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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관능의 법칙' 웃겼다 뭉클했다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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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영화 어때] '관능의 법칙' 웃겼다 뭉클했다 씁쓸했다

    현실과 판타지의 절묘한 줄타기

    관능의 법칙 보도스틸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40대 여성들의 솔직하고 대담한 성과 사랑을 다룬 영화 '관능의 법칙'을 연출한 권칠인 감독의 말이다.

    극중 세 주인공은 모두 40대 여성이지만 여전히 젊고 아름다우며, 일과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하다.

    그래서일까, 우리 주변에서 "엄마" "이모" "고모" 혹은 "아줌마"로 불릴 40대 여성들에게 제 이름을 찾아 주려는 노력이 이 영화에는 짙게 배어 있다. 관능의 법칙을 본 신진아 이진욱 기자가 감상평을 주고받았다.
     
    신진아 기자(이하 신):노인의 성과 사랑만큼 엄마의 성과 사랑도 터부시되는 한국 사회다. 관능의 법칙은 40대 여성의 성과 사랑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런 위험부담을 지녔다.
    관능의 법칙이 도발적인 영화로 받아들여지는데, 솔직히 또래 여성으로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거나 아이를 낳아도 욕망을 가진 개인이고 여자라는 사실은 변함 없으니까.

    이진욱 기자(이하 이): 엄마라는 이름은 '모성' '내리사랑'이라는, 희생을 바닥에 깐 개념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TV 드라마 등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인식 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중년 여성들이 이러한 역할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관능의 법칙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관능의 법칙 보도스틸

     

    신: 세 여자가 나오는데, 특정 인물에 특별히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는다. 엄정화는 골드미스로 연하남과 사귀는데, 이는 골드미스들의 판타지에 가깝다. 문소리는 남편과 1주일에 섹스를 3번 하는 여자인데 이런 여자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인터뷰에서 만난 문소리 스스로도 비현실적이라고 하더라.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딸을 키운 조민수는 운좋게 같은 처지의 멋진 남자와 만나 연애중이다. 내가 보기에 셋 다 복받은 여자다. (웃음) 이 운 좋은 여자들이 각자 시련과 좌절을 맞이한다. 영화 자체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계속 절묘한 줄타기를 하지만 대사나 상황들이 현실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데, 그 과정이 웃겼다가 뭉클했다가 쓸씁했다가 한다.

    이:개인적으로 조민수가 맡은 해영 캐릭터에 관심이 가더라. 엄마라는 사회적 역할과 사랑을 좇는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고, 나이 먹을수록 기능이 떨어지는 육체 앞에서 여자이자 사람으로서 존엄을 지켜야 하는 과제를 떠앉은 인물. 그 과제는 나중에 매사에 티격태격하던 딸에게로 대물림되는 모습이다. 이를 무겁지 않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더라.

    신:한 30대 여성은 엄정화의 "우리 나이에 뭇남자가 쫓아오면 퍽치기다"라는 대사에서 완전 넘어갔다고 하더라. "죽기전에 불타는 사랑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병에 걸려서) 내가 불타 죽게 생겼네"라는 조민수의 대사라든지, 문소리가 연하남과 사귀는 엄정화에게 "젊어서 잘하겠네, 복받은 년"이라고 부러워하는 장면도 대다수 주부들이 공감할 것 같다.

    관능의 법칙 보도스틸

     

    이: 세 여성의 삶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자연스레 담아낸다. 엄정화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인데, 한때 사랑했던 사람은 그녀의 도움으로 고위직까지 올라가지만 결국 젊은 여성과 결혼한다. 이러한 아픔들을 이겨내는 힘은 세 여성 사이를 흐르는 따뜻한 자매애다. 전작 '싱글즈'(2003), '뜨거운 것이 좋아'(2007) 등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권칠인 감독의 존재는 남성 영화 강세인 한국 영화계의 단비다.

    신:
    20대 여성의 성과 사랑을 다룬 싱글즈를 볼 때를 떠올려봤다. 그때는 이렇게 씁쓸한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엄정화가 임신한 아이를 낳고, 고 장진영이 아버지 노릇을 해주겠다는 그런 자매애가 멋져보였다. 관능의 법칙은 40대다 보니까 자식·건강 문제까지 뒤섞여 삶이 복잡해졌다. 대한민국에서 욕망하는 여자들이 살기란 여전히 녹록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소리 이성민 커플이 마지막에 제기하는 "결혼=사랑이냐, 의리냐"는 기혼 커플들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다. 농담처럼 "가족끼리 잠자리를 하냐"고 하는데, 그럼 기혼 남녀는 누구와 자나?

    이:"난 앞으로 나 먹여살리느라 바쁠 거야" "엄마 노릇 힘들어, 잘해" 같은 극중 대사를 접하면서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삶, 당당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한 여성의 삶을 결말로 그리고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꽤나 말랑말랑하게 끝을 맺었다. 개인적으로는 2% 아쉽지만, 상업 영화로서는 현명한 선택으로 다가온다.

    신 :급작스런 해피엔딩처럼 보이는데, 별다른 대안도 없어보인다. 어쨌든 이들의 삶은 계속될 것인데, 그게 당장 해피엔딩이라도 언제 비극이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40대 여성도 20대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벌써 10년 전에 두 노인의 사랑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2002)도 보지 않았던가.

    관능의 법칙 보도스틸

     

    이:관능의 법칙의 만듦새는 관객들이 주변에 있는 중년 여성들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 데 모자람이 없다. 이 영화가 4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지만, 그들만을 위한 영화에 머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급변하던 한국 사회에서 청춘을 살아낸 현재의 중년 여성들의 삶이 여전히 뜨거워 보일 것이다.

    신: 명필름 창립작품이 뚱뚱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코르셋'(1996)이었다. 관능의 법칙을 명필름에서 제작한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의미다. 이 영화는 롯데시네마 시나리오 공모전 1회 당선작이기도 한데, 애초 나이 50에 가까운 여자들의 이야기였다가 연령대가 낮게 조정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흥행을 노리고 기획된 영화가 아니라 좋은 의도가 먼저 있고, 그걸 상업적으로 관객들과 어떻게 만날까 고민해서 나온 영화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져서 기쁘다. 청소년관람불가, 108분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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