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제과 홈피 제공
대중문화에 불고 있는 복고 열풍에 편승해 패션, 화장품, 제과 등 온갖 분야에서 복고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으나 과거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커지면서 신제품 출시 등 새로운 도전을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롯데제과가 이태원의 한 유명 셰프의 레시피를 토대로 1년에 가까운 준비 끝에 지난해 6월 출시한 과자 ‘주 셰프’
야구장이나 집에서 편하게 맥주 한 잔 할 때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안주 과자이다. 치즈와 견과류를 많이 넣어 과자의 질을 높였다.
안주 과자라는 콘셉트로로 출시된 과자가 그동안 없었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크지 않아 결국 생산을 접은 것이다.
◈새우깡에 완패한 프리미엄 과자롯데제과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첫 생산 이후 2차 생산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어서 결국 생산 라인을 접었다”며 “흔히 술안주로 먹는 새우깡보다도 못하다는 평가 속에 시시상조라는 결론를 냈다”고 말했다.
롯데제과가 지난해 4월 커피와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과자 ‘듀페’는 ‘주 셰프’와 달리 그럭저럭 생산은 하고 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오리온 제과가 지난 2008년 프리미엄 브랜드의 과자로 출시한 닥터유와 마켓오는 연 매출 천억 원대를 넘기도 했지만 올 들어 불경기 속에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감소세로 전환됐다.
◈촌스런 이름에도 잘 나가는 장수 과자
농심 홈피 제공
이런 신제품과는 반대로 출시된 지 수 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잘 나가는 제품들이 있다.
지난 1971년에 나온 새우깡(농심)은 지금도 연 매출이 천억 원을 넘길 정도로 잘 팔린다.
이름도 촌스런 빠다코코낫, 롯데샌드, 마가렛트, 카스타드(이상 롯데제과), 맛동산, 홈런볼, 오 예스(이상 해태제과), 초코파이, 포카칩(오리온 제과) 역시 나온 지 수 십 년이 됐지만 국내 제과업계의 기둥 역할을 할 정도로 꾸준한 매출을 보이고 있다.
맥주도 여기저기서 신제품이 나오고 300여종이 넘는 수입맥주가 소개되고 있지만 90년대 초중반에 출시된 카스(오비맥주)와 하이트(하이트진로)가 지금도 80퍼센트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먹고 마시는 식음료 업계에서 새로운 시도의 새로운 브랜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과거의 제품들이 오히려 더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기화되는 불경기,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복고 열풍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우리 사회에서 3,40대가 소비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그들이 과거에 경험했던 가요, 영화, 드라마, 패션 등 복고적 대중문화가 다시 주목을 받고, 이런 흐름을 산업적인 차원에서 활용하는 복고 마케팅이 다양한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어렵다보니 새로운 맛, 새로운 브랜드보다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과거에 즐겨 마셨던 추억의 맛, 그런 과자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롯데제과 관계자의 얘기이다.
◈먹고 마시는 것도 각인된 복고의 맛 선호사람들이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영화 ‘수상한 그녀’, 가수 김광석 등으로 상징되는 대중문화의 복고 열풍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것처럼, 먹고 마시는 것도 과거의 기억과 감정에 각인된 맛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도 연구 개발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신브랜드의 출시보다는 과거의 제품을 답습하는 복고 마케팅이 손쉬운 선택이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신제품 과자 하나를 시장에 내놓는 데는 연구개발, 시장조사, 마케팅, 생산라인 설치 등에 최소 백억 이상의 비용이 든다”며 “불경기에 투자를 하기 어려운 만큼 기존 제품을 리뉴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84년에 출시한 초코 맛의 ‘오 예스’를 기본으로 고구마 맛의 ‘오 예스’를 추가 출시하는 방식이다.
◈복고 마케팅의 빛과 그림자
황혜선 문화평론가는 “불경기에 기업은 기본적으로 물건을 팔아 생존을 해야 한다”며 “기존 제품을 토대로 콘텐츠를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바꾸는 리뉴얼 형태의 복고 마케팅은 기업 입장에서 어쩔 수 없고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복고 마케팅에 안주하면서 신제품 연구 개발 등 새로운 도전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리온제과 관계자는 “일부 제과업체가 시도한 프리미엄급의 신제품은 앞으로 그런 수요와 시장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한 측면이 강하다”며 “아무래도 불경기에 잘 나가기 어려우니 위축되기 십상”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경제 불황기에는 사람들이 즐겨 먹던 것만 찾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개념의 신 브랜드를 출시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야한다”며 “이런 노력이 없다면 산업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잘 쓰면 약, 잘 못 쓰면 독이 되는 것이 ‘복고 마케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