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세월호 침몰 8일째인 23일 오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단원고 희생자 임시 합동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정치권이 세월호 침몰사건의 격랑에 휩싸인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16일 사고가 나자 황우여, 안철수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이 앞다퉈 사고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유족들의 반응은 싸늘한 냉대였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유족 위로'를 명분으로 정치인들이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지만 유족들에게 정치인은 위로를 주는 대상이 아니라 원망과 피로감만 높여주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사고가 거듭할수록 정치인 박대는 더 심해지고 있다.
이번 사고는 워낙 황망하기도 하지만 피해규모도 큰데다 여느 대형참사와 달리 뒤집어진 배를 지척에서 바라보면서도 배에 갇힌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무기력감이 절망으로 바뀌고 그 절망은 온 국민의 가슴속을 후벼파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까닭에 나라가 슬픔의 심연에 빠졌다.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을 지고 있는 정치권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 초기 자진해서 선거운동을 중단한다, 국회일정을 줄인다, 술자리, 골프를 하지 않겠다며 몸을 낮췄다.
사고발생 8일이 지난 23일, 국회와 정치인들은 아예 국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당내에서 또는 온라인 공간에서 한 두차례 불거진 돌출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는 아예 아침회의까지 없애는 극약처방을 했다.
함부로 말을 내뱉다 괜시리 실언이라도 나오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당이 더욱 큰 타격을 입게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어떻게 하다보니 최고중진회의를 3주째 안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 회의를 안하는 건 메시지 관리 차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는 선거운동이 1주일째 스톱됐고 국회도 일정이 대폭 축소된 채 사실상 파행운영되고 있다. 애도기간에 부산을 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이 내세운 이유다.
사고현장으로 가서 문전박대 당하고 정치권과 국회에서 행하는 일거수일투족이 혹시나 유족의 심기,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그래서일까 정치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입다물고 머리 숙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준엄한 요구"라며 "새누리당이 정말 처절한 몸부림으로 대응책을 내놔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개각을 통해 미온적인 수습책을 내놓거나 국민상식에서 벗어난 임기응변식 대응책은 무덤을 파는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한 핵심인사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정부가 대응을 너무 못했다"며 당분간 세월호 정국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정쟁에 날이 새고 당파적 이익에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면서도 정작 국민들에게 도움되는 법안은 정쟁으로 발목잡기 일쑤이고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가 그대로 남아 또다른 사고의 원인이 되는 것도 한국 정치의 비생산성에서 비롯됐다.
세월호 대응책으로 부산해야 할 지금, 정치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뭔가를 하기 위해 모색하는 상황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질 지 신경써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RELNEWS:right}
새누리당의 핵심당직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 대책을 내놔봐야 꼼수로 비쳐지게 되고 그렇다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도 없어 현재로서는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눈치보느라 움츠린 정치권, 정치인을 국민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지 궁금하다.