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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연명'을 얻고…김진태 '명예'를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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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재준 '연명'을 얻고…김진태 '명예'를 잃다

    "檢 명예와 자존 회복하겠다"더니…"외려 한배 태워" 비난 자초

    김진태 검찰총장. 윤창원기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김진태 호(號)'는 넉 달만에 암초를 만났다. "검찰의 명예와 자존을 회복하겠다"던 지난해 12월 2일의 취임사는 이미 빛바랬다.

    암초는 남재준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배가 암초에 부딪힌 것도 아니다. 허우적대던 남재준을 외려 배에 태웠으니, 선장 스스로 '은인'을 자처한 셈이다.

    앞서 <남재준 '연명'이냐="" 김진태="" '명예'냐="">란 제하의 기사에서 나침반을 꺼내보인 게 지난 12일이다.

    "바르고 당당한 검찰, 검찰의 명예와 자존을 회복하겠다는 김진태 총장 취임사의 실행 여부는 남재준 원장과의 일전에서 판가름난다"고 지적했지만, 그 해답은 불과 20일만에 싱겁게도 모습을 드러냈다.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청와대와 정치권, 언론의 지원 속에 시작했다. 그러나 '결기'는 자취를 감췄고, 남으니 '용두사미' 뿐이다.

    실제로 이번 검찰 수사는 실무자 몇 명을 사법처리 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이미 기소한 두 명 외에 선양총영사관 이인철(48) 영사와 구속된 김 과장의 상급자인 이모(3급) 대공수사처장을 이번주중 기소하는 선에서 끝낼 거라 한다.

    검찰 관계자마저도 "윗선이 없다"고는 차마 얘기하지 못한다. "밝혀내지 못했다"고만 한다. 심증은 가득하나 물증을 찾지 못했다는 해명으로 들린다.

    남 원장은 언급할 겨를도 없다. 심지어 수사의 과녁은 국정원 2차장과 대공수사국장, 수사단장조차도 겨냥하지 못했다.

    검찰은 또 국정원법을 거론하며 수사의 한계를 들먹인다. "국정원장이 동의하지 않으면 국정원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압수수색도 할 수 없으며, 국정원 직원을 소환하지도, 구속하지도 못한다’는 17조를 비켜가기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이 동시에, 국민의 기대는 쉽게 비켜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있는 권력, 대통령의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는 남재준의 국정원을 수사한다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그럼에도 법만을 탓하며 수사를 멈추는 것은 '의지'와 '결기'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그동안 세간의 주목을 받는 수사를 하면서 언제 한 번 '법대로' 한 적이 있는가.

    수사 대상자들과 기관이 반발하면 언론과 여론을 등에 업고 '몰아세우기'를 일삼던 검찰이건만, 남재준의 국정원 앞에서만큼은 작아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찾기와 '황제 노역'의 장본인 허재호 전 회장의 재산찾기 수사와는 상반된 태도다.

    남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이 초반 수사를 방해하거나, 실무자들이 윗선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자르기에 나설 때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의지를 천명하고 수사팀을 독려했다면? 결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검찰 고위직을 마친 한 변호사는 “김진태 총장이 만약 그렇게 했다면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내 남 원장을 효과적으로 압박했을 것”이라고 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 추적을 하면서 저항과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여론의 힘을 빌렸다. 결국 전직 대통령 일가를 구석으로 몰아 항복을 받아낸 건 물론이다.

    그에 비하면 이번 수사는 '싹수'부터 판이했다. 검찰은 국정원 수사를 시작하면서 "본질은 간첩사건 아니냐, 정보기관의 잘못을 어느 정도 눈감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있어 너무 어려운 수사 아니냐"며 처음부터 선을 긋고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국정원의 증거조작을 파헤쳐 다시는 조작이나 위조 같은 단어를 사라지게 만들 '검찰력'을 기대했지만, 국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 의지는 빈약했다.

    하물며 박근혜 대통령마저 "이번 사건을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게 국민의 힘이었다.

    하지만 김진태 호는 국민의 눈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만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남재준 원장을 문책하지 않는 게 청와대의 실제 의중인 것으로 검찰이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다.

    결국 검찰은 수사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고, 이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짓는 길을 택했다. '국정원 수사의 한계'와 '청와대의 속내'라는 환경을 다 감안하더라도 결론은 매한가지다.

    검찰을 이긴 남재준 원장은 '연명'을 전리품으로 취했고, 국정원에 진 김진태 총장은 '명예'를 잃게 됐다.

    당대 최고의 특수부 검사란 호평을 받아온 김 총장에게 이런 촌평이 너무 가혹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삼척동자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을 입에 올릴 만한 상황이 됐음은, 본인 스스로도 느끼고 있으리라 본다.{RELNEWS:right}

    그나마 김 총장과 검찰에 남은 위안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명예를 잃긴 했지만, 국정원처럼 모조리 잃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벗어야 할 때 구차하게 벗지 않은 누구와 달리, 검찰은 그래도 아직 벗을 때 벗는 '결기의 전통'을 명예롭게 지켜오지 않았는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이 반세기 전인 1963년에 이미 던진, 대답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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