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입법로비가 더욱 대담하고 노골적인 형태로 진행되면서 각종 기업 관련 입법이 번번이 후퇴하거나 왜곡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는 기업간 불공정 경쟁과 사회양극화 심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CBS는 재벌기업의 입법로비 실태와 문제점을 3차례로 나눠 보도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은 휴대전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처리 과정에서 노골적인 법안처리 방해움직임에 대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19일 미방위 전체회의에서 "충분히 서로 대화해서 '이런 정도면 동의한다'는 단계까지 가놓고 처리단계에서 반대한다는 건 신사적이지 못하다"고 로비세력을 비판했다.
비판 대상은 야당이 아니라 굴지의 재벌 대기업이다.
◈읍소하다 안되면 언론플레이
조해진 의원.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 법안은 지난해 5월 조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후,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들의 잇따른 견제를 받았다. 법안의 골자가 '휴대전화 보조금 내역의 공시의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재벌들은 공정위 규제가 있기 때문에 이중규제라고 주장했다.
관련 업체들은 9개월간 수시로 의원실을 찾아가 '법안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입법저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조 의원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4~5차례 입법 관련 '간담회'까지 소집해 조율을 거친 뒤, 올 1월 쯤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다가 '뒷통수'를 쳤다는 얘기다.
조 의원은 CBS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법안소위 때 야당 쪽 '법안의 문제점' 문건이 해당 업체의 초창기 주장과 완전히 같았다. 업체가 '공작'을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며 "전체회의에서 그렇게 엄포를 놓자 업체 쪽이 '법안에 이의없다'고 다시 알려왔다"고 밝혔다.
조해진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업체는 일부 언론에 입법을 비난하는 취지의 보도를 사주했다는 정황마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도 유사한 입법로비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홍 의원이 대표발의한 관세법 개정안에 대해 재벌 계열 면세점 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법안의 내용은 면세점 운영권(특허)을 중소기업과 지방공기업 등에 의무적으로 분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홍종학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 발의 뒤 A면세점에서는 사장이 직접, B면세점은 총괄 전무가 의원실로 찾아와 '규제하지 말아달라'고 읍소했다. 의원과 보좌관들을 7~8차례씩 접촉했고, 수시로 전화해왔다"며 "게다가 법안을 비판하는 보도가 나가도록 작업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규제입법은 저지, 친재벌입법은 청탁재벌은 '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법을 적극 청탁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 진통 끝에 본회의를 통과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은 증손회사 설립이 불가능한 석유화학 대기업 2곳에게 예외를 인정해준 '특혜성' 법률이다. 2개 업체의 소재지인 울산과 전남 여수를 지역구로 하는 여야 의원들이 입법에 앞장섰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들은 "대기업의 청탁은 없었다. 지역 상공회의소 등에서 입법 요청이 있었을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 지역에서는 건설산업노조까지 의원실을 찾아 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외형상 기업체가 나서지 않았지만, 사실상 대리청탁이라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역 경제주체들이 모인 게 상공회의소인데, 석유플랜트 사업을 하는 거대기업이 그 지역 상공회의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거대 산업단체나, 정보통신진흥협회·홈쇼핑협회·유통업협회 등 업종별 단체들은 수시로 국회를 찾아가 경제 관련 입법에 대한 입장을 개진한다.
지난해 4월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찾아가 "경제민주화 입법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공개 요구를 했다가, '대놓고 입법로비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 파견직원들의 꾸준한 '관리'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재벌의 국회 로비 또는 '관리'는 정형화돼 있다. 회사나 오너의 명운이 걸린 입법이 추진되는 '비상시'에는 상무급~사장급 임원이 직접 의원을 접촉한다. '평시'에는 국회전담 대관(對官) 직원들이 보좌관을 수시 접촉하면서 친분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