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광화문 부실 공사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에서 문화재 공사에 일부 장인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데서 발생한 폐해가 확인됐다.
숭례문 공사의 경우 나무공사를 맡은 신 대목장이 운영하는 목재상이 목재를 위탁 관리하는 등 목재 납품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신 대목장이 금강송 4주를 빼돌릴 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신 대목장의 소나무 횡령은 경찰이 벌목과 목공사 등 공사 진행 과정마다 감리사 등이 찍어놓은 나무 사진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드러났다.
◈ '딱 걸린' 신응수 "죄송…금강송은 다른 공사에 쓰려 했다" 신 대목장은 광화문 복원 공사를 앞두고 "건물 기둥 등 큰 부재로 쓸 금강송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며 문화재청에 금강송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문화재청은 2006년 12월 신 대목장이 운영하는 W목재소와 목재 구매계약을 체결했기에 목재 관리는 신 대목장이 도맡아 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강원도 양양 법수치 계곡 등지에서 금강송 36주를 베어 신 대목장에게 관리를 맡겼고, 이후 신 대목장은 감리 보고서 등에 금강송을 전부 공사에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신 대목장이 법수치 금강송 4주를 빼돌린 사실이 확인됐다.
나무를 벌목할 때 벌목 시간과 용도 등이 나무에 기록됐는데, 벌목할 때 찍힌 사진 속 금강송들이 올해 초 신 대목장의 목재소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신 대목장은 금강송을 써야 할 자리에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소나무를 대신 쓴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애초 큰 부재에 사용할 나무가 없다며 금강송을 요청했을 때나 이후 금강송을 다 썼다고 보고했을 때 두 번 다 거짓말을 한 것이다.
신 대목장은 경찰 조사에서 금강송 횡령 사실을 인정하면서 "금강송은 다른 큰 공사가 있으면 쓰려고 보관하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감정을 받아본 결과 금강송 한 주의 가격은 1천500만 원가량인 것으로 파악됐지만, 어차피 금강송은 시중에 유통되지 않아 관련 업계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돈다.
이와 함께 경찰은 신 대목장이 숭례문 복원 공사 때 써 달라며 기증된 소나무 154본도 횡령한 사실을 적발했다.
당시 338본의 기증목이 공급됐지만, 장부 대조 결과 공사에 실제로 쓰인 것은 184본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경복궁 소주방 공사 때 쓰인 목재의 규격과 기증목들의 규격을 일일이 비교하면서 일부 목재가 일치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일부는 작년 완공된 울산 태화루에 쓰인 사실도 밝혀졌다. 기증목을 찍은 사진 속 특정 표시가 있는 나무가 태화루 공사 사진 속에서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신씨는 국민에게서 기증받은 나무를 다른 공사의 부재로 팔아 이익을 챙긴 셈"이라고 말했다.
◈ 경찰, 숭례문 부실 복원 의혹 못 밝혀낸 듯 경찰의 수사는 숭례문 복원 공사 때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을 것이라는 제보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경찰의 수사 결과에서 숭례문이나 광화문의 공사 자체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광화문에는 금강송이 들어갈 자리에 국내산 소나무가 이용된 사실이 확인됐지만, 당시 공사에는 외국산도 많이 사용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숭례문 공사에 대한 수사에서도 숭례문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으며, 단지 숭례문 공사에 써달라고 기증된 소나무를 신 대목장이 빼돌린 사실만 가려냈다.
경찰은 광화문 공사 때 관련 업자로부터 주기적으로 뇌물을 받은 공무원 6명을 적발하고 '용돈'을 챙긴 문화재위원 5명을 적발했지만 구속된 피의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문화재 공사 사업자 선정이나 이후 진행 과정에서 몇몇 장인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며 업계를 장악하면서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수사를 통해 다시 확인됐다.
문화재 공사 진행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무원이나 공사 자문위원 등에 대해 만연한 업계의 로비 행태도 다시 드러나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문화재청 공무원이 퇴직 후 시공업체의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면서 공무원과 업체 간 뇌물 창구로 활용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문화재 공사 시공업체 및 장인 선정 절차는 물론 퇴직 공무원의 취업 관련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