 해의 기조를 이어가되 정책 내용을 개념화하기 위해 이를 '원칙있고 실효적인 투트랙 접근 (PETA : Principled and Effective Two-track Approach)'으로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접근이 정부의 주장처럼 '실효적'일지 여부다. 북한의 선(先)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수 차례 강조돼 왔지만, 이 원칙이 실제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의문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영변 원자로가 재가동되고 있다는 점이 한미 당국에 포착됐다는 것이 공식화됐고, 이 자체만으로 유엔안보리 결의안 위반에 해당하지만 국제사회는 여기에 상응하는 제재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재가동하겠다"고 공표만 했지 실제 "재가동했다"라고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직접 상황을 보지 않고 제재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국내 정치에 어려움을 겪느라 북핵 문제를 상대적으로 소홀히하고 있는 미국과 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한국의 입장이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북핵 해결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외교부 업무보고에 따르면,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기 전까지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를 통한 간접 정책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중국과 러시아를 한미의 입장 쪽으로 끌어온다면 이런 정책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6자회담 관련국들의 입장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목표다.
특히 중국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통제력을 현저히 상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은 북한이 혹시나 엇나갈까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라면서 "북한에 대한 정보도 과거보다 많이 없어서 오히려 한국 측으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열어가는 평화통일 신뢰외교'는 주제에 따라 통일, 국방 부처와 함께 보고되는 업무보고에서 통일의 '방법'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도 지적받는 부분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 밝힌 '통일 대박론'이 유사 '북한 붕괴론'으로 오해받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실제 외교부는 '평화통일 신뢰외교'의 3대 기본방향으로 지속가능한 평화정착, 국제협력을 통한 북한의 변화유도, 국제적 통일 지지기반 확충을 제시했는데 '어떻게 평화를 정착할 것인가'와 관련한 내용이 주로 관련국과의 억지 및 대응체제 구축에 맞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