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천해성 전 통일부 정책실장. 자료사진
천해성 전 통일부 정책실장이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으로 내정됐다가 일주일만에 경질됐다. 청와대와 통일부가 해명을 하고 나섰지만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더 키우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청와대는 왜 일주일만에 천해성 안보전략비서관을 경질했을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왜 일주일만에 경질된 것인가?= 왜 경질됐는지는 청와대만 아는 일이다. 공식적으로는 경질이 아니고 내정철회라고 한다. 지난 3일 내정사실을 발표했지만 아직 정식 임명된 것은 아니므로 내정철회가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내용은 경질이기 때문에 언론에 따라 내정철회 또는 경질로 표현한다.
청와대의 공식입장은 경질도 내정철회도 아닌 '대체'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어제 오전 천해성 비서관 교체와 관련해 "통일부 필수요원이라서 가장 중요한 인재인데 청와대에서 쓰려다가 통일부의 핵심 요원으로 통일부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의해서 다른 분으로 대체했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앞으로 NSC와 통일부가 긴밀히 협조를 할 것이고, 필수요원을 다시 통일부로 보내는 것이고 다른 뜻이나 의도는 없다"면서 "모시고 올 때부터 못간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대타를 찾지 못하다가 적당한 분이 나타나서 보내드렸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해명대로라면 천 비서관은 처음부터 통일부에서 필수요원이어서 반대가 있었고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해 무리하게 데려갔다가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서 천 비서관을 교체했다는 얘기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본다면 '적당한 인물'이 나타나서 천해성 비서관을 통일부로 돌려보냈다는 얘기다. 방점이 '천해성 경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후임 안보전략비서관 내정자인
'전성훈 통일연구원장'에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천해성 경질'을 두고 파문이 일자 통일부는 12일 밤 발표한 대변인실 명의의 보도자료에서 "천 전 실장이 내부 갈등으로 내정이 철회되었다거나, 남북 고위급 접촉과 관련됐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청와대 대변인이 밝힌 바와 같이 장관이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해가 잘 안된다. 청와대가 필요해서 데려갔는데 통일부가 돌려달라고해서 돌려줬다
이런 얘기냐?= 그렇다. 청와대의 해명대로라면 그런 셈이다.
유능하니까 청와대에서 뽑아갔는데 일주일만에 통일부에서 돌려달라고해서 돌려준다? 사람이 무슨 물건도 아니고 가져갔다가 돌려달라니까 돌려준다? 청와대 인사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참 웃기는 일이다. 청와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공식적으로 내정사실을 발표했고 청와대에서 일주일이나 출근해 근무를 했는데 갑자기 통일부가 필요하다고 해서 돌려준다는 해명이 납득이 되나?
이 얘기는 청와대가 해당부처인 통일부 장관과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데려다 쓰다가 장관이 꼭 필요한 사람이니 돌려달라고 하니까 돌려준다는 그런 얘긴데 이걸 해명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엉망이다. 청와대가 인사를 했는데 통일부가 이를 번복하도록 했다는 그런 해명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일부 장관이 번복하도록 관여했다는 얘긴데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로 봐서 불가능한 얘기다.
통일부 장관이 돌려달라고 했다면 천해성 실장은 다시 통일정책실장으로 복귀를 해야 하는데 이미 통일부 정책실장은 후임을 직무대리로 내정했고 청와대에서 인사절차를 밟고 있다. 통일부 장관이 추천을 해서 청와대가 내정을 했는데 통일부 장관이 내줄 수 없으니 돌려달라고 한다는 건 사리에 맞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는 얘기다.
▶그렇다면 후임 때문에 자리를 내준 것이냐?
전성훈 통일연구원장. 사진=통일연구원 제공
= 후임으로 내정된 전성훈 통일연구원장이 '대북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파동을 대북 온건파인 비둘기파와 대북 강경파인 매파의 갈등 때문이라는 그런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전성훈 통일연구원장의 안보전략비서관 내정도 인사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전 원장이 통일연구원장으로 임명된 건 지난해 8월이다. 이제 6개월 됐는데 갑작스럽게 교체하는 것이다. 격도 맞지 않다. 통일연구원장은 차관급으로 보는데 1급인 비서관으로 격을 낮춰서 내정했다.
전성훈 안보전략비서관이 필요해서 임명한다면 수석비서관으로 발탁하던지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급을 낮춰 임명했다는 것은 전성훈 원장으로서도 별로 환영할 인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전성훈 내정자는 1991년 통일연구원 창립멤버로 출발해서 22년만에 원장자리에 올랐지만 6개월만에 청와대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문제는 전성훈 원장이 박근혜 캠프 출신이라는 점이다. 전 원장은 2007년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이전부터 대북 정책을 조언해왔다. 그리고 인수위에 참여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입안에 기여했다.
대북관계에서는 매우 강경파로 분류된다. 남북대화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고 대북 정책에서는 매우 강경한 매파로 분류된다.
▶천해성 경질이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 때문이냐?= 그런 시각이 우세한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천해성 실장의 평소 성품으로 볼 때 거리가 멀다는 것이 통일부 안팎의 시각이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의 강경파 일색인데 온건파인 천해성 비서관이 가면서 갈등을 빚었을 것이라는 그런 관측이다.
