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센터에서 드러난 러시아의 위용' 러시아는 소치올림픽 메인 프레스 센터(MPC)에 자국 전통 문화가 깃든 코너를 마련해 러시아 알리기에 한창이다. 올림픽에서 개최국 홍보 부스가 마련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소치=임종률 기자)
소치올림픽 개막 전 김진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은 현지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나 이번 대회에 대한 우려를 조심스럽게 드러냈습니다. 바로 개최국 러시아의 텃세와 횡포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 때의 일화를 들려줬습니다. 당시 평창은 밴쿠버에 밀렸던 아픔을 딛고 4년을 열심히 준비해 2014년 올림픽 개최가 유력해보였습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앞세운 러시아의 무지막지한 밀어붙이기에 전세가 역전돼 소치에 밀려 또 다시 고배를 마셨습니다.
당시 평창 조직위의 열성적인 관계자는 새벽까지 평창 개최의 당위성을 담은 자료를 IOC 위원들에게 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2시 반에 위원들의 호텔 방문으로 자료를 밀어넣는 등 정말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측에서 CCTV 자료를 확보해 자료에 마치 부적절한 내용물이 담긴 것처럼 문제를 삼았다는 겁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러시아가 대회 성공과 자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떤 일을 할지 모르니 충분히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경기에서 러시아에 유리한 판정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 개막식 실수-준비 부족 지적에 오히려 당당8일 새벽(한국 시각) 펼쳐진 대회 개막식을 보면서 김 위원장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새삼 떠오르더군요. 역대 동, 하계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많은 500억 달러(약 54조 원)를 쏟아부은 대회답게 화려한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스타디움 바닥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다채로운 조명 속에 러시아의 근현대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러시아가 자랑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도 멋지게 경기장을 수놓았습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스탠드를 메운 관중과 취재진에게는 일일이 발광 메달을 전달해 목에 걸게 했고, 때문에 관중석마저 환상적인 레이저쇼가 연출됐습니다. 러시아인의 긍지가 느껴지는 개회식이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오륜기의 의미는?' 러시아 소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기가 완전히 펴지지 않는 실수가 나왔다. 이에 대해 러시아 측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사진=SBS 중계화면 캡처)
다만 옥에 티가 있었죠. 이른바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이 사륜에 그친 사건입니다. 개회식 초반 거대한 눈 결정 모양의 구조물 5개가 펴지면서 오륜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마지막 원이 펼쳐지지 않은 겁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에 대한 러시아 측의 반응입니다. 개회식 총연출자 콘스탄틴 에른스트는 오륜 실수에 대해 "원래 완벽한 것은 없다"면서 오히려 작은 실수 때문에 전체 행사의 완성도가 돋보였다는 억지 주장을 내놨습니다. 대회 전부터 불거졌던 숙소 등 준비 부실 지적에 대해서도 러시아 부총리는 "문제 없다"며 뻔뻔할 정도의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대회는 러시아가 예전 미국과 양강 구도를 이뤘던 구 소련 시절의 강대함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도 나오고 있습니다. 주변국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의 입장을 밀어붙였던 때의 모습입니다. 오륜이 펴치지 않았던 부분이 하필 미국의 아메리카 대륙을 뜻하는 오른쪽 위의 원이었다는 점, 또 성화 점화자가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에게 바나나를 내미는 합성 사진을 리트윗해 외교 갈등을 불러왔던 피겨 스타 이리나 로드니나였다는 점 등도 미심쩍은 부분입니다.
▲韓, 쇼트트랙-女피겨 등 러시아와 대결 주의보
대회 전부터 러시아의 홈 텃세는 적잖게 감지되고 있습니다. 예선이 시작된 각 경기장에서는 러시아 선수들에 대한 일방적인 응원과 경쟁 국가 선수들에 대한 야유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의 메달 기대주 중 적잖은 종목이 러시아와 경쟁 관계에 있다는 점이 걱정입니다. 남자 쇼트트랙은 러시아로 귀화한 왕년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빅토르 안)와 얄궂은 대결을 펼쳐야 합니다.
쇼트트랙은 경기 중 선수끼리 신체 접촉이 많아 판정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은 종목입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때 김동성이 석연찮은 판정으로 홈팀인 미국 안톤 오노에 금메달을 뺏긴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번에도 안현수를 앞세운 러시아에 한국이 같은 이유로 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채점에 주관적인 영역이 많은 피겨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김연아의 우승을 점치고 있지만 율리야 리프니츠카야,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등 러시아 선수들이 변수입니다. 예술점수 등에서 가산점과 감점에 의해 순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과연 한국 선수들이 홈 그라운드 이점을 등에 업은 러시아를 넘어 올림픽을 제패할 수 있을지, 우리 팬들의 응원도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