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인근 천안함 침몰 해역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해상 위령제'에서 유가족들이 해상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호야. 엄마 아빠 왔어. 잘 있는지 대답 좀 해 이놈아."
고(故) 서대호 중사의 부친 서영희(57)씨는 바다를 향해 먼저 보낸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짙은 해무 사이로 들려오는 파도소리뿐이었다. 서씨는 부인과 함께 아들이 평소 좋아하던 껌과 소주를 바다에 뿌렸다.
서씨는 "문득 대호 생각이 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며 "아들 친구들이 가끔 찾아올 때나 휴가 나온 해군들을 보면 대호 생각이 더 난다"고 울먹였다.
27일 천안함 46용사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지켰던 백령도 앞바다를 유가족들이 다시 찾았다.
백령도 연화리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서 참배를 한 유가족들은 민간 소형 선박을 타고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인 침몰지점까지 이동했다. 천안함 4주년 해상 위령제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백령도 서남쪽 중화동포구 앞에서 크게 출렁이던 너울은 천안함이 침몰한 부근 해상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잠해졌다. 천안함 용사들도 오랜만에 자신들을 찾은 부모 형제를 알아보는 듯했다.
해군 장병 2명이 갑판에 올라 원형 국화꽃다발을 철제 난간 너머 바다로 던지자 유족들은 억눌렀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어 유족들은 차례차례 국화꽃 한 송이씩을 바다에 던지고 소주를 뿌린 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고 서정환 상사의 모친 김재영(65)씨도 먼저 보낸 막내아들 생각에 배 난간을 잡고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씨는 "정환이가 직업 군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왜 말리지 못했는지 만날 후회한다"며 울먹였다.
27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인근 천안함 침몰 해역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해상 위령제'에서 유가족들이 해상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서승원 중사의 부친 서천석(50)씨는 "아들이 한쪽 신발을 신지 않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며 "그 추운 겨울 바다에서 신발도 없이 떨었을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서 중사가 사고 당시 신고 있던 신발은 해군 2함대 수호관에 전시돼 있다.
천안함에 탑승했다가 목숨을 건진 생존 장병 10여 명도 이날 아픈 기억의 공간을 다시 찾았다.
함수 침실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사고를 당한 전준영(28·당시 병장)씨는 동기 4명을 잃은 당시 기억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전씨는 "동기 5명 중에 혼자 생존했다"며 "지난 4년간 '혼자 살아남아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는 생각에 백령도 바다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다"며 울먹였다.
그는 "사고 후 한 달 만에 만기 전역했는데 제대 후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짐을 감당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며 "그래도 동기들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른다"고 말했다.
생존자 가운데 가장 크게 다친 신은총(29·당시 하사)씨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 위령제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