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 제기한 가운데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유엔기와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다. 윤성호기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5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일본 vs 국제사회'의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워 최근 일본의 과거사 왜곡 행태를 비판했다. 장관이 인권이사회에 참석한 것은 2006년 이후 외교장관으로는 처음이다.
윤 장관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을 통해 일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가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임을 환기시키기 위해 한국과 중국, 동남아, 네덜란드의 피해 사례를 드는 등 '유엔의 정신에 정면도전하는 일본'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특히 윤 장관은 영어로 진행된 연설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성노예(sexual slavery)'라고 명시하는 등 직접 표현을 동원했다. 그는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 수정 움직임 등 최근 일본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한평생을 당시의 끔찍한 기억 속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온 전세계 모든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다시 한 번 짓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노예라는 표현은 '강제성'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2012년 힐러리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사용한 것이다. 96년 유엔 인권위나 98년 유엔 인권소위 보고서에도 사용된 단어다.
정부는 생존한 피해 할머니들이 '성노예'라는 명칭을 원하지 않고 외교적 부담을 이유로 그동안 '위안부'라는 표현을 지양해왔다. 지난 1월만 해도 오준 주유엔대사는 안보리 공개통의에서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표현을 썼고, 2012년 당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위안부를 직접 가리키는 대신 '전시 성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116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추운 날씨에 목두리를 두르고 있다. 윤성호기자
하지만 윤 장관은 이번에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의 보편성과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범죄가 그대로 드러나는 '성노예' 명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초반 이후 설명에서는 다시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표현으로 돌아갔고 국내 언론배포용 자료는 처음부터 위안부라는 명칭을 유지했다. 분량으로 봐도, 위안부 관련 일본 비판은 전체 연설 내용 가운데 절반 가까이 됐다.
윤 장관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일일이 열거한 뒤 일본의 행태를 소개하면서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반인도적, 반인륜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지난 20년간 유엔 메커니즘이 일본정부에 대해 수차 요청한 것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도 지적했다.
윤 장관은 또 "일본 정부가 '21세기인 지금도 무력분쟁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 분개한다'고 하면서, '여성이 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의 출발은, 인권침해의 책임이 있는 국가들이 과거의 잘못과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올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밖에 윤 장관은 시리아와 남수단, 중앙아프리카와 함께 북한을 언급하며 "생명과 자유에 대한 위협, 차별과 폭력은 여전히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 인권과 관련해 윤 장관은 지난 해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도출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제 유엔 인권이사회 차원에서 후속조치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중국을 겨냥한 듯 "탈북민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모든 국가들이 강제송환금지 원칙을 준수하고 탈북민을 보호할 것을 강조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