천해성 실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비서관실에서 근무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담당관, 남북회담 기획부단장 등을 지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통일부 대변인과 통일정책실장 등 요직을 맡았지만,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천안함·연평도 도발 당시에도 '대화'를 강조한 대북 온건파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좌로부터. 자료사진
그런데 이 해석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매파와 비둘기파의 갈등이 있으려면 비둘기파가 매파와 맞붙을 정도의 세력이 있어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비둘기파로 불리던 사람들은 처음부터 설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세력자체가 없다. 천해성 비서관 1명이 간다고 해서 김장수, 남재준, 김관진 같은 매파들과 이른바 '맞짱'을 뜰 수 있는게 아니다.
천해성 실장은 통일부에서 '영국신사'로 불릴 정도로 차분하고 치밀한 정통관료라는 평가와 함께 통일부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불리고 있다. 정통관료라는 얘기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장관이나 상사의 의중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천 실장의 성품이나 평소 행동으로 봐서 청와대 인사들과 마찰을 일으킬 스타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매파와 비둘기파의 갈등 탓이라는 얘기는 이치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경질이 아니라 '대체'라는 표현을 썼고 통일부가 청와대의 해명이 맞다는 보도자료를 낸건 천해성 실장은 계속 중용 될 것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천해성 실장을 갑작스럽게 '교체'한 것이냐?=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따져봐야 한다. 이런 전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이유였는지를 확인해 보면 그 내막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임명(내정포함)됐다가 갑자기 교체된 경우가 여러차례 있지만 세차례의 사례를 보자..
가장 먼저는 이화여대 최대석 교수가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안보통일분과 인수위원으로 임명됐다가 엿새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대석 전 인수위원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수 년 동안 대북정책을 논의했던 인물이었다. 대북 온건파로서 평판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대북지원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등을 지내면서 관련 경험도 풍부했다.
최 교수는 대선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가미래연구원 내에서도 대북정책에 있어 인정을 받는 분위기였고, 통일부 장관 하마평에는 일찌감치 오르내렸다. 최 전 위원이 통일부 장관이 될 경우, 남북 관계가 경색됐던 이명박 정부보다는 훨씬 유연한 태도를 취할 거라는 전망이 높았다.
또 지난해 7월 15일 개성공단 재가동 관련 남북회담 3차회담 직전, 우리 측 회담 수석대표였던 서호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갑작스럽게 교체된 바 있다. 당시 군 출신이 장악하는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이 서 단장의 유화적인 회담 태도를 문제 삼아 경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통일부 관련인사는 아니지만 청와대 홍보수석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내정됐다가 돌연 취소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2월 25일 청와대 홍보수석실 홍보기획비서관에 조선일보 정치부장을 지낸 이종원씨가 내정됐다가 며칠만에 그만두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에는 인사직급에 대한 불만설 등 여러가지 설이 나돌았는데 시간이 지난뒤 확인된 얘기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의 결정으로 출근했다가 박 대통령의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일을 계기로 허태열 비서실장이 경질됐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이들 사례를 근거로 보자면 일단 청와대 인사는 인사권자의 결단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청와대 인사권자는 '기춘 대원군'도 아니고 인사비서관도 아닌 대통령에 있다. 경질을 했다면 대통령이 결정을 했다는 얘기다.
가장 유력한 분석은 이번에도 통일부의 추천을 받아서 안보전략비서관으로 내정을 했는데 검증을 하는 과정에서 인사권자가 다른 보고를 받고 내정을 철회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천해성 실장과 북측의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 사진=통일부 제공
다른 보고란 천해성 실장이 지난해 6월에 열렸던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남측대표로 나가 북측의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과 '남남북녀 회담'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당시 회담과정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는 회담 후일담이 나돌았다. 그 때문에 청와대 검증과정에서 교체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다른 이유가 없다면 당시 회담에서의 태도 때문에 교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서호 단장.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이런 분석이 설득력이 있는 건 지난해 7월에 있었던 서호 남북실무회담 단장 교체 사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서호 단장은 1,2차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이끌었지만, 3차 회담을 앞두고 실무회담 대표가 바뀌었다. 통일부 안팎에서는 "서호 단장이 북측과의 협상에서 강하게 나가지 못했다는 질책을 받았고 결국 대표가 바뀌게 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통일부는 당시 내부 승진인사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서 단장의 '고압적이지 않은 태도'가 청와대로부터 지적을 받았다는 얘기는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이 확인한 사실이다.
통일부의 한 전직 고위 관리는 "서 단장이 회담장에서 웃으면서 덕담도 하길래, '저렇게 지난 정부에서 하던 방식으로 하면 청와대가 좋아하지 않을텐데'라고 걱정했었다"며 "아니나 다를까 회담대표가 바뀌더라"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회담 장면을 본 뒤 교체를 지시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서 단장 후임으로 임명된 김기웅 단장은 '매파'로 분류됐다. 이번에 천해성 실장 후임으로 통일정책실장에 내정됐다. 천해성 비서관 후임으로 내정된 전성훈 통일연구원장도 '매파'로 분류되는 대북 강경